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15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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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비슷하게 진행되다가 드라마로 끝이 난다. 뱃사람들이 초원이라고 부르는 잔잔한 바다, 갑자기 폭풍이 일어나는 사나운 바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악마 같은 흰 고래. 이 모두 자연의 한 모습이다. 몇 년씩이나 땅을 밟지 않고 바다에 머무는 고래잡이 뱃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간접체험하다가 결국 자연에게 압도된다. 인간은 왜 자연과 대결하고자 하는 것일까. 헛될지라도 흰 고래와의 대결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에이해브 선장의 모습은 한계를 넘어서려고 분투하는 인간의 숭고함인가 아니면 광기인가. 그 장엄함에 존재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 정복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은 자연의 물질적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 왔다. 이제 인간은 자연을 압도하여 권력을 마구 휘두르다가 오히려 자신의 생존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고, 압도당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자연의 위대함이다. 


책은 매우 다층적이다.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고귀함부터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악함, 거기에 얽힌 인간 문명의 위대함과 어리석음까지. 결국 느끼는 것은 만물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천지불인天地不仁', 그저 그뿐이다. 


참고로, 난 이 책보다 <하트 오브 더 씨> 영화를 먼저 봤는데, 두 이야기는 괴물 흰 고래가 나온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난파한다는 것 외에 줄거리상 큰 공통점은 없다. 영화에 멜빌이 등장인물로 나와서 난 <모비 딕>의 주요 줄거리가 <하트 오브 더 씨>와 상당 부분 겹치지 않나 생각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책 속 몇 구절:


  향유고래가 평상시 헤엄치는 자세를 보면 머리 앞면이 수면과 거의 수직을 이룬다는 걸 알 수 있다. 앞면의 아랫부분은 돛의 아래 활대 같은 아래턱을 끼운 긴 구멍을 더 깊숙이 들여놓기 위해 상당히 뒤로 기울어졌으며, 입은 머리 바로 아래쪽이라 사람으로 치면 입이 턱 밑에 있는 셈이다. 그뿐 아니라 고래는 겉으로 드러난 코가 전혀 없고, 그나마 있는 코(분수공)는 머리 위에 있으며, 눈과 귀는 머리 양쪽으로 전체 몸길이의 3분의 1 지점에 달렸다. 그러므로 이제 향유고래의 머리 앞부분에는 아무 기관이 없고 어떤 민감한 것도 돌출되지 않은, 그야말로 무신경하고 꽉 막힌 벽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89~90 페이지)

  영원토록 경뇌유를 짤 수 있다면! 하지만 나는 오래 반복된 경험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경우에도 결국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환상을 낮추거나 최소한 변경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행복은 지성이나 공상이 아닌 아내와 사랑, 침대, 식탁, 안장과 난롯가, 시골 같은 곳에 놓아야 한다. 나는 이제 이런 것들을 모두 깨달았기 때문에 기름통을 영원토록 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밤에 그리는 환상의 상념 속에서 나는 줄지어 선 천사들이 저마다 경뇌유 통에 손을 담그고 있는 천국을 봤다. (210 페이지)

숭고한 비극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신들의 계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건초를 말리는 반가운 태양과 부드러운 심벌즈 소리처럼 은은한 가을의 보름달 앞에서도 이것만은 인정해야 하는데, 신들도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날 때부터 인간의 이마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슬픈 낙인은 다름 아닌 그것을 새긴 자들의 슬픔의 흔적이다. (282~283 페이지)


<"입이 턱 밑에 있는 셈"이라고 멜빌이 묘사한 향유고래의 모습. 고래에는 수염고래와 이빨고래의 두 소목이 있는데, 향유고래는 이빨고래 중 가장 큰 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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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0-10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하트 오브 더 씨>가 모비딕을 오마주한 작품인줄 알았는데 모비딕을 읽다 보니 중간에 고래와의 사투를 소개하는 글에서 모비딕 보다 이전에 발생한 실제 사건으로 묘사되고 있더군요.


blueyonder 2025-10-10 17:5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실제로 발생했던 포경선 에식스 호의 얘기에서 멜빌이 영감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살아남은 선원에게 얘기를 듣는 멜빌의 모습이 영화에서 그려져서, 전 <모비 딕> 소설이 실화에서 영향을 더 많이 받았는 줄 알았습니다.

서곡 2025-10-15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트 오브 더 씨 영화 봤는데 내용은 가물가물하네요...옛날 영화 모비딕이 있더라고요

blueyonder 2025-10-15 14:36   좋아요 1 | URL
저도 이제 영화 봤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 그래도 엄청난 크기의 고래가 범선을 침몰시키는 과정을 놀라는 마음으로 봤던 것 같습니다.
모비딕 영화도 있었던 모양이군요. 이것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네요.
 















<모비 딕> 하권을 읽고 있다. 피쿼드호는 이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에 진입했으며 향유고래 한 마리 사냥에 성공했다. 읽다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가끔 나온다. 원문을 찾아보며 이해해 보고자 한다. 인용문의 밑줄은 모두 내가 추가한 것이다. 


사냥하여 죽인 향유고래를 어떻게 해체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67장). 고래는 배 옆에 고정되어 있다. 고래 가죽을 벗기는 과정에 대한 얘기. 


  제일 먼저, 으레 녹색을 칠하는 도르래의 여러 육중한 장치들 중에서 커다란 절단용 도르래는 혼자서 도저히 들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이 엄청난 포도송이를 휘청휘청 주 돛대까지 끌어 올린 다음 갑판에서 가장 튼튼한 뒤쪽 돛대 꼭대기에 단단히 묶는다. 이제 이 복잡한 장치를 들고 나는 닻줄 같은 밧줄 끄트머리를 양묘기에 연결하고, 도르래의 커다란 아래쪽 토막을 고래를 향해 내리는데 여기에는 무게가 50킬로그램에 달하는 커다란 갈고리가 달렸다. (40 페이지)


도르래 뭉치("이 엄청난 포도송이")를 돛대에 고정하는 설명이다. 밑줄 친 부분을 보면 도르래 뭉치를 주 돛대까지 끌어올린 후 뒤쪽 돛대 꼭대기에 묶는다고 나온다. 주 돛대로 끌어올린 후 왜 뒤쪽 돛대에 묶지? 뭔가 머리에 잘 떠오르지 않는 그림이다. 다음은 원문이다.


  In the first place, the enormous cutting tackles, among other ponderous things comprising a cluster of blocks generally painted green, and which no single man can possibly lift—this vast bunch of grapes was swayed up to the main-top and firmly lashed to the lower mast-head, the strongest point anywhere above a ship's deck. The end of the hawser-like rope winding through these intricacies, was then conducted to the windlass, and the huge lower block of the tackles was swung over the whale; to this block the great blubber hook, weighing some one hundred pounds, was attached. (p. 330)


원문에서는 main-top으로 끌어올린 후 lower mast-head에 고정시킨다고 나온다. main top이 주 돛대의 어느 부분이라면 lower mast-head는 주 돛대의 아래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뒤쪽 돛대가 아니라 같은 주 돛대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상한 부분이 해소된다. 


그 다음 이상한 부분은 피쿼드호가 항해 중 만난 제로보암호의 고래—모비 딕—사냥 이야기에 나온다(71장). 고래 사냥은 고래잡이 배에서 내린 작은 보트를 타고 한다(61, 62장 등에 설명이 나와 있다). 이 보트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2명이 있는데, 한 명은 항해사가 맡는 보트장이고 다른 한 명은 작살잡이다. 보트장은 보트 뒤쪽에서 키를 잡으며 보트에 탄 선원들—노잡이—를 지휘하여 보트를 고래가 있는 곳으로 가게 한다. 보트가 고래에 접근하면 보트 앞에서 다른 선원들과 함께 노를 젓던 작살잡이가 일어나 밧줄에 연결된 작살을 고래에게 던진다. 작살이 고래에게 명중하면 고래는 도망치려고 한다. 하지만 작살이 단단하게 박혔다면 고래는 결국 한참을 도망치려 시도하다가 힘이 빠져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면 보트장은 작살잡이와 자리를 바꿔 보트 앞으로 가서 고래를 창으로 마구 찔러 숨통을 끊는다. 바다가 피로 물드는 잔인한 장면이다. 그런데 다음 장면을 보자. 


항해사 메이시가 보트 앞머리에 서서 자기 부족 특유의 거침없는 에너지로 고래를 향해 격렬한 외침을 토해 내며 작살을 던질 기회를 노리는데, 이런! 커다란 흰 그림자가 바다에서 솟구치더니 부채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에 노잡이들은 잠시 숨을 죽였다. (59 페이지)


고래는 이미 작살을 맞았다(몇 줄 위에 “마침내 작살 하나를 깊숙이 꽂는 데 성공했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 고래에게 항해사가 다시 작살을 던질 기회를 노린다니? 원문은 이렇다. 


Now, while Macey, the mate, was standing up in his boat's bow, and with all the reckless energy of his tribe was venting his wild exclamations upon the whale, and essaying to get a fair chance for his poised lance, lo! a broad white shadow rose from the sea; by its quick, fanning motion, temporarily taking the breath out of the bodies of the oarsmen. (p. 345)


항해사는 작살(harpoon)을 던질 기회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창(lance)으로 찌를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부분. 제로보암호의 선장 일행이 타고 온 보트로 편지를 건네주려고 하는 장면이다. 몇 년씩 항해하는 고래잡이배들은 서로 편지를 싣고 와 전해주기도 한다. 제로보암호에 전염병이 돌아 보트 위의 사람들은 피쿼드호로 올라오려 하지 않는다. 


그[에이해브]가 편지를 들여다보는 동안 스타벅은 길쭉한 삽자루를 가져왔는데, 칼로 끝을 살짝 찢은 편지를 삽자루에 끼워 보트를 배에 더 가까이 대지 않고도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61 페이지)


뭔가 부자연스럽다. 편지 끝을 칼로 살짝 찢어 삽자루에 끼운다니? 다음은 원문.


As he was studying it out, Starbuck took a long cutting-spade pole, and with his knife slightly split the end, to insert the letter there, and in that way, hand it to the boat, without its coming any closer to the ship. (p. 346)


원문을 보면 칼로 삽자루 끝을 조금 쪼개 그 틈에 편지를 끼워 보내려 함을 알 수 있다. 훨씬 자연스럽고 튼튼한 고정 방법이 아닌가? 왜 편지 끝을 찢어 끼운다고 했는지... 


이 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제 제로보암호는 떠났다. 그런데...


  막간극이 끝난 후 고래 가죽을 벗기는 일을 다시 시작한 선원들은 이 엉뚱한 사건과 관련된 기이한 얘기들을 한참 주고받았다. (62 페이지)

 

“고래 가죽을 벗기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나온다. 고래 가죽은 이미 다 벗겼고 고래 몸통은 떠내려 보낸 후인데 다시 고래 가죽 벗기는 일을 한다니? 


  As, after this interlude, the seamen resumed their work upon the jacket of the whale, many strange things were hinted in reference to this wild affair. (p. 347)


원문은 고래 가죽을 벗기는 일이 아니라 ‘고래 가죽에 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고 나온다. 고래 가죽 해체 작업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다시 가죽을 벗긴다고 하니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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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 입자


                       우주선에서 발견된 입자는 대부분 오래 산다. 물론 오래 산다는 말도 상대적이다. 실험물리학자들은 어떤 입자가 10^-8초에서 10^-10초 정도 살다 가면, 그 입자는 수명이 길다고 하고, 심지어 안정된 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주선에서 발견된 케이온이나 람다, 시그마, 크시 하이퍼론은 모두 이 정도로 오래 산다. 수명이 긴 입자는 모두 약력에 의해 붕괴한다. 그러니까 힘의 세기가 약할수록 입자의 붕괴는 천천히 일어난다. 이런 입자들은 가늘고 길게 산다. 전자기력은 약력보다는 강하지만 강력과 비교하면 훨씬 약하다. 전하가 없는 시그마는 전자기력에 의해 람다와 광자로 붕괴하는데, 대략 10^-20초 정도 산다. 전자기력에 의해 붕괴하는 입자들의 수명은 10^-15초에서 10^-20초 정도다.

  그런데 어떤 입자들은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런 입자를 통칭해서 공명 입자(resonance particle)라고 부른 다. 이런 입자는 대략 10^-23초 동안 존재한다. 이 시간이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한번 비유로 느껴보자, 우주의 나이는 대략 138억 년으로 알려져 있다. 우주의 나이를 1년이라고 하면, 백 년을 사는 인간은 0.2초 정도 살다 가는 찰나의 존재다. 케이온의 수명을 1년이라고 하면, 공명 입자는 1억 분의 1초 남짓 존재한다. 공명 입자와 비교하면 케이온 같은 낯선 입자는 그야말로 영겁의 시간을 사는 셈이다.

  공명 입자는 양자역학에서 나오는 공명 현상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떤 원자에 파장이 짧은 빛을 쪼여주면 원자는 들뜬 상태가 된다. 그러니까 바닥 상태에 있던 전자가 광자가 전해 주는 에너지를 받아 들뜬 상태로 양자 도약을 한 것이다. 들뜬 상태로 올라간 전자는 아주 잠깐 그곳에 머물다가 광자를 내놓으며 다시 바닥 상태로 내려온다. 이때 원자에서 나오는 광자의 에너지는 수 전자볼트밖에 되지 않는다. 원자핵도 마찬가지다. 감마선을 쪼여주면 들뜬 원자핵이 되었다가 감마선을 내놓으며 다시 바닥 상태로 내려온다. 이 때 나오는 감마선의 에너지는 수백만 전자볼트다. 공명 입자도 비슷하다. 양성자가 파이온이나 광자와 충돌하면 들뜬 양성자가 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중입자가 되었다가 다시 양성자로 돌아온다. 그런데 원자나 원자핵과 달리 들뜬 상태의 양성자나 새로 생긴 공명 입자는 에너지가 매우 높아서 바닥 상태의 양성자로 내려오면서 중간자를 내놓거나 수억 전자볼트의 광자를 방출한다. 게다가 공명 입자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에너지와 질량이 서로 같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공명 입자의 질량은 양성자에 가해진 수억 전자볼트의 에너지와 양성자의 질량을 합한 것과 같다. 그래서 공명 입자는 에너지와 질량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입자이기도 하다.

  공명 입자의 흔적은 우주선 연구가 한창이던 1940년대 초부터 어렴풋이 알려져 있었다. 볼프강 파울리와 시드니 댄코프(Sidney M. Dancoff)는 이미 1942년에 파이온과 핵자가 충돌하면 공명 입자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예언했다. 파이온이 발견되기 전인 1946년에 파울리는 《핵력의 중간자 이론》이라는 책을 썼다. 여기서 파울리는 파이온과 양성자가 결합하면 스핀이 3/2인 새로운 입자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스핀이 3/2인 입자를 언급한 것이었다. (185~187 페이지)

  핵자로 통칭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전하 외에는 같은 입자라 해도 무방했다. 아이소스핀 대칭성 아래 양성자와 중성자는 한 형제였다. 양과 밀스는 아이소스핀 대칭성을 게이지 대칭성의 하나로 간주했다. 게이지라는 말은 1929년에 수학자 헤르만 바일(Hermann Weyl)이 전자기력과 중력을 합쳐 보려고 전개한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어떤 물체의 길이를 잴 때, 센티미터 자를 쓰든 인치 자를 쓰든 물체의 길이는 변하지 않는다. 게이지 대칭성이란 자를 바꿔 재더라도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양자전기역학은 게이지 대칭성을 만족하는 이론 중에서 가장 단순하다. 게이지를 변환해도 전하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자전기역학은 게이지 불변이라고 말한다. 게이지 불변이면 입자들 사이에 힘을 매개하는 게이지 입자가 반드시 존재한다. 양자전기역학에서는 광자가 전하를 띤 입자들 사이에 힘을 매개하는 게이지 보손(gauge boson)이다. (328~32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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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우리의 지식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담는 데 실패한다. 언어가 정말로 담는 것은 통제하려는 우리의 시도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어에 매달린다. 실험 보고서를 작성하고, 숫자를 매기고 중요도를 합의하고, 무언가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묘사한다. 경외, 역겨움, 공포,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우리가 붙인 이름에 그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가끔 나는 과학자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이름을 붙이는 것. 볼 수 있는 것, 추론할 수밖에 없는 것, 존재했으면 하고 바라는 것에.

  과학자란 자연 세계의 시인인가? 아니면 시인이 상상 세계의 과학자인가? 시만큼 긴 이름들, 과학 논문만큼 긴 이름들, 양쪽 다 우리가 언어라 칭하는 이름들로 적혀 있다. 우리는 이름을 짓고 이 이름들을 후대에 남겨주고 그런 뒤에 죽는다. 목구멍에 마지막 숨이 걸린 채로. (33~34 페이지)


  그러나 이제 그것은 사라지고 없다. 작약은 전성기를 누렸고, 넘치도록 충분하게 누렸다. 그토록 순수한 것이 불멸이라는 지옥에 갇혀서는 안 된다. (57 페이지)


  결말이 의미를 만든다. 죽음은 영원한 의미 생성자인데, 오로지 죽음 속에서만 어떤 새로운 것이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것이 망각과 불확실성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새로운 몸속에서 세계를 헤매었고, 감각이 주는 황홀한 기쁨과 창작과 발견이라는 지적 자극을 받아들였으나 이는 모두 끝났고, 바로 끝났기 때문에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내 사랑들은 그 경험에 적절한 의미를 주기 위해 끝나야만 했으나 나 자신이 끝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나는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고통을 멈추기 위해 내 심장을 단단하게 굳혔다. 나는 내부로 침잠했고 곧 내 안에서 질식했다. 삶은 독이다. 모든 독이 그러하듯 적은 용량은 치료제이지만 많은 분량은 치명적이다. 그리고 나는 삶을 너무 많이 맛보았다. (152 페이지)


삶이 행복하게 끝나든 슬프게 끝나든 차이점은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 좋든 나쁘든 지구에서 살아 있는 동안 가졌던 선명하게 의미 있는 순간들이 가지는 무게뿐이 아닌가? 그 무게가 결국은 우리를 진정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284 페이지)


  유전자가 우리 삶의 서사를 엮는 몇 줄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의 모든 코드도, 문학도 그러하지 않은가? 이들은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한다. 우리는 이들을 영속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이야기를 영속시키기 위해. 우리는 그저 매개체일 뿐이다. 우리는 몸으로, 삶으로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죽는다.

  이야기는 계속 남는다. (306~30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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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향하여
안톤 허 지음, 정보라 옮김 / 반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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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이자 작가인 안톤 허가 영어로 쓴 과학소설이다. 그가 영어로 번역했던 <저주토끼>의 작가 정보라가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런 사실이 재밌어서, 그리고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기 시작했다. 


그는 언어와 시와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그것이 영원까지 이어지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희망과 사랑의 힘도. 이 책을 과학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나노기술과 인공지능을 소재로 했기 때문인데, 난 그가 보여준 전개 방식이 과학적으로는 큰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과학적 소재는 단지 그의 생각을 펼쳐 보이기 위한 은유일 뿐인지도 모른다. 딱딱한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좀 더 정통적 과학소설을 내가 더 좋아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가 석사 공부할 때 전공했다는 19세기 영시가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흥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한국인이 썼음에도 한국 문학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 시 하나를 정보라의 번역과 원문으로 다음에 옮겨 놓는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춰줄 수 없어서'이다.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춰줄 수 없어서

죽음이 친절하게 나를 위해 멈추었네

마차에는 우리들만 타고 있었네

그리고 불멸이.


우리는 천천히 타고 갔네— 그는 서두름을 알지 못했고 

나는 치워두었네 

나의 노동과 여유를, 

그의 정중함 때문에


우리는 학교를 지났고 아이들이 힘쓰고 있었네

쉬는 시간에 고리 속에서

우리는 바라보는 곡식들의 들판을 지났네

우리는 저무는 해를 지났네


아니 차라리 그가 우리를 지났네

이슬이 떨림과 냉기를 끌어내었네

내 드레스는 오로지 얇고 가벼웠으며

나의 숄은 오로지 그물 비단이었으니


우리는 어느 집 앞에서 잠시 멈추었는데

그 집은 땅이 부풀어 오른 듯 보였네

지붕은 거의 보이지 않았네

처마 장식은— 땅속에


그때부터 수 세기였네 그런데도 

그날보다 더 짧게 느껴지네 

내가 처음 짐작했던 날, 말들의 머리가 

영원을 향해 있다고 (289~290 페이지)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He kindly stopped for me—

The Carriage held but just Ourselves— 

And Immortality.


We slowly drove—He knew no haste

And I had put away

My labor and my leisure too,

For His Civility—


We passed the School, where Children strove

At Recess—in the Ring—

We passed the Fields of Gazing Grain—

We passed the Setting Sun—


Or rather—He passed us—

The Dews drew quivering and chill—

For only Gossamer, my Gown—

My Tippet—only Tulle—


We paused before a House that seemed

A Swelling of the Ground—

The Roof was scarcely visible—

The Cornice—in the Ground—


Since then—’tis Centuries—and yet

Feels shorter than the Day

I first surmised the Horses’ Heads

Were toward Eter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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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5-09-1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이상한 부분 하나:
301페이지(‘크리스티나‘ 챕터)를 보면 ˝‘이주‘ 이후에 난 10년 정도 보존 처리 됐어.˝라고 알레프가 말한다. 하지만 303페이지를 보면 ˝알레프는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90년 동안 보존 처리되었던 것이다.˝라고 나온다. 둘 중 무엇이 맞는지? 원문의 실수인지, 아니면 번역 과정의 실수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