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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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9일,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벌어졌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당시 바둑계의 분위기는 이세돌 9단이 쉽게 이길 것이란 예측이 주였지만, 막상 대국이 벌어지자 이세돌 9단은 이해할 수 없는 알파고의 수에 계속 밀리며 패배하고 말았다. 이세돌 9단은 4국에서 알파고의 버그로 인해 승리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공지능의 수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1승 4패의 패배로 대국을 마무리했다. 이후 알파고는 전문기사들의 기보 없이 자체 대국만으로 학습해 더욱 발전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보여준 후 바둑계에선 영원히 은퇴했다. <먼저 온 미래>는 여러 바둑기사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이후 바둑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준다. 소설가인 저자는 만약 소설을 쓰는 인공지능이 나타나면 문학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한다. 그가 고민하는 지점은 인공지능이 환경을 바꿔 기존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점이다. 바둑을 두 기사가 만드는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이세돌 9단은 결국 바둑기사 직을 그만 두었다. 인공지능이 가지고 오는 가치의 훼손과 전문가들의 권위 상실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이후 인공지능이 도입될 각 분야가 맞닥뜨리는 문제가 될 것이다. 


2022년 말 소개되어 현재 비슷한 충격을 주고 있는 ChatGPT나 이와 비슷한 생성형인공지능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역시 주변에서 인공지능의 위세를 직접 경험한다. 인공지능 없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고, 앞으로는 각 직역에서 어떻게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지가 이 세상을 잘 살아나가느냐의 관건이 될 것이다. 더하여, 어떻게 인공지능을 잘 통제하여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는지도 중요할 터이다. 


바둑 인공지능들은 자신들의 수를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왜 그런 수를 두는지 전문기사들도 많은 경우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엄청난 학습의 결과 그런 수를 둔다는 것인데, 이를 저자는 언어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 ‘암묵지tacit knowledge’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암묵지는 책을 읽어서는 학습할 수 없고 수련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이다. 인간과 알파고의 실력 차이는 결국 평생 수천 판을 두는 인간과 단 몇 십일 동안 수천만 판을 둘 수 있는 인공지능의 학습량 차이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의 폭풍을 먼저 맞이한 바둑계에 대한 현장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바둑계의 현황을 보여주고 문학에 대해 고민하지만,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잘 나오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인공지능과 함께 할 우리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쉽겠는가. 저자의 관점은 전반적으로 비관적이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우리는 주변의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더욱 고민해야 될 듯싶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벌어진 지 곧 10년이 된다. 바둑계와 바둑의 여러 개념에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바둑과 전문기사들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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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슈뢰딩거는 1차대전 후 유럽의 상황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품었으며, 철학적 생각에 몰두했다. 그의 철학적 견해는 당시에 작성한 에세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에세이는 훗날 나의 세계관Meine Weltansicht』이라는 책으로 엮여 나오게 된다[*]. 


  세상에 대해 이런 충격적인 비전을 품게 된 슈뢰딩거가 베단타의 세계관에 이끌린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 나의 세계관』에서 그는 '영혼은 육체라는 집 안에 거주하며, 죽음과 함께 육체를 버리고, 육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발상을 "순진하고 유치하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네' 또는 '아니요'로 답할 수는 없으나 "무한 순환으로 이끄는"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자아는 존재하는가?

자아 밖의 세상은 존재하는가?

자아는 육의 죽음으로 중단되는가?

세상은 나의 육의 죽음과 함께 중단되는가?


이 글의 핵심은 슈뢰딩거 버전의 '베단타 세계관'이다. 베단타 철학은 위의 질문에 대해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의식만 있을 뿐이라고 답한다. 마치 다면체 보석의 여러 면처럼 우리도 (사실상 나머지'자연' 전부도) 단일한 의식의 일부라고 주장함으로써 질문을 해결하려 한다.


인간이 스스로의 것이라 여기는 지식과 감정, 선택의 일체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느 순간에 무無로부터 솟아 나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보다 이 지식과 감정과 선택은 근본적으로 영원하고 불변이며 모든 인간, 아니 모든 감각 있는 존재 안에서 수적으로 하나라고 보는 것이 옳다. ... 당신은--그리고 의식 있는 다른 모든 존재도--전체 안에 있는 전체다.


이 보편적인 하나의 존재를 브라만Brahman이라고 한다. 슈뢰딩거는 이렇게 말한다. "이 진리에 대한 비전은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모든 활동의 바탕에 깔려 있다." (155~15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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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물리학자의 철학적 세계관>이라는 제목으로 2013년에 번역, 출간됐다. 현재는 절판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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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gest Ideas in the Universe: Space, Time, and Motion (Hardcover) -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 : 공간, 시간, 운동' 원서
숀 캐럴 / Dutton Books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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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이라는 제목에 약간 거부감을 느끼지만, 물리학자들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사실 감탄할 만한 지점들이 물리학에는 많이 있다. 추상적 수학 개념으로써 자연현상을 나타내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있다. 저자가 ’공모양젖소 철학spherical-cow philosophy‘이라고 농담식으로 표현했듯이 단순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공모양젖소 철학이 성립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시스템에 한해서이다. 극적인 예로,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물리학이 큰 소용이 없다. 물론 모든 것이 동일한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물리학자는 얘기하겠지만. 그 이해가 너무나 거대해서 물리학자들은 종종 자신들의 방식이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이라고 '자뻑'한다.


이론물리학자인 저자는 물리학의 핵심인 ‘방정식’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책을 쓴다고 서론에서 얘기한다. 많은 대중과학서들이 ‘말’로 방정식의 내용을 풀어 쓰지만 그렇게 해서는 진정한 물리를 맛볼 수 없다는 생각을 그는 한다. 방정식을 실제 상황에 적용해서 풀려면 교과서를 통해 배워야 하지만 그는 그 정도까지를 (당연히) 일반인에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방정식을 음미할 수 있다. 나름 ‘우주의 가장 위대한 생각들’에 조금 가까워지는 느낌도 든다. 특히 저자가 설명하는 (특수/일반)상대성이론 부분이 좋았다. 한번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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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오식이나 오역처럼 보이는 것들이 몇 개 나와서 기록해 놓는다.


"19세기 초 영국의 외과의사 겸 과학자 윌리엄 길버트1544~1603는 자기磁氣에 대한 소책자 『자석에 관하여 De Magnete』를 발표했다." (48 페이지)


길버트가 사망한 해가 1603년이라고 본문에 명백히 나오는데 "19세기 초"는 오식일 수밖에 없다. '17세기 초'가 맞겠다. 원문에는 당연히 '17세기 초'라고 나온다. 


"네덜란드의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가 발전시킨 이 이론은 빛을 연못의 물결 같은 파동으로 설명한다. 뉴턴의 입자설은 19세기 초까지 100여 년 동안 지배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뉴턴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인식되다 보니 감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였고, 하위헌스도 훅과 비슷한 시기인 1704년에 세상을 뜨면서 뉴턴에게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57 페이지)


첫 번째 오류와 비슷하게, 하위헌스 사망년도가 1695년이라고 나오면서 밑에서는 "1704년에 세상을 뜨면서"라고 다른 말을 한다. 원문을 찾아보면 오역임을 알 수 있다. 원문: "Huygens, like Hooke, was dead by 1704 and Newton had the last word." (p. 48) 올바르게 번역하자면 '하위헌스도 훅과 마찬가지로 [뉴턴이 광학을 출간한] 1704년에는 이미 세상을 떴으므로'라고 해야 한다.


"전투는 겨울 무렵엔 다소 약해졌지만, 슈뢰딩거가 오버루트넌트(중위에 해당하는 계급-옮긴이)로 승진한 직후인 1916년 5월에 고르츠 지역은 다시 포화에 휩싸였고, 오스트리아 측은 10만, 이탈리아 측은 25만 명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91 페이지)


용어가 조금 잘못 표기되어 있다. 슈뢰딩거는 1차대전 때 포병장교로 복무했는데, 계급이 "오버루트넌트"로 "승진"했다고 나와 있다. 독일어 Oberleutnant는 '오버로이트난트'로 적는 것이 맞으며, 군대에서는 "승진"이 아니라 '진급'했다고 한다. '슈뢰딩거가 오버로이트난트Oberleutnant로 진급한 직후인'이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Oberleutnant는 영어로 First Lieutenant로서 우리의 중위 계급이 맞다. 


"어려운 수학을 깊이 파고들지 않더라도, 하인즈 파겔스가 자신의 책 우주의 코드Cosmic Code에서 사용한 비유를 보면 디랙의 성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한 그루의 나무를 여러 언어로, 이를테면 영어와 아랍어로 묘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두 언어가 묘사하는 나무는 완전히 달라 보일 수 있다. 심지어 두 언어는 문자조차 아예 다르다. 그러나 이 두 묘사가 가리키는 대상은 같은 것이며, 단어 사전이나 문법 규칙을 이용해 하나의 묘사를 다른 묘사로 변환할 수도 있다. 파겔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서로 다른 표현에 변환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은 심오한 발상이다. 불변성은 대상의 진정한 구조를 확립한다."" (191~192 페이지)


언급된 "하인즈 파겔스"의 책은 우리말로 번역된 바 있다. 지금은 절판됐지만 제목이 <우주의 암호>로 번역됐다. (저자 이름 Heinz Pagels는 출판 당시 "하인즈 페이겔스"로 표기됐다.) 


위 문단 바로 다음에는 아래의 문장이 있는데 고개가 갸웃해진다. 


"변환 이론은 양자역학의 완성된 이론이다. 그러나 1920년대에 소수의 평범한 물리학자들은(평범한 물리학자는 지금도 소수이긴 하다) 이 이론을 성가셔했다." (192 페이지)


위 문장은 '(평범하지 않은) 다수의 물리학자들은 성가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여기에 더해 "평범한 물리학자는 지금도 소수이긴하다"라고 언급한다. 흠... 원문은 이렇다: "Transformation theory is the complete theory of quantum mechanics. But few ordinary physicists in the 1920s (and few since, for that matter) bothered about that." (p. 166) "few"가 있으니 사실 '신경 쓴 물리학자는 거의 없었다'는 의미이다. "ordinary"는 '보통의' 정도가 맞겠다. '1920년대에 보통의 물리학자들 중 [변환 이론]에 신경 쓴 이는 거의 없었다(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훗날 핵융합 발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리제 마이트너1878~1968는 여성으로는 최초로 독일에서 물리학과 정교수가 되어 핵물리를 가르쳤다." (220 페이지) 


리제 마이트너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이후 원자폭탄에 사용되는 '핵분열'의 발견이다. "핵융합"이 아니다. 핵분열을 의미하는 'nuclear fission'을 핵융합을 의미하는 'nuclear fusion'으로 역자가 잘못 봤다. 


마지막으로, 책 앞뒤에 나오는 그래픽이다. 슈뢰딩거의 묘비에도 각인되어 있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사용했다. 파동함수 프사이psi(ψ)의 위에 점이 찍혀 있는데, 이는 시간에 대한 미분을 의미한다. 문제는 좌변 프사이 위의 점은 맞지만 우변 프사이 위의 점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점이 없어야 한다. 

 


이런저런 지적을 하긴 했지만 이 책의 번역 자체는 읽을 만하다. 조금 더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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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와 양자 혁명 어나더 사이언티스트
존 그리빈 지음, 배지은 옮김 / 세로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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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책이 쓰인 20세기 초의 양자혁명에 대해 더 배울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슈뢰딩거의 삶을 따라가며 저자가 짚어주는 물리와 양자역학 내용을 읽으며 여전히 새로운 디테일이 많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됐다. 특히 이 책은 슈뢰딩거라는 과학자를 따라가므로, 그와 얽혔던 온갖 물리학자들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재미있게 읽었다. 


1927년 솔베이 회의에 참석한 물리학자들. 슈뢰딩거는 제일 뒷줄 가운데 부근 회색 양복을 입은 사람이다.

[출처: http://hyperphysics.phy-astr.gsu.edu/hbase/phyhis/solvay.html] 


다른 책에서는 자세히 읽지 못했던 슈뢰딩거의 애정사를 포함한 개인사를 꽤 상세히 다룬다는 점이 역시 이 책의 장점이다. 슈뢰딩거 애정사의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세 명의 딸을 두었다—루스, 블라트나이트, 린다. 이 딸들의 엄마는 모두 달랐다. 이 엄마들 중 그의 부인 아니Anny(본명 Annemarie)는 없었다. 그는 평생 그의 부인과 해로했다. 부인 역시 다른 연인이 있었다(수학자이자 수리물리학자인 헤르만 바일). 부인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물론 경주마보다는 카나리아랑 같이 사는 게 훨씬 편하겠죠. 하지만 난 경주마가 더 좋아요." (98페이지) 슈뢰딩거는 연금 등 부인의 경제적 안정에 매우 신경을 썼다. 


책 후반부로 가면서 코펜하겐 해석이 틀렸다는 저자의 의견이 피력된다. 즉, 파동함수의 붕괴는 없다는 것이다. 슈뢰딩거도 코펜하겐 해석을 매우 싫어했다. 저자는 다세계 해석을 지지한다. 슈뢰딩거가 다세계 해석을 제시한 휴 에버렛보다 먼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하기도 한다. 


요즘 ‘양자’ 얘기가 많이 나온다. 심지어 관련된 회사에 주식투자까지 열심히 한다. 이러한 얘기에는 거품이 끼어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양자’의 이해 없이는 이루지 못했을 세상에서 산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학자도 인간일 뿐이라는 점을, 거기에 더해 20세기 초의 양자혁명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가끔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하는 기술적 내용이 있기도 하지만, 역사적 내용이 워낙 흥미롭다. 


저자인 존 그리빈은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영국의 과학저술가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프레드 호일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이 책 외에도 양자역학에 관한 대중과학서를 많이 썼다. 다른 책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책의 마지막 문단:


 거시 세계와 양자 세계 사이에 경계가 없다면, 파동함수의 붕괴는 없고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얽혀 있다면, 결국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세계관은 슈뢰딩거의 베단타적 실재관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388 페이지)


저자는 최근의 실험 결과들을 들며 슈뢰딩거의 의견에 동의함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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