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필드 : 녹턴 전곡집 [2CD]
Field 작곡, Miceal O'Rourke 연주 / Chandos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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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쇼팽의 녹턴이 워낙 인지도가 높은 연유로 다른 작곡가들의 녹턴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쇼팽 이외에도 녹턴을 작곡한 분들이 많이 있고, 그 들 중 '존 필드'를 생략할 수는 없다고 여긴다. 쇼팽은 1810년 생이고, 존 필드는 1782년 생이니 존필드가 아버지 뻘 정도 되나보다. (쇼팽이 존 필드의 큰 아들 정도...)  

존 필드가 첫 녹턴을 작곡한 것은 1812년이라고 한다. 그해 첫 소품집으로 3개를 발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그 것이 바로 '피아노 버전의 녹턴'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세상에 태어나는 엄청난 순간 이었다. 그 뒤로 10여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존 필드는 녹턴을 작곡해 나갔다. (원래 녹턴은 옛날 교회에서 밤의 기도서를 낭송하기 전에 행하던 기도의 노래라고 한다. 그런 녹턴이 피아노 버전으로 탄생한 것이다)

 곡이 유럽으로 퍼져가면서.....( 아참, 존  필드는 아일랜드 태생이다. 12세 때 웨일즈의 왕자가 주최한 콘서트에서 데뷔를 했다고 하니...대단한 실력가 였음에 틀림이 없다. '키신'도 12세 때 쇼팽의 피협으로 음반을 남기는 전설을 만들었는데....대단들 하셔...) 하여튼 쇼팽도 존  필드의 녹턴을 듣게되었나 보다...  

쇼팽이 누구던가....피아노곡 하면 바로 '쇼파~앙!!!'을 떠올릴 정도아니던가... 그런 쇼팡이 존 필드의 녹턴에 경도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피아노 곡의 지존인 자신도 처음 들어보는 장르였으니 말이다... 존필드의 곡에 영감을 받아 쇼팡이 탄생시킨 녹턴이 지금의 녹턴이니...존필드가 새로운 지평을 열지 않았더라면 과연 쇼팽이 지금의 녹턴을 작곡 할 수 있었다는 보장은....글쎄.....없을 것 만 같다... 

존필드의 녹턴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만점 태교 음악'이라고 할 수있다. '쇼팡과 존필드, 둘의 녹턴을 비교하면 어느 편이 태교에 더 나을까요? '라고 누가 묻는다면 단연코 '존 필드!!!' 라고 말해주고 싶다. 

존필드의 녹턴은 부담이 없고 경쾌하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첫 작품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워 마치 어린아이의 마음이 저 푸르른 들판을 달리고, 갈대밭을 지나는 느낌이다. 나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작용도하여 자주 손이 가는 음반이다. 또한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 연습으로 치기에도 무척 좋을 듯하다. 잘 연습해놓으면 주위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다^ 

쇼팽의 녹턴은 성숙하다. 때로는 슬픔이 너무 짖게 배어있기도다. 더우기 코다에서는 너무 뜨겁다고나 할까... 존필드의 녹턴을 쇼팽이 더욱 세련되고 성숙하게 업그레이드 시켜놔서 그런지 아무래도 태교의 목적으로는 존필드가 더 좋다는 생각이다. 너무 세련되어도 태교에는 좀...물론 개인의 취향이지만....  

존필드의 녹턴을 녹음한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가 있다. 바로 김대진님이시다. 요즘은 지휘도하시는 김대진님께서 녹음한 존필드의 녹턴도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내게 가장 존필드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구나 싶은 피아니스트는 바로 '오루크 (Miceal O'Rourke)이다. 같은 아일랜드 출신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존필드의 녹턴은 바로 나, 오루크~"라고 말하는 듯 하다.    

오루크의 연주를 듣는 순간...그의 피아니즘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아니 존필드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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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협주곡 1번
DG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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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조화로우면서도 형용할 수 없는 탄력적 강렬함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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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협주곡 1번
DG / 2004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이음반은 별점 5를 받을 만  하다. 수많은 동곡 음반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러움과 우아함, 화려함, 뜨거운 열정, 탄력성, 또렷한 프레이징과 깔끔함 등 거의 모든 요소를 고르게 갖추고 있는 그야말로 어느 면으로보아도 만족스러운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아바도의 오케스트라는 함부로 나서지 않지 않는다. 피아노가 너무 나서거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압도할 때, 둘 중 하나가 약해지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연주의 퀠러티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두사람의 연주는 그런 점에서 듣는 이를 불안하게하지 않는다. 각 파트는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하고 있음을 자신들의 선명한 음으로 들려준다. 그렇다고 오케스트라를 죽이고 있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절대로 나서지 않으면서도 각 파트가 해내야 할 자신들의 몫을 착실하게 해주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아르헤리치의 피아노는 분명한 프레이징으로 청자의 마음을 맑게해준다. 파이노와 오케스트라의 탄성있는 조화는 곡의 울림을 더욱 돗보이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 탄성의 아름다움은 청자를 긴장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불안감은 절대 아니다. 탄성을 따라가는 청자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되어간다. 클라이막스는 그 어느 음반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른다. 아르헤리치는 마치 정렬의 화신이 되기라도 한 듯 하다. 아바도의 오케스트라 역시 뜨겁게 달구고 있다. 둘의 연주가 주는 정열의 그 뜨거움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내가 산에 오르지 않았지만 마치 숨을 고를 틈도없이 산을 타고 올라 정상에 서있는 느낌을 준다. 가쁘게 몰아쉬는 숨결과 정상에 오른 이의 희열과 만족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을 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리히테르와 카라얀의 연주가 아르헤리치의 연주보다 더 강렬하고 더 치열할지도 모른다. 아니, 더 뜨겁고 치열하다. 그러나 듣는 이는 오히려 아르헤리치와 아바도의 음반이 더 치열하고 뜨겁다고 느낄 것이다. 그것은 아르헤리치와 아바도의 연주가 주는 탄성에서 오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부드러울 때와, 긴장감을 고조시킬 때 두 연주가 주는 차이점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두 음반주는 낙차의 비율에 차이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리히테르와 카라얀의 연주가 더 뜨거울지는 모르지만, 낙차의 비율이 비교적 작다. 반면, 아르헤리치와 아바도의 연주는 그 비율이 더 크다. 결국,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서 오는 변화의 폭의 차도 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 큰 감동을 주는 명연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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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협주곡 1번 - 이 한 장의 명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외 작곡, 카라얀 (Herber / 유니버설(Universal)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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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헤리치 여사가 줄수있는 유연한 느낌 부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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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협주곡 1번 - 이 한 장의 명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외 작곡, 카라얀 (Herber / 유니버설(Universal)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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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 사람은 거장이다. 리히테르는 피아노의, 가라얀은 지휘의....이 두 거장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만나 녹음을 남겼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널리 애청되는 음반 중의 음반이다. 1악장 첫 악구부터 피아노의 강렬하면서도 분명한 타건과 오케스트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포스가 연주를 빼어나면서도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호감을 주는 아르헤리치 여사께서 아바도와 함께한 녹음반과 위 녹음반은 언제나 애착이 간다.  리히테르의 피아니즘은 그 명성이 워낙 높고, 카라얀은 클래식을 애청하지 않는 분들도 그 명성을 들어봤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분이지 싶다..

아르헤리치와 아바도의 녹음이 1악장의 도입부에서 상쾌하고도 중량감이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면 라히테르와 카라얀의 연주는 느낌은 '중량감'과 '공격적'이라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더우기 3장의 클라이막스에서 두사람이 들려주는 용호상박의 치열함은 마치 호랑이 두마리의 다툼을 상기시킬 정도이다. 몰아치는 격렬함을 선호하는 애호가들에게는 아마도 아주 만족스러운 음반일 것이다.  

 카라얀의 연주가 주는 격렬함은 연주를 앞도하려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한다. 마치 자신이 이 연주의 보스다 라고 선언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리히테르의 건반은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이다. 결과적으로 서로 물러서려 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리하여 처음 이 음반을 들을 때는 이러다가 연주의 완성도를 저하시키지 않을까 불안감을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러한 염려는 기우였다.  

 연주를 끝까지 듣고나면 그런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결과물임을 확인 할 수 있다. 그 다음 부터는 그런 불안감에서 자유롭게 그들의 연주를 즐길 수 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주했다는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나는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그 치열함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느낌이다. 불꽃이 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두사람의 연주는 영원히 명연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사람이 처음 나에게 주었던 불안감으로 인해 별점은 4개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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