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와 검찰의 시간 - 윤석열과 검찰주의자들
이재성 지음 / 어마마마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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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기는 정치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인가. 비정상의 정상화인가, 아니면 정상의 비정상화인가. 답은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원자력발전소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기름이 나지 않는 나라에서 원전 없이 어떻게 전기를 수급하냐는 입장도 있을 수 있고, 후쿠시마의 경우와 같이 원전은 한 번 사고가 나면 정말 되돌리기 힘들므로 전반적으로 원전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 있을 수도 있다. 세계의 전반적 추세는 탈원전이다. 이 문제는 정쟁의 소재로 삼을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고민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맞다. 


지난 정부에서는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전반적으로 신규 원전을 하지 말자는 원칙을 내세웠다. 정작 원전의 발전 비율이 줄진 않았지만. 현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무리하게 탈원전을 내세웠으며 마치 탈원전 정책에 불법이 있었다는 듯이 단죄하며 정반대로 원전 부흥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정치의 가장 안 좋은 측면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들 수 있는 예는 무수히 많다. 외교에서도 지난 정부와 완전히 반대로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는 와중에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아무리 전 정부가 싫어도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뒤집는다면 국내적으로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신뢰할 수 없는 정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공화국의 목표는 무엇인가. 기껏해야 검찰기득권의 유지 정도로 생각했는데, 요즘 진행되는 사항들을 보면 너무 극우 편향이라 보수 인사들조차 우려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대통령이 극우인사들에게 포섭된 것인가, 아니면 원래 생각이 이랬던 것일까. 극우가 우리나라 주류의 본류인가. 


<개와 늑대와 검찰의 시간>에서는 검찰 뿐만 아니라, 관료와 언론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준다. '공정(fairness)'이 요즘 이슈인데(특히 젊은이들의), 단순히 개인이 노력한 만큼 얻는 것이 공정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재능과 환경까지 고려하는 것이 좀 더 진정한 공정이 아니겠느냐는 화두를 던진다. 현 상황이 답답해서 읽어봤는데, 단순히 검찰 개혁이란 범위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여러 구조적 문제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준다.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고민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관료들의 저항’은 역사적이고 구조적이며 계급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재정과 세제, 복지와 분배, 외교와 남북관계를 비롯한 국정운영 철학이 일치하는 보수(반개혁) 정부에서는 관료들이 청와대에 저항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개혁을 추진하는 리버럴 정부에선 청와대와 여당에 반기를 드는 관료가 많아지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발생한다. 관료집단 스스로 우리 사회의 강력한 기득권이자 특권층이기 때문이다. 리버럴 정부에선 ‘정부=청와대’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언론은 청와대에 저항하는 관료를 찬양하고 부추긴다. ‘김동연 패싱론’을 만들어내거나 ‘살아있는 권력수사론’을 증폭시켜 권력에 저항하는 의인 프레임을 만들어낸다. 보수적 관료와 언론의 연합작전으로 개혁은 좌절하고 반기를 든 관료는 영웅이 된다. 윤석열과 최재형, 김동연의 대선 도전 스토리가 대략 이러하다. 박근혜 탄핵으로 기존 보수정치 세력이 망해버린 상황에서 현 정부에 맞섰던 관료 출신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19 페이지) 

  개혁 정부가 집권하면 보수우파 언론은 전투모드로 돌입한다. 대한민국이 사실상 내전 중이라는 사실은 아무 날짜나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안다. 비판이라기보다 비난과 저주에 해당하는 날선 언어가 날마다 이 매체의 지면과 화면을 채운다. 조선일보는 총 대신 활자를 쏜다. 요즘은 그 흔한 허니문도 없다. 대표적인 경우가 문재인 정부 초기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목표 시기만 달랐을 뿐 여야의 주요 후보가 모두 약속했던 내용이었다. (33 페이지) 

  한국 검찰의 역사는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나뉜다. 목줄을 세게 쥐는 권위주의(또는 독재) 정부에서는 충직한 개였다가, 풀어 놓아주는 리버럴 정부에서는 야생의 늑대가 된다. 개의 시간에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지만, 늑대가 되면 스스로의 본능에 따라 살아간다... 생명 유지와 번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먹이를 사냥하고 목숨을 건 결투도 피하지 않는다. (49 페이지) 

  ... 검찰에 힘이 쏠린 이유 중 하나인 구속 위주의 사법 관행 혁파, ‘유전무죄’ 사법 불평등의 다른 이름인 전관예우 타파, 검찰 전관예우의 밑바탕인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기소배심 도입 등 사법 민주화, 피의자 권리의 대폭 강화 등 중대한 개혁 과제가 남아 있다. 검찰 개혁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과 동의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 저항하는 검찰은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65 페이지) 

  수구세력이 검찰개혁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검찰이 수구세력의 주요 진지이자 요새이기 때문이다. 군대를 동원한 쿠데타가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공권력 가운데 가장 강력한 물리력(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형집행권)을 독점하는 검찰을 수구세력은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활용해 왔고, 그 과정에서 둘 간의 정치적 연대가 형성됐다. 여기에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재벌권력이 가세하면서 수구세력의 트라이앵글이 완성됐다. 요컨대, 반검찰개혁 전선은 수구세력 계급투쟁의 최전선이다. (78 페이지) 

...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우연성’과 ‘재능 불평등’ 현상을 수정하거나 보완하려는 시도는 저항에 부딪혀 비틀거리기 일쑤고, 학력과 시험 성적을 ‘노력’이라는 주관적 지표로 절대화하면서 사회적 격차를 유지하거나 더 벌리려는 세력이 압도적이다. ‘전교 1등’을 자처하는 의대생들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했던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가 그런 경우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경쟁의 틀에서 최선을 다해 자격을 갖췄는데 이제 와서 규칙을 바꾸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약자의 논리였던 공정성은 이제 시험으로 자격을 획득한, 토마 피케티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한국형 브라만 계급의 특권을 보호하는 무기가 되었다. 지금 공정을 말하는 이들은 이미 브라만이거나 브라만을 지향하는 이들, 또는 그들을 옹호하는 언론이다. (137~138 페이지) 

  이 나라의 건국세력으로서 보수우파의 권력에 대한 집요한 의지는 상식을 초월했다. 검찰권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도저히 차기 대권이 보이지 않던 암흑의 터널을 뚫고 유력한 대선주자를 세웠다. 현 정권을 향해 칼을 들었던 검찰총장이 어떻게 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설 있겠느냐는 상식은 어차피 이들의 것이 아니다. 이들의 권력욕 앞에서는 모든 상식이 무용해진다. 상식을 내팽개쳐 국민의 심판을 받았던 주류가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5년 만에 다시 집권의 꿈을 꿀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의 상식은 허약하다. 우리 민주주의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겸허해져야 할 시간이다. (151 페이지) 

  내로남불 프레임은 도덕 기준이 높은 진보가 필패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내로남불 프레임이 특히 문제인 것은 뻔뻔한 악당들이 면죄부를 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악당들은 나쁜 짓을 해도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한다. 악당을 비난하며 자신은 악당이 아닌 것처럼 행세하던 사람들이 조그만 잘못에도 대역죄인처럼 비난받는다. 이 과정에서 민생은 사라지고 무의미한 정쟁만 무한 생산된다. 도덕성 경쟁이 정책 경쟁의 지우개 노릇을 하는 셈이다. 도덕성 경쟁을 하지 말라는 게 도덕성을 포기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도덕성을 정치적 상품으로 팔지 말라는 것이다... 진보가 내놓아야 할 상품은 따로 있다. 기득권에 기반한 정당들이 낼 수 없는 진보적 정책이다. 우리가 덜 타락했다고 주장하지 말고 우리가 더 유능하다고 말해야 한다. (160~161 페이지) 

  중도강박증은 진보언론이 더 심하게 앓고 있다. 민주당과 국힘 사이에서 기계적 균형과 형평성을 지키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에 역편향 드라이브가 걸려 있다는 걱정마저 들게 한다. 민주당에 유리할 것 같은 팩트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취재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국힘이 명백한 거짓 주장을 펼쳐도 아무런 여과없이 보도해 주기도 한다. (169 페이지)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실패는 예정돼 있었다. 권력 분산과 민주적 통제라는 기본 원칙에서 벗어난 그림을 그렸다. 지름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갔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고, 경찰과 검찰의 (중대)수사 및 기소를 시민이 통제하는 대배심(grand jury)을 도입해야 했지만,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 적당히 타협해 인사로 해결하려 했다. 윤석열을 수족처럼 부리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너무 쉽게 믿었고, 너무 많은 권한을 주었다. 적폐수사가 끝나갈 무렵, 서울중앙지검장 신분으로 조선일보의 방상훈과 중앙일보의 홍석현을 잇달아 만났을 때부터, 윤석열은 이미 칼끝을 돌리겠다고 마음먹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윤석열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검찰의 주특기였던 정적 제거 기술을 총동원했다. 피의사실과 직접 관련 없는 사생활의 가십(강남의 건물주가 꿈이라는 등)을 흘려 인격을 짓밟았고, 과도한 강제수사와 별건수사로 법의 상식을 짓밟았다. 현 정권을 정적 대하듯 했다.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라고 말했던 윤석열은 수사권을 갖고 정치를 했다. 그리고 최소한의 정치적 알리바이조차 걷어차고 국민의힘에 입당함으로써 깡패보다도 못한 양아치 수준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171~17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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