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서 법칙이란 영원히 깨지지 않는 불변이 아니다. 자연 현상을 관찰하면서 끄집어낸 자연의 규칙일 뿐이다. 법칙을 따라야 할 범주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법칙이 필요하다. (27 페이지)

  학부 과정에 있는 동안 학생은 교수가 보여주는 세상을 보며 학문의 지평을 넓혀 간다. 그것이 학생이 받아들이는 세상 전부다. 특출난 학생을 제외하면 학생에게 수업 시간은 물리학이란 학문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재라고 해도 초급 교재로 배우면 학생의 시선은 딱 그 정도에서 멈춘다. (43 페이지)


앞에서 물리 법칙의 임시성에 대해 얘기했지만 뒤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이른바 '아름다움' 앞에서 이론물리학자는 어쩔 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움베르토 에코는 《미의 역사 Soria Dela Belca》(열린책들, 2005)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이란 절대 완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에코의 말을 물리학에 적용하면 절반만 맞는 말일지 모르겠다. 물리학에서 아름다움은 맥스웰 방정식처럼 수 억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모습 속에 깃들어 있다. 에코가 맥스웰 방정식의 의미를 알았다면 이것이야말로 불변하는 미의 극치라며 찬탄했을 것이다. 맥스웰 방정식은 형식적 미와 내재적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자연의 예술 작품이었다. (81 페이지)

학자가 세상에 남기는 건 논문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논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과학에서는 위대한 논문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랜다. 물론 역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논문도 있지만 과학과 공학에서 논문이란 그 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로 족하다. 독일 인문학자 하랄트 바인리히는 《망각의 강 레테Lethe: Kunst and Kritik des Vergessens》(문학동네, 2004)에서 망각을 자연과학의 특징으로 들었다. 실제로 그렇다. 오래된 논문은 서서히 잊혀간다. 학자는 자신이 밟고 지나온 디딤돌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내게서 배운 학생은 나를 떠나 자신만의 학문을 개척한다. 그렇게 학문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물론 가르친 학생 중에서는 학문을 떠나 회사로 간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그곳에서 자신이 익힌 걸 바탕으로 자신만의 길을 간다. 논문은 잊혀도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영원히 남는다. (216~217 페이지)


위에서 "영원히"란 강조의 뜻으로 이해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정신'이 다음, 또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지속하는 경우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영원'하지는 않다. 


무엇이 되는가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221 페이지)


위의 말은 당위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종종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말을 이렇게 변조할 수 있겠다. 무엇이 되는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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