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ouble with Physics: The Rise of String Theory, the Fall of a Science, and What Comes Next (Paperback)
Lee Smolin / Mariner Books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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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현대물리학에 대한 많은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끈이론 연구자들이 어떻게 다른 이론을 배척하는지, 그럼으로써 물리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저자가 얘기할 때, 그의 비분강개가 느껴졌다. 책은 단순한 비분강개만이 아니다. 끈이론의 역사와 현재, 양자중력이론에 대한 다른 접근 방법 소개, 물리와 과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존경 받는 이론물리학자의 하나—하지만 끈이론에서 벗어난 비주류인—로저 펜로즈는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


“Lee Smolin’s understanding of theoretical physics is unusually broad and deep, and his critical judgements are exceptionally penetrating, so his claim that string theory is responsible for the lack of real progress in fundamental physics for the past quarter of century carries considerable weight. Read this fascinating book and form your own judgement.”


스몰린의 끈이론에 대한 비판은 결국 다음으로 귀결된다. 끈이론은 수학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완결된 이론이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처음에 이런 얘기를 읽었을 때 눈을 의심했다. 아니 그렇게 ‘만물의 이론’이라고 홍보되었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는데? 결국 이러한 상황은 끈이론 연구자들이 입자물리학의 주류를 차지하면서 다른 접근 방법을 억압한 결과로 나타난 상황일 뿐이다. 저자는 이 책이 끈이론 연구자들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아니며, 다양성이 상실된, 그리하여 정체된 입자물리학계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지적하고자 할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끈이론 연구자들은 정말 아플 것 같다. 이 책을 읽는다면 말이다.


저자는 끈이론이 궁극의 이론일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음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의 하나는 ‘background independence’이다. ‘배경독립성’이라고 번역될 만한 이 개념은, 시공간 자체가 이론의 결과로 dynamic하게 변하는지를 말한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배경독립성을 갖는 대표적 이론이다. 반면 양자역학은 배경독립적이지 않다. 주어진 시공간에서 이론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끈이론은 양자역학과 중력을 통합하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배경독립적이지 않다. 


저자는 현대물리학이 해결해야 할 다음의 5가지 문제(양자중력의 문제)를 나열한다(1장).


1. 일반상대론과 양자이론의 통합

2. 양자역학의 기초문제 – 관측과 해석의 문제

3. 여러 입자와 힘들이 통합되어 더 근원적인 실체의 나타남(manifestation)인지 결정

4. 입자물리학 표준모형의 상수들이 어떻게 선택되는지 설명

5.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설명


그리고 끈이론이 이러한 질문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주지 않음을 여러 장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그 중 한 구절:


  What about the first problem in chapter 1, the problem of quantum gravity? Here the situation is mixed. The good news is that the particles carrying the gravitational force come out of the vibrations of strings, as does the fact that gravitational force exerted by a particle is proportional to its mass. Does this lead to a consistent unification of gravity with quantum theory? As I stressed in chapters 1 and 6, Einstein’s general theory of relativity is a background-independent theory. This means that the whole geometry of space and time is dynamical; nothing is fixed. A quantum theory of gravity should also be background-independent. Space and time should arise from it, not serve as a backdrop for the actions of strings.


  String theory is not currently formulated as a background-independent theory. This is its chief weakness as a candidate for a quantum theory of gravity. We understand string theory in terms of strings and other objects moving on fixed classical background geometries of space that don’t evolve in time. So Einstein’s discovery that the geometry of space and time is dynamical has not been incorporated into string theory. (p. 184)


결국 이 책은 다양성에 대한 옹호이며, 세상(이론물리학계)의 ‘주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젊은이들을 쥐고 흔드는 상황에 대한 고발이다. 그가 경험한 학계의 일화와 교수 채용 방식의 문제, 과학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 등 여러 면에서 곱씹을 것이 많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몇몇 구절들:

… The idea that string theory gave us not one theory but a landscape consisting of many possible theories had been propos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but it had been rejected by most theorists. As noted, Andrew Strominger had found in 1986 that there was [sic] a huge number of apparently consistent string theories, and a few string theorists had continued to worry about the resulting loss of predictivity, while most of them had remained confident that a condition would emerge that would settle on a unique and correct theory. But the work of Bousso and Polchinski and Stanford group finally tipped the balance. It gave us an enormous number of new string theories, as Strominger had, but what was new was that these numbers were needed to solve two big problems: that is, to make string theory consistent with the observation of a positive vacuum energy and to stabilize the theories. Probably for these reasons, the vast landscape of theories finally came to be seen not as a freak result to be ignored but as a means of saving string theory from being falsified. (p. 158)

… Even if we limit ourselves to theories that agree with observation, there appear to be so many of those that some of them will almost certainly give you the outcome you want. Why not just take this situation as a reductio ad absurdum? That sounds better in Latin, but it’s more honest in English, so let’s say it: If an attempt to construct a unique theory of nature leads instead to 10^500 theories, that approach has been reduced to absurdity. (pp. 158-159)

   “I think it’s quite plausible that the landscape is real.”

—MAX TEGMARK (MIT)


… A theory has failed to make any predictions by which it can be tested, and some of its proponents, rather than admitting that, are seeking leave to change the rules so that their theory will not need to pass the usual tests we impose on scientific ideas. (p. 170)

  Science was not invented. It evolved over time, as people discovered tools and habits that worked to bring the physical world within the sphere of our understanding. Science, then, is the way it is because of the way nature is—and because of the way we are. (p. 298)

  I believe that science is one of those mechanisms [of correction]. It is a way to nurture and encourage the discovery of new knowledge, but more than anything else it is a collection of crafts and practices that, over time, have been shown to be effective in unmasking error. It is our best tool in the constant struggle to overcome our built-in tendency to fool ourselves and fool others. (p. 300)

… We have been trying to do so [make a revolution] with structures and styles of research best suited to normal science. The paradoxical situation of string theory—so much promise, so little fulfillment—is exactly what you get when a lot of highly trained master craftspeople try to do the work of seers. (p. 313)

  There is no more earnest or sincere person than 't Hooft. One thing we in the field of quantum gravity love about him is that he is so often there. He comes to many of our meetings, and there you never see him in the halls, politicking with the other prominent attendees. Instead, he comes to every session, something only the young students do. He arrives first thing each morning, impeccably dressed in a three-piece suit (the rest of us are generally in jeans and T-shirts), and he sits in the front row all day and listens to the talks by every single student and postdoc. He doesn’t always comment, and he may even doze off for a minute or two, but the respect he shows by being there for each of his colleagues is impressive. When it’s his turn to speak, he stands up and unpretentiously presents his ideas and results. He knows that his is a lonely road, and I would not be surprised if he resents it. How does a person give up the mantle of leadership, so richly deserved, just because he can’t make sense of quantum mechanics? Imagine what that says about someone’s character. (pp. 318-319)

  Over the years, I’ve noticed that a polarized distribution of responses is a strong predictor of future success and influence as a scientist. If some people think X is the future of science and others think X is a disaster, this may mean that X is the real thing, someone who aggressively pushes his or her own ideas and has the talent and perseverance to back them up. An environment that embraces risk takers will welcome such people, but a risk-averse environment will shun them. (p. 342)

  In fact, professors with tenure who lose their grant funding because of having switched to a more risky area can quickly find themselves in hot water. They cannot be fired, but they can be pressured with threats of heavy teaching and salary cuts to either go back to their low-risk, well-funded work or take early retirement. (p.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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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Eternity (Mass Market Paperback)
Follett, Ken / Signet Book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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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에 걸친 유럽과 미국의 역사가 냉전을 거치며 마무리된다. 소련과 동구권 사람들의 공산주의 압제로부터의 자유, 미국내 흑인들의 차별로부터의 자유가 등장인물들의 삶으로 펼쳐진다.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역사는 결국 발전한다는 것. 잠시 뒷걸음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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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사 3 - 베를린에서 미주리 협상까지 2차 세계대전사 3
제러드 L. 와인버그 지음, 홍희범 옮김 / 길찾기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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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에서 1941년, 추축국은 패배를 모르고 전진했다. 하지만 1942년과 1943년에 이르러서 전황은 반전되었고, 1944년에 이르자 추축국은 연합군의 반격을 어떻게 격퇴할지 고민해야 했다. 당시 상황에 관한 부분을 몇 군데 인용한다.

  독일군은 1944년 여름에 심각한 패배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정확한 수효는 여전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1944년 6월부터 9월까지 독일군에서 발생한 사상자와 포로, 실종자(확인되지 않은 사망자와 포로를 포함)는 최소 100만 이상, 최대 150만 전후로 추정된다. 동부와 서부, 남부 전역의 패배로 인한 물적인 손실도 막대했다. 엄청난 양의 전차와 야포가 전투에서 소모되었고 소모분에 필적하는 다수의 장비들이 연합군에 노획당하지 않기 위해 독일군의 손에 의해 파괴되었다. 

 손실은 지상에 한정되지 않았다. 항공전 분야에서도 1944년 초반부터 미국의 장거리 전투기들이 투입되자 독일의 방공망은 심각한 손실을 입기 시작했다. 독일 공군은 그 이전부터 상당한 손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이제 루프트바페(독일 공군)는 제대로 훈련조차 받지 못한 조종사들로 최소한의 제공권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서유럽 상공을 지배한 미 육군항공대와 영국 공군은 그 지배권을 점차 중부와 남부유럽까지 확대해 나갔고, 동유럽의 하늘 역시 소련 공군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그리고 미국의 폭격으로 독일의 합성 석유 공장들이 잇따라 파괴되면서 독일 공군의 재건 가능성은 크게 하락했다. 연료 부족으로 비행기할[원문오타] 수 없는 비행기들이 지상에서 파괴당했다.

  바다에서도 독일의 수상전투함들은 오래 전에 격침당했거나 발트 해의 지원임무에만 투입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잠수함들 역시 1943년의 패배 이후 과거의 능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독일 잠수함은 1944년 10월에 전 세계를 통틀어 단 한 척의 수송선(6000t)만을 격침시켰다. 흑해와 지중해에서 밀려난 독일 잠수함들은 프랑스의 대서양 연안 기지들마저 상실했다. 반면 연합국 해군은 손실이 크게 감소하면서 구축함이나 호위 항공모함 등의 호위함정 전력이 급증했고, 이 함정들을 운용하는 연합군 승무원의 숙련도 역시 크게 향상되었다. 그 결과는 연합군 호위전력의 방어력 향상과 수송선의 손실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설령 독일이 잠수함전을 재개한다 하더라도 (연합군의 선박 건조량이 손실을 처음으로 능가한 시점인) 1943년 가을보다 훨씬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해야 했다. (96~97 페이지) 

  독일은 7월 20일 이전부터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전쟁 물자의 생산은 슈페어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크게 개선되었으며 무기 생산량은 연합국의 폭격에도 불구하고 크게 증가했다. 슈페어는 7월에 노동 인력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한 조치를 단행했고 그간 총력전 수행에서 소외되었던 괴벨스도 7월에는 인력 동원을 위한 획기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7월 20일 이후에는 힘러의 뒤를 잇는 권력자로 등극했다. 이런 조치들로 전쟁에 동원되는 인력과 자원이 확충되었지만 전쟁의 부담이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독일인들의 불평을 샀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이상 불평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수십만 명의 독일 남성(주로 노동자들)이 군으로 추가 징집되어 새로운 국민척탄병(Volksgrenadier) 사단들을 편성한 것이다. 독일군은 이 국민척탄병 사단들이 적을 막아내고 새로운 공세를 실시할 때 주력이 되어 주기를 기대했다. 여기에 더해 독일 국내에 일종의 민병대인 국민돌격대(Volkssturm)까지 편성되었다. 1944년 9월 25일에 창설된 국민돌격대는 16세에서 60세 사이의 총을 잡을 수 있는 남자는 누구나 가입해야 했다-- 물론 이들에게 지급할 총의 확보는 별개의 문제였다. 연합군이 동부와 서부 양면에서 독일로 진격하자 독일 정규군과 무장SS는 국민돌격대에게 방어전의 보조 임무를 부여하려 했다. 하지만 국민돌격대에 복무하는 사람들은 전투력의 문제 이전에 적에게 포로가 되었을 경우 정식 전투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총살당할 가능성부터 고민해야 했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지난 5년간 후방에서 체포한 파르티잔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군 복무는 공장과 농장에서 일하고 틈틈이 훈련을 받는 국민돌격대의 성인 남자들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히틀러는 계속 주저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은 여성들이 군수산업은 물론 군에도 행정병이나 통신병 등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밖에도 1943년 이후 많은 10대 소년들이 대공포 부대 보조원(Flakhelfer)으로 복무했다. 많은 소년들이 공포에 떨었고 때로는 죽거나 다쳤지만, 이 소년들은 독일 국내의 수많은 대공포와 서치라이트를 조작했고, 상당한 수의 연합국 폭격기를 격추했다. 많은 소년들은 밤새 대공포를 발사하고 귀가하는 길에 사라진 가족과 집을 목격하곤 했다. 1944년 10월에 이르면 10대 소녀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수십만의 여성들이 병원과 통신소에서 군 보조요원으로 이미 복무 중이었고, 이제 일부는 대공포를 쏘는 훈련까지 받았다. (101~102 페이지)

  1944년 여름, 계속해서 패배를 겪은 일본은 대규모 자살 공격 부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일본 조종사들은 훈련 수준이 하락하고 연합군에 비해 항공기의 성능도 부족했던 반면 미군은 조종사들의 훈련 수준과 실전경험이 모두 향상되고 항공기도 강력해졌다. 그리고 연합군 함정들의 수효가 증가하면서 함정들의 강력한 대공화망에 일본군의 항공기가 격추당할 확률은 급격히 상승했다. 이제 일본군 항공기 중 대부분은 단 한대의 연합군기도, 단 한 척의 연합군 함정도 파괴하지 못하고 격추될 운명이었다.

  현 시점에서는 서구 언어로 된 연구자료 가운데 윌리엄 머레이의 독일 공군 연구처럼 일본 공군의 구조나 일선 전력, 손실 등을 철저하게 파헤친 연구자료가 존재하지 않지만, 대체적인 정보는 비교적 명확하다. 일본은 1943년에 약 2만대, 이듬해에는 약 26,000대의 항공기를 생산했지만, 훈련이나 운반, 사고, 전투 등에 의한 손실이 커서 일선에 실제로 운용된 기체의 숫자는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1941년의 일본 해군 및 육군 항공대 --언제나 철저하게 분리되어 운용되었다-- 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베테랑 조종사들을 보유했지만, 1944년이 되면 사기는 왕성해도 훈련도 실전경험도 부족한, 첫 출격에서 대부분 격추당하는 미숙한 조종사들만 남았다.

  따라서 많은 일본군 지도자들은 자연스럽게 과거에 의도치 않게 발생하여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사례들을 의도적으로,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형태로 시도하게 되었다. 항공기에 편도 연료만 주유한 뒤 연합군 함정을 향해 돌진해 자폭하도록 한 것이다. 어떻게 운용하더라도 대량의 항공기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자폭 돌격을 하는 편이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전술은 약간의 이점을 더 제공했다. 다소 낡은 구형 기체라도 쓸 수 있었고 조종사도 높은 숙련도를 갖출 필요가 없었으며 대규모 자살 공격 자체가 연합군 함대의 사기에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카미카제, 즉 13세기에 몽고의 침략함대를 무찌른 신이 보내준 바람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자살공격은 1944년 10월의 필리핀 전투에서 처음 실시되었으며 그 뒤 점점 규모가 확대되었다. 일본 본토에는 무려 5,000대의 항공기가 카미카제 공격을 위해 집결해 있었다. 

  오키나와 전선이 끝날 무렵에는 2,550회의 카미카제 공격 가운데 475대가 연합군 함정에 직격하거나 피해를 입힐 만큼 가까운 위치에 추락했다. 사람들이 이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더라도, 보유 자원을 목적에 맞게 활용한다는 관점에 한정한다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거나 터무니없는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은 현실적인 부분에서 뜻하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카미카제에 동원된 항공기들은 대부분 가장 강력한 무장인 1,000파운드 폭탄을 장착하는 대신 500파운드 급 폭탄을 장착했기 때문에 수많은 항공기와 인명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연합국 함정의 손실은 예상보다 작았던 것이다. (199~200 페이지)

  아놀드의 지원을 받은 르메이는 이제 이 새로운 전술[주간 정밀폭격 대신 야간 소이탄 폭격]을 실전에 적용했다. 일본의 표적 상공은 대부분 주간에도 구름에 덮여 있었기 때문에 레이더를 이용해 폭격해야 했지만, 당시의 불충분한 기술과 강력한 제트 기류로 인해 명중률은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밤에는 구름이 옅어지고 일본군의 대공포화는 독일에 비하면 밀도와 정확도 모두 떨어졌으며 일본의 야간전투기 전력은 극소수였다. 게다가 저공으로 비행하는 폭격기는 더 많은 소이탄을 실을 수 있었다. 르메이는 폭탄 탑재량을 더 늘리기 위해 방어 무장을 위한 탄약조차 싣지 않기로 했다. 오키나와 상륙은 겨우 3주 앞으로 다가왔으며 새로운 폭격전술은 다가올 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폭격 공세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1945년 3월 9~10일 밤, 르메이는 334대의 B-29를 도쿄 상공에 투입했다. 일본에게는 방어할 능력이 없었고, B-29들은 방어 무장도 없이 전투기에 맞서기 위한 밀집대형조차 형성하지 않은 채 저공으로 날아와 도쿄의 시타마치 구역에 엄청난 양의 소이탄을 투하했다. 일본인들은 완전히 허를 찔렸으며 대규모 화재에 대한 준비도 부족했다. 세 시간에 걸쳐 도쿄 상공을 맴돈 B-29들은 산업시설과 거주구역이 섞인 이 지역을 불지옥으로 변모시켰다.

  공습으로 8만에서 10만 명 가량의 일본인들이 사망했다. 완전히 불타버린 약 16제곱마일(41.44제곱킬로미터) 구역은 아마도 2차 대전에서 가장 많은 단위면적당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수십 개의 큰 공장과 수백 곳의 하청업체들이 파괴되었고, 이제 일본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항공전이 시작되었다. (223 페이지)


일본과 독일 국민들은 결국 총알(또는 폭탄)받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개인이나 국가에게나 마찬가지로 혹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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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19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ueyonder님은 전쟁 관련 책을 많이 읽으셨군요. 전쟁 관련 책을 뭐부터 읽어야할지 고민한 적이 많았는데, blueyonder님의 글을 많이 참고해야겠습니다. ^^

blueyonder 2017-08-21 17:35   좋아요 0 | URL
많이 읽었다고 내세울 바도 못 됩니다. 그냥 기록으로 몇 자 끄적여 놨을 뿐입니다. ^^;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 vs 일본 태평양에서 맞붙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 정치 4
이성주 지음 / 생각비행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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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히토 일왕의 전쟁 책임에 대해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일본이 청일, 러일, 중일전쟁을 거치며 군부가 지배하는 비정상 국가로 나아갔지만 일왕이 단지 상징적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여러 정황을 들어 설명한다. 3권만큼 새로운 정보가 많지 않고 구성이 조금 산만해 별은 4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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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먼 지니어스 - 유럽의 세 번째 르네상스, 두 번째 과학혁명, 그리고 20세기
피터 왓슨 지음, 박병화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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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에 대해 1416페이지(부록과 주석, 색인 등을 제외하면 1220페이지)에 달하는 글이라니, 원서도 대단하고 번역한 역자, 출판사도 대단하다. 


철학과 과학(수학 포함)에서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독일만큼 큰 기여를 한 나라--또는 민족--을 찾기 어렵다. 거기에는 무언가 있을 터인데, 이 책은 그 이유에 관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거의 백과사전적으로, 여기에 기여한 잘 알려진,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독일인들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독일인들을 알 수 있고 독일 사회를 알 수 있으며, 그들이 현대 세계에 미친 영향을 살펴 볼 수 있다. 책은 히틀러를 거쳐 분단 독일, 통일 독일까지 나아간다.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 하나만 다음에 인용한다.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수상이 되었다. 이로부터 6주 뒤인 3월 15일에는 최초의 예술가 블랙리스트가 발표되었다. 미국을 방문 중이었던 조지 그로스는 독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바우하우스가 폐교되었고, 막스 리베르만(당시 88세)과 케테 콜비츠(66세), 파울 클레, 막스 베크만, 오토 딕스, 오스카어 슐레머는 모조리 미술학교 교사직에서 해고되었다. 몇 주 뒤에는 현대 미술을 비방하는 최초의 전시회가--'공포의 방'이라 불리던--뉘른부르크에서 개최되었으며 이후 드레스덴과 데사우로 이어졌다. 오늘날 이런 사실과 일련의 사건들은 이와 비슷한 많은 일과 더불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해고 사태가 발생하기 4일 전에 '국민계몽선전부Propaganda Ministry'가 창설되어 요제프 괴벨스가 장관에 취임했다. (907~908 페이지)


번역도 좋은 편인 것 같다. 명확성을 위해 번역 용어 옆에 원어 단어도 종종 병기되어 있다. 독일과 독일인에 관해 진지하게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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