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사회의 출현이 장기불황 속에서 진행된 '구조개혁'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경제의 구조는 장기에 걸친 '헤이세이平成 대불황'에 힘입어 크게 변화했습니다. 경제적 토대로부터 상부구조에 이르는 총체적인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완성 국면에 도달한 것이 현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자본도 개인도 생존을 건 필사의 경쟁에 나설 수 밖에 없는 가운데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분열된 사회가 출현한 것이지요. 저는 이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더욱 불안해지고 그렇다고 전체 자본의 수익성도 안정적으로 확보되기 어려울 겁니다. 결국 자본주의의 좁은 틀을 뛰어넘어 이윤의 추구가 아니라 필요의 충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만이 살길입니다.-208쪽
케인즈는 국가들 사이에 산업화나 기술 수준의 차이가 클수록 자유 무역, 곧 국제적 분업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 또한 커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본의 국제적 이동성이 높아질수록 국민 경제의 안정성은 약화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들 또한 금전적 가치와 수익성의 논리에 휘둘리게 되는 한편,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도 현저하게 약화됨으로써 각종 비경제적/사회적 불이익이 커진다고 보았다. 19세기에는 국가 간 생산성의 격차가 컸으므로 자유 무역의 경제적 이익은 컸던 반면, 자본의 이동성은 그리 높지 않아 자유 무역에 따른 사회적 불이익은 크지 않았고, 따라서 자유 무역이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국가 간의 기술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대신 자본이 국경을 뛰어넘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상황은 반전된다. 이제는 자유 무역에 따른 경제적 이익과 비경제적 불이익의 저울질이 불이익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다.-217쪽
[케인즈]가 금융은 국내에 기반을 둔 것이어야 한다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반대했던 첫 번째 이유는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이 약화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국민 경제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수행되는 정부의 정책은 자본의 수익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 불리한 정책이 펼쳐질 경우 즉각 해당 국가를 이탈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본 탈출이 대규모로 일어나면 국민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따라서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경제에서 정부는 이러한 사태를 우려해 쉽사리 정책을 펼칠 수 없게 된다. 케인즈의 입장에서 보자면,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자본의 높은 이동성으로 가뜩이나 정부의 정책 수행 능력이 제약된 상황에서 정부의 손발마저 묶는 고약한 제도인 셈이다.-218쪽
케인즈는 경쟁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경쟁이 경제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적절히 제약되지 않은 무한 경쟁은 인간을 승자의 탐욕과 패자의 불안으로 가득 찬 약육강식의 정글로 몰아넣을 뿐 아니라, 수단이 목적을 지배하는 반윤리적 사회를 낳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조화를 이루고 개인의 자유를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꿈이 될 뿐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며 안정적으로 경제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국민 경제의 효율마저 저해하게 된다. 그리고 케인즈는 경쟁이 사회를 위협하지 않고 경제적 효율을 달성하려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안전망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서구 사회보장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의 작성에 동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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