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평화 발자국 7
임소희 글.그림 / 보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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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민족의식이 희박한 편이다. 내 자신이 한국인의 특성들 중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지 못해서일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오히려 겉모습이나 식성, 취향, 사고방식 등은 일본인에 더 가까운 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이 재일동포적인 특성을 꽤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일동포들 역시 혈통상으로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편하고 사고방식 역시 일본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괴리감을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자연히 재일동포들에게 동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고, 재일동포문학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수많은 재일동포 작가의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온 이 책 <재일동포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를 읽고 내심 놀랐다. 책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리정애는 오사카 출신 재일동포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총련 계열이다. 그는 굉장히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다. 치마저고리를 즐겨 입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일본학교에 다녔지만 대학은 조총련이 세운 조선대학교에 편입해서 다녔으며 한국어도 꽤 능숙하다. 이상형의 남성도 바지저고리와 수염, 상투머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마치 사극에서 나올듯한!) 그리고 그의 국적은 '조선적'이다. 일본 내의 재일동포들의 국적은 한국 국적과 일본 국적, 그리고 조선적의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일본은 북조선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조선적은 북한 국적이 아니라, 분단되기 전의 '조선'국적이다. 그들은 무국적자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여권도 없고 외국에 갈 때마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잠재적인 테러집단으로 여겨져서 직업을 선택할 때도, 일상 생활에서도 많은 제약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많은 수의 조선적 재일동포들이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는 추세이고, 조선적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은 강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총련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재일동포들은 항상 이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소수집단으로서의 차별을 받는가 하면, 한국으로 가도 같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재미교포 등과 달리, 재일동포라는 집단은 자신이 원해서 도일한 것이 아닌 일제 강점기 때의 징용이나 생활고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본행을 택한 사람들의 후손들이다. 리정애도 한국의 어학당에서, 하숙집에서, 여기저기에서 그러한 '내부로부터의 차별'을 경험하곤 했다. "'우리나라'에 태어나 우리나라 국민으로 사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 마치 나만 빼고는 모두가 행복한 사람들인 것 같아 너무나 부럽다. (중략) 하지만 우리 재일동포들은 어려서부터 꿈을 포기하는 것을 배워 왔다." 라고 그는 슬프게 말한다. 나같이 민족의식이 희박한 사람도 외국에 나갈 때는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나가며, 한국에서 제공하는 교육, 의료, 그 외의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향유하고 있으며 모국어는 당연히 한국어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누리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리정애는 일본 남성보다는 한국 남성과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데, 조선 국적을 가지고는 한국 국적의 배우자와 혼인신고를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한국 국적으로 바꾸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 있어서 국적을 바꾸라는 것은 양가 조부모들을 버리라는 것이고 자신을 참다운 조선 사람으로 키워준 조국을 버리라는 것이니, 내 존재를 버리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고 그는 말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렇게 민족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조국과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연모하는 마음'이 더 커진 것은 아닐지 추측한다.  

하지만 8.15 민족대회에 참가해서 북조선 동포들을 배웅하며 통일기를 흔들고, 무려 '공화국 기념 배지'를 달기도 하며, 북조선 깃발을 방 안에다 걸어두는 모습은 솔직히 꽤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북조선은 독재국가인데다가 비인간적이고 낙후된 나라라고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좌파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북조선에 대한 것은 예외인 듯 하다. 확실히 리정애는 총련계 재일동포로서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참 의아했던 것이 그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도 북조선 출신이 아닌 제주도 출신이고(재일동포 중에 제주도 출신이 참 많다. 이는 한국의 아픈 과거사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면 북조선과는 아무 인연이 없는 것인데 왜 그는 북조선을 조국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북조선에서 그에게 보여준 환대와 같은 민족으로서의 포용에 근거한다. 일본에서 조대에 다닐 때, 선후배들이 따뜻하게 자신을 맞아 주었으며 한국어를 배우며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금강산에 방문했을 때도 북조선의 안내원들이 재일동포인 것을 알고 굉장히 반가운 반응을 보여서 눈물이 핑 돌아서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북조선에서 만난 사람들은 동포들이 탄압받고 있는 상황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화내며 함께 슬퍼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재일동포라는 것을 밝히면 일본인과 비슷하게 생각해서 일본어로 말을 걸거나 해서,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이다. 나 또한 상대가 일본인이든 재일동포든, 무조건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들에게 일본어가 더 편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 일본어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재일동포 중에서도 소수자의 입장에 놓인 총련계 재일동포들의 괴로움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일본 내에서 북조선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더 심했을 것이다. 북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의 '북조선 사랑'에 크게 공감은 할 수 없지만, 그의 용기 있는 모습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신념의 자유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더 이상 수많은 '리정애'들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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