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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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20대들은 참 불행하다. 기껏 힘들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자신이 하고 싶던 공부나 활동을 하기보다는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열중하지 않으면 안되고, 막대한 돈을 들여서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되지 않는다. 투표를 해봤자 아무 것도 바뀌지 않고, 명문대가 아니면 '지잡대'라는 열등감 속에서 살게 된다. 운좋게 취업을 한다고 해도 비정규직과 같은 불안정한 조건에서 긴 노동시간과 적은 급여에 시달리며, 연애조차 순수한 것이 아닌, 계산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의 20대들은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스스로를 '잉여', '밥버러지'로 칭하는 자학적인 호칭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다. 왠지 억울하지 않은가?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이러한 20대의 성장과 고군분투에 대해 연세대 원주캠퍼스, 덕성여대의 학생들과 함께 쓰고 토론하고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기록이다.  

지금까지 20대들을 어느 누구도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368세대도 지금의 20대들을 비난한다. 우파들은 청년들이 높은 보수만 바라고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한다고, 눈높이를 낮추라고 한다. 반면 좌파들은, 지금의 청년들이 소비주의에 물들어 물질적인 풍요에만 신경을 쓸 뿐 세상의 불의에 대해 반응하지도 않고 사회에 관심이 없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20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비싼 돈 들여 대학까지 나왔는데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고 자기 시간도 없는 3D업종에서 평생을 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물질적인 풍요에만 집착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사회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8년의 촛불집회도 주로 2~30대의 젊은 층이 주도하고 참여했으며, 선거 때 누구를 뽑아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나마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기 위해 그들은 투표에 참여한다.  

또한, 7~80년대에는 고교 졸업생의 30% 정도만 대학에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대학생의 수가 적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갖게 되었고 사회적 불의에 항거하고 적극적으로 시국에 참여할 명분이 생겼다. 하지만 고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이 시대에는 대학생이 더 이상 지식인으로서의 특권과 사명의식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나 역시 다카노 에쓰코의 <20세의 원점>이라는 책을 읽으며, 불의에 저항하고 실존적인 문제에 대해 사색했던 전공투 시대의 대학생들을 부러워했다. 그 당시에 불의에 항거하며 수업과 시험을 보이콧했던 학생들이 있었다면 지금의 학생들은 토익책과 각종 수험서를 들고 도서관에 틀어박힌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20대들의 잘못일까. 지금의 학생들과 3~40년 전의 학생들을 비교해보면, 분명 지금의 학생들이 과거의 학생들보다 공부를 안하거나 무능하거나 게으르지는 않을 것이다. 점점 갈수록 경쟁은 심화되고 여기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그들에게, 세상의 불의에 대항할 용기와 힘은 이미 고갈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저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매스컴 등에서 보여지는 '이상적인 가족'의 허상을 지적한다. 정말이지 그런 것이,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소통이 활발하고 사랑이 넘치는, 모범적인 중산층 핵가족은 의외로 흔하지 않다. 하지만 저런 이상적인 가족상을 접하면서 우리 집은 대화가 없으니까, 편부(모) 가정이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우니까, 그 외에 많은 이유로 그렇지 못한 자신들의 가정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가족이 불행한 것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는 한 학생의 말이 수긍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나의 가족들 역시 모두 이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싸울 때는 싸우고 때로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괴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90년대부터인가 폭압적인 교육에 반기를 들고 생겨난 '열린 교육'에 대해서도 저자와 학생들은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역시 크게 동감한 부분으로, 열린 교육은 가만히 있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 무조건 손을 들고 발표를 해야 했고, 조용히 있을 자유나 혼자 생각할 자유를 박탈했다. 폭압적인 교육이 학생들에게 입 닫고 가만히 있을 의무를 강요했다면, 열린 교육은 무조건 말해야 하는 의무를 강요한 것이다. 내가 이것을 절실하게 느낀 것은 초중고교 시절보다도 오히려 대학교 때로, 당시 우울증에 시달리던 나는 프리젠테이션 같은 것을 해야 하는 발표나 스피치 같은 것이 참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때로는 영어로)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고, 사람 많은 데서 말 못하는 사람은 학교도 못 다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과 일종의 분노가 몰려왔었다. 확실히 나는 말을 잘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껴봤을 다이어트나 외모관리, 패션에 대한 일종의 암묵적 압박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참 반가웠던 것이, 사람들은 왜 다이어트를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의식하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기 때문이다. 고도비만으로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된다면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 맞지만, 그저 약간 통통할 뿐인데 매스컴 등에서는 자꾸 마른 체형을 찬양하고 상대적으로 자신이 뚱뚱해 보이게 되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하다. 외모관리나 성형 역시 자신이 만족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취업이나 연애 등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기관리'가 안되는 사람으로 매도당한다. '자기관리'라는 것도 결국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남들이 많이 입는 브랜드를 갖고 있지 않으면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일까봐 얼마 지나지 않아 유행이 지나게 될, 그래서 입지 않게 될 옷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지향적인 풍조는 최근에 들어 더욱 심화된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몇십년 전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데도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는 것 역시 소비를 부추기는 풍조에서 비롯된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부모님 등골 안 빼먹으려고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더라도 대부분 시간당 4천원 남짓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공부할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돈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돈이 없다면 자유마저 빼앗겨 버린다. 여기서 '자유'의 개념은 내가 소비자로서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정치적 자유가 아닌 경제적 자유의 의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청년들의 불꽃과도 같은 열정은 그것이 교환가치가 없으면 '잉여들의 삽질'로 치부되고, 교환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산업 구조에 의한 착취를 당하고 언제든지 동원될 수 있는 일종의 노예로 전락한다. 자본이 착취하거나 교환할 수 없는 것은 '순수한 유희'뿐이다. 그들의 순수한 열정만이 스스로를 구원할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부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속이 시원하고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제목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부터가, 이것도 엄연한 청춘의 모습이라는 일종의 반란과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그동안에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했던 많은 것들이 이렇게 공론화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차마 못 하던 말을 대신 해준 것만으로도 아주 후련할 지경인데, 너희 탓이 아니라고, 너희는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이 참 고마웠다. 등장하는 화두들 모두 그동안 적어도 한 번 이상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뭔가 상당히 불합리하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판을 뒤집어 엎을' 힘이 없으니 많은 20대들이 그저 마음속에 묻어놓고 있었던 것들을 저자는 밖으로 꺼내서 공론화시키고 함께한 수많은 학생들과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함께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대학 서열화, 취업중심의 대학교육, 20대의 탈정치화, 열린 교육, 가족 해체, 강요된 자기관리, 소비지상주의 등 지금의 20대들이 직면한 현실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하여 학생들과 함께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아주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또한 이러한 담론들이 활발히 형성되고 많은 사람들의 자각이 따라야만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이 바뀐다. 그렇게 시작하여 판을 뒤집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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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21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진짜 읽고 싶네요. 글 속 내용들이 너무 공감이 갑니다.
교고쿠도님의 감정처럼 이 책 읽고 속 시원한 느낌 한 번 받았으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교고쿠 2010-11-21 16:51   좋아요 0 | URL
분명 옳지 못하고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20대들에게는 판을 뒤집을 힘이 없기 때문에 그저 다들 마음속에 묻어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으면서 그런 그들의 탓을 하지 않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