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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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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수많은 책을 구입하고, 빌리고, 읽고, 혹은 읽지 못하고 쌓아 두었다. 그 중 한 권인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끌려서 구입했지만 다른 책들에 치여서 아직까지도 읽지 못하고 저쪽 서재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다. 그런데 로쟈의 두번째 책인 <책을 읽을 자유>가 나왔고,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양으로, 그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동안 책을 읽고 쓴 서평과 이야기들이다. 사실 나의 위치는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비교적 정기적으로(한달에 약 10권 정도는 의무적으로 서평을 쓰게 되는듯 하다), 또 자기 필명을 내걸고 글을 쓰고 있으니 프로일 것 같지만, 글 쓰는 수준을 보면 프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나에게, 이 책은 '프로 서평자'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수많은 책들의 서평이 30개의 챕터 아래 모여서 완성된 것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굳이 요약하려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하고, 꽤나 두꺼운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들을 주로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이 책에 실린 로쟈의 리뷰는 모두 147편이며, 언급되는 책의 권수는 총 321권이다. 물론 길게 언급한 책들이 있고 지나가는 식으로 짧게 언급한 책들이 있지만, 제목만 보기에도 결코 쉽지 않을 책들을 깊게 읽고 이런 멋진 서평을 써낸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또한 저자의 독서와 사유는 꽤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그의 전공분야인 러시아문학은 물론이고, 책과 글쓰기에 관련된 책, 동서양의 고전, 사회과학, 경제학, 자연과학, 번역론, 문학, 예술, 철학 등 참으로 넓은 스펙트럼이 형성되어 있다. 저자는 그가 꽤 좋아하는 슬라보예 지젝에 대한 책들은 물론이고 가라타니 고진, 데리다, 라캉, 발터 벤야민, 도스토예프스키, 레닌, 앤디 워홀, 강상중, 밀란 쿤데라, 장정일 등 시대를 풍미하는 작가와 학자, 사상가들, 그리고 그들의 저서에 대해 꽤 깊이 있게 접근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계속 내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10년 동안 저자는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또 이렇게 많은 글을 썼는데 나는 과연 그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하는 일종의 자책이었다. 또한 그가 읽은 책들은(적어도 이 책에 등장한 책들은) 상당히 깊이가 있고 분량도 많다. 책을 꽤나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차마 도전하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책들이 많은데, 그는 이러한 책들을 읽고 번역이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원문 대조까지 한다! 영어는 물론이고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에 정통한 듯 하다. 일본어로 쓰여진 텍스트도 한국어같이 편하게는 못 읽는 나로서는 그저 부럽고 또 공부해야겠다는 의욕을 불태우게 된다. 이러한 저자의 날카로운 오역 지적은 번역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 뜨끔할 것이다. 그에게 굉장히 동질감을 느낀 부분인 것이, 고등학교 때 어떤 일본 만화의 원본과 번역본을 보고 나서 번역 틀린 부분을 지적해서 출판사에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틀린 것은 바로잡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성격이 닮은 듯 하여 내심 반가웠다. 또한 글 마감의 고충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이, '글 쓰는 이'가 짊어져야 하는 어떤 숙명을 이야기하는듯 하여 그 역시 참 인간적이고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모든 글에는 마감기한이 있고, 나 역시 어떤 글을 쓰든 항상 마감기한을 생각하고 때로는 괴로워한다. 

또한 로쟈가 읽은 책들을 단순히 이 책에서만 약간 접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그 중에 끌리는 책들을 위시리스트로 만들어서 하나씩 정복해 보는 것도 재미가 아닐까. 물론 저자가 꽤 깊이있는 독서를 하고 또 멋진 글로 그것들을 풀어냈지만, 이 책 한 권만 읽는다고 등장한 수백권의 책의 내용을 모두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별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책들은 그냥 과감히 빼버리고,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을 추려서 리스트를 만들고 싶다. 항상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로서는, 고민거리를 늘리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특히 지젝과 데리다의 책들을 읽고 이해하고 머릿속에 쌓고 싶다는, 지적 승부욕을 불태우게 된 것 역시 이 책을 읽고 얻은 수확이다. 자유로이, 그리고 제대로 책을 읽는 로쟈를 반의 반이라도 닮고 싶다. 나와 그의 지적 격차가 꽤 크지만, 아무래도 그가 나보다 살아온 세월이 좀더 길다는 것(초등학교 4학년 딸이 있다는 것을 토대로 그의 나이를 유추해볼 뿐이다)으로서 약간의 변명거리를 찾아 본다. 또한 이것은 사족일지도 모르겠지만, 책의 종이 재질이 참 부들부들 좋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종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책들의 촉감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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