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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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니었던 카스트 제 5계급 달리트, 종교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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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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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라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의 전기에 이르기까지 향, 소, 부곡이라는 특수 행정구역이 있었다.  신라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이되며 조선 전기에 785개가 존재했다고 한다. 이러한 열등한 계급을 가진 집단이 인도에도 있었으니 약 3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카스트제도의 시작이 이와 같다.  

3500여년 전 아리아인들의 침입이 있은 후 현재의 인도에 거주하던 드라비다인들은 정복당한 민족으로 아리아인들의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어 카스트라는 족쇄로 옭매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카스트제도를 4개의 계층으로 이해하고 있다. 마지막 계층이 수드라라고 교과서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도버린 사람들'을 읽어보면 5개의 계층임을 알 수가 있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달리트' 라는 말이 흔히 등장한다. 그 달리트가 바로 수드라의 밑에 있는 5번 째 계층인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교과서는 우리에게 4개의 계층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아마도 한국의 교과서에서도 인도의 마지막 계층인 달리트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공식적인 계층으로 불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계층이 바로 달리트들이다. 

 이 책은 그 달리트 출신의 성공을 일군 차세대의 대통령이 될 인물이 쓴 책이다. 한 번 달리트이면 영원한 달리트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엄밀히 말해서 이 책의 저자는 분명 달리트이다. 우리의 행, 소, 부곡과는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는 조선 전기에 없어진 제도였지만, 달리트는 법으로는 차별하지 않도록 되어있으나 사실상 지금까지 차별을 받고 있는 대상이라는 점이다. 

달리트가 어떤 존재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전이 있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힌두의 마누법전이다. 마누 법전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다.. 

베다를 들으면 귀에 납물을 부을 것이요 

베다를 암송하면 그 혀를 자를 것이며 

베다를 기억하는 몸뚱이를 둘로 가를 것이다.. 

그 얼마나 섬짖한 경전의 내용인가...   물론 그 대상은 달리트이다... 

그들의 침이 땅을 더럽힌다고 오지그릇을 목에 걸고 다녀야했고 더러운 자신들의 발자국을 지우기위해 엉덩이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했던 달리트...눈물겨운 달리트의 삶을 이 책은 보여주고있다. 과연 인류애란 누구를 위한 것인지...소크라테스가 노예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것과는 달리 석가모니는 카스트제도를 부정했더는 점은 그나마... 

눈물겨운 한 대목을 요약 소개하고 싶다. 

어느 날 다무는 일을 나가는 아버지를 억지로 따라나섰다. 햇살이 너무 거세고 목이 탓다. 나무 그루터기에 물통이 있었다. 바바(다무의 아버지)는 "부탁드립니다. 아들녀석이 목이 말라서 그러니 물 한 모금 먹게 해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나는 땅에 쪼그리고 앉아 컵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이 xx 좀 보게! 감히 이걸 만지겠다고? 아니 이걸 나한테서 받아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남자가 손바닥에 물을 부었는데 받은 물은 반은 그대로 새어나갔다. 나도모르게 손을 도 치켜들었다. '내려, 손 내리라니까!' 나는 그렇게 얼굴을 손바닥에 뭍고 물을 마셨다. 

그런데 말이야. 소니. 뒤를 돌아보았더니 아까 그 개가 물통에서 물을 핥고 있는거야! 그 때 처음으로 마하르보다는 차라리 개로 태어나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책은 저자의 가족들(어머니와 아버지)이 달리트로서 그 어떤 일생을 보냈는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듯이 전개시킨 행장이다. 인도의 구세주나 다름없는 '마하트마 간디' 마저도 달리트에게 호의적이지 못했다.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과연 간디는 마하트마로서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이 책을 통하여 간디의 새로운 측면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책은 한 달리트 부부가 어떤 생각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킸는지에 관한 일련의 과정들도 보여준다. 끊임없이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하며 인생을 힘겹고도 열심 살아가는 다무와 소누,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늘 정정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왜 그토록 고통을 받았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해갔는가의 과정이다. 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교육 그 이전에 현실에 대한 자각과 꿈을 가지는 것이 본질적인 전제조건임을 다무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의 전제 조건은 자각이며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다.   

 더불어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무엇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할 일이 무엇인지...깨닫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매우 인상깊은 저자의 말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불가촉천민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짐승보다 못하게 취급하고, 공용 우물에서 물도 마시지 못하게하는 종교라면 그것은 종교라고 물릴 가치가 없다.  

 저자는 이 세상의 모든이들에게 묻는다. 종교는 인간을 위한 것인가?  그 대답은 너무나도 뻔하지만 신중하게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는 질문이며 그 대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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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세트 - 전10권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 / 창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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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은 가치관과 윤리관을 함부로 훼손시키지 않았다. 이문열삼국지와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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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세트 - 전10권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 / 창비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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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시중에 나왔던 정비석 삼국지 2번, 박종화 삼국지 2번, 이문열 삼국지 2번 을 읽었다. 그리고 황석영 삼국지이다. 우선 삼국지를 읽을 때 이것이 소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소설과 실록의 정사는 분명 차이가 있는 것이고 그 차이를 이미 알고서 읽는 것이 소설로서의 삼국지라는 점이다. 가끔 보면 실록의 역사적 사건과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의 정황이 다르다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소설은 소설 일 뿐이다. 허구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 어찌 소설일 수 있겠는가. 허구가 없는 소설은 다큐멘터리라는 또 다른 장르에 해당할  것이다.. 

 삼국지는 과거부터 오래도록 꾸준한 독자를 가진 소설이다. 삼국지를 좋아하다보면 공명전, 소설 제갈공명, 혹은 자룡전등도 덩달아 읽게되기도하고 만화 삼국지등도 살펴보는 흥미로움이 있었다.   

이태전에 이문열삼국지를 읽고 정말 실망을 많이해서 그 실망을 리뷰로 적기 시작한 것이 알라딘에 리뷰를 남기게 된 동기가 되기도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평역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조조에 대한 평이 심히 이상하고 왜곡되어있어 필자는 삼국지를 상대로 한편의 소설을 새로 썼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조조를 높이 평가하려는 필자의 생각을 부각시키려다보니 탈선한 열차처럼 윤리관과 정의관이 상실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한참 이문열삼국지가 필자의 이름값을 등에 업고 졸작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독자들을 미혹시키고 있는 동안 황석영은 집필 중 이었을 것이다. 이문열삼국지의 가치를 서서히 독자들이 파악할 때 쯤 이미 이문열삼국지는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상태였다. 삼국지는 다양한 집필자가 있다. 어느 한 작가의 판권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번역을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정말로 다양한 삼국지를 만날 수 있게되어 있다. 게다가 평역이라는 방식의 집필도 있기 때문에 필자 맘대로 삼국지를 평역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는데 이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다. 이문열 삼국지와 같은 결과라면 분명 단점이라 말하고 싶다.  

황석영의 삼국지는 이문열이라는 작가가 변질시켜버린 윤리관을 조금이나마 재고할 필요성을 느끼도록 해주는 삼국지이다. 소설은 작가의 사상이 담겨있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에 정사와는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것은 말할 나위는 없다. 제 마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터무니없는 윤리관으로 상황의 흐름을 바꾸어버리려는 의도는 너무나 무리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 삼국지가 주는 인상깊은 대목들은 성장해가는 젊은이들에게는 특히나 영양을 크게주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자라나는 인격체의 가치관에도 깊은 영향을 주게된다. 감동적인 장면에서 감동을 느끼고, 슬픈 장면에서 슬픔을 느끼며, 개탄스러운 장면에서 분노할 줄 안다면 삼국지를 읽는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황석영의 삼국지는 삼국지를 읽는 그 재미의 쏠쏠함을 전해주면서 동시에 황석영 자신만의 글이 주는 맛갈스러움을 보태고 있다.   

삼국지의 가장 큰 좋은 점은 수많은 등장 인물들에게서 간접적인 체험으로 얻어내는 인격체로서의 가치이다. 인물의 성격이 가져오는 결과물들을 매우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 독자는 각자 마음에 드는 인물을 설정하여 응원을 보내기도하고 감정을 실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올바르지 않은 윤리관을 형성하여 세상을 올바르지 않은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솔직히 이것은 그 독자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엉뚱한 평역으로 가치관을 혼란시키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가치관과 윤리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황석영의 삼국지는 읽는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문열 삼국지와는 달리 그동안 믿어왔던 정의관와 윤리관 그리고 가치관을 흔들어버리는 삼국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감동할 수 있는 장면에서 감동해야하고 슬퍼할 수 있는 대목에서 슬퍼해야 한다. 황석영 삼국지는 우리에게 그런 감정의 기복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황석영 작가가 말한 "원본의 관점과 흐름에 적극 찬동했고"라는 대목은 이를 염두에 둔 메시지 일 것이다.  

그렇다. 뚱딴지 같은 평역으로 본질적인 가치관을 훼손시킬바에야 가감없이 원본을 번역하는 것이 차라리 삼국지를 읽는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할 것이 아닌가... 이문열처럼 근본없는 윤리관의 왜곡을 시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바에는 말이다. 

황석영의 삼국지를 읽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황석영만의 필체가 주는 맛깔이외에도 중요한 고려사항은 윤리관, 가치관, 도덕관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지를 읽으려는 분들께는 황석영의 삼국지를 추천드리고 싶다...이문열 삼국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좋은 삼국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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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 - 당신이 오페라에 대해 궁금해 하는 모든 것
박종호 지음 / 시공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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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렁이엔 나에게 오페라를 알수있게 해준 세상의 딱 한 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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