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마엘이 왜 선원으로 배를 타는지, 선원으로서 일을 어떻게 감당하는지에 대한 장광설. 아직 1장이다.
아니, 내가 바다에 나갈 땐 일개 선원이 되어 돛대 바로 앞과 앞 갑판 아래와 제일 높은 돛대 꼭대기를 지킨다. 이 일 저 일 부려 먹으니 오뉴월 들판의 메뚜기마냥 이 활대에서 저 활대로 뛰어다녀야 하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이런 일들이 상당히 힘겹기도 하다. 그건 자존심을 건드리며, 특히 뭍의 유서 깊은 집안, 예를 들어 반 레슬러, 랜돌프, 하르디카누트 가문 출신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 심한 건 타르 단지에 손을 담그기 전에 시골 선생으로서, 제일 큰 사내아이도 그 앞에서 쩔쩔 맬 정도로 위세를 떨치던 경우다. 단언컨대, 학교 선생에서 뱃사람으로 전업하는 과정은 통렬한 것이어서, 웃으며 견뎌내기 위해선 세네카와 스토아 학파를 진하게 달여 마셔야 한다. 하지만 이런 괴로움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 무뎌진다.
고약한 늙다리 선장이 내게 갑판 청소를 시킨들 그게 어떻단 말인가? 신약 성서의 저울에 달았을 때 모욕의 무게가 얼마나 되겠느냐, 이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늙다리 선장의 말을 순순히 고분고분 따른다고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를 하찮게 여길까? 우리 중에 노예 아닌 자 누구인가? 말해 보라. 그러니 늙은 선장이 아무리 나를 부려 먹어도, 아무리 몰아붙이고 다그쳐도 아무렇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는 만족한다. 누구나 어떤 면에서는, 그러니까 육체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는, 비슷한 처우를 받는다. 그러니 혹사는 보편적이고,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 주며 자족해야 한다.
다시 말하건대, 나는 늘 선원으로 바다에 나간다. 그러면 노동의 대가를 받지만, 승객한테 한 푼이라도 돈을 줬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는커녕 승객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돈을 내는 것과 받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돈을 지불하는 행위는 아마도 과수원의 두 도둑으로 인해 우리가 받는 가장 불편한 형벌일 것이다. 그러나 돈을 받는 것, 그에 견줄 것이 무엇이랴? 돈이 세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의 근원이며 부자는 어떤 경우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우리가 굳게 믿는다는 걸 감안하면 사람들이 교묘한 벌이로 돈을 받는 건 정말 경탄할 노릇이다. 아! 우리는 얼마나 기꺼이 파멸에 몸을 내던지는가! (39~40 페이지)
다음은 원문이다.
No, when I go to sea, I go as a simple sailor, right before the mast, plumb down into the forecastle, aloft there to the royal masthead. True, they rather order me about some, and make me jump from spar to spar, like a grasshopper in a May meadow. And at first, this sort of thing is unpleasant enough. It touches one's sense of honor, particularly if you come of an old established family in the land, the Van Rensselaers, or Randolphs, or Hardicanutes. And more than all, if just previous to putting your hand into the tar-pot, you have been lording it as a country schoolmaster, making the tallest boys stand in awe of you. The transition is a keen one, I assure you, from a schoolmaster to a sailor, and requires a strong decoction of Seneca and the Stoics to enable you to grin and bear it. But even this wears off in time.
What of it, if some old hunks of a sea-captain orders me to get a broom and sweep down the decks? What does that indignity amount to, weighed, I mean, in the scales of the New Testament? Do you think the archangel Gabriel thinks anything the less of me, because I promptly and respectfully obey that old hunks in that particular instance? Who aint a slave? Tell me that. Well, then, however the old sea-captains may order me about--however they may thump and punch me about, I have the satisfaction of knowing that it is all right; that everybody else is one way or other served in much the same way--either in a physical or metaphysical point of view, that is; and so the universal thump is passed round, and all hands should rub each other's shoulder-blades, and be content.
Again, I always go to sea as a sailor, because they make a point of paying me for my trouble, whereas they never pay passengers a single penny that I ever heard of. On the contrary, passengers themselves must pay. And there is all the difference in the world between paying and being paid. The act of paying is perhaps the most uncomfortable infliction that the two orchard thieves entailed upon us. But being paid,-- what will compare with it? The urbane activity with which a man receives money is really marvellous, considering that we so earnestly believe money to be the root of all earthly ills, and that on no account can a monied man enter heaven. Ah! how cheerfully we consign ourselves to perdition! (pp. 6-7)
이슈마엘이 옆에서 얘기하는 것 같다. 오타가 하나 있는데, 뭍의 유서 깊은 집안 언급하며 예로 드는 "반 렌슬러"이다. 책에는 "반 레슬러"로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