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간 <콘택트 1>에서 주인공이 외계신호를 처음 받는 부분을 옮겨 놓는다.


  허겁지겁 엘리는 통제구역으로 들어서 계기판에 다가갔다.

  안녕들 하세요? 데이터를 좀 봅시다. 으흠, 진폭 범위는 어떤가요? 간섭 위치는? 자, 그럼 이제 그쪽에 가까운 별이 혹시 있나 봅시다. 아! 직녀성이군요. 아주 가까운 별인데요

  말을 하면서도 엘리의 손가락은 바쁘게 자판 위를 움직였다.

  음, 겨우 26광년 떨어져 있군요. 이미 관찰을 했었지만 신통한 결과가 없었지요. 아레시보에서 근무할 때 개인적으로 관측한 적이 있고요. 절대강도가 얼마죠? 이런, 수백 잰스키jansky나 되는군요. 이건 FM 라디오로도 잡을 수 있는 수준이잖아요.

  정리해 봅시다. 직녀성에서 아주 가까운 하늘에서 신호가 오고 있군요. 주파수는 9.2기가헤르츠, 대역 너비는 몇백 헤르츠 정도. 선편광이고 서로 다른 진폭 안에서 움직이는 파동들을 보내오고 있어요

  엘리가 입력하는 명령에 따라 화면에는 이제 모든 전파망원경 상황이 나타났다.

  116개 망원경이 수신하고 있군요. 망원경 이상 작동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이제 시간에 따른 움직임을 살펴볼까요? 별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나요, 아니면 전자 첩보 인공위성이나 비행기일 가능성이 있나요?

  별의 운행과 동일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애로웨이 박사님

  그렇군요. 지구 위에서 오는 신호는 아니군요. 또 몰니아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도 아닌 것 같고. 물론 이건 확인해 봐야겠지만. 북미 대공 방위사령부와 연락해서 인공위성일 가능성이 있는지 의견을 들어봐 줘요. 인공위성이 아니라면 두 가지 가능성이 남는군요. 짓궂은 장난, 혹은 마침내 날아온 외계의 메시지. 수동 장치를 좀 가동해 봅시다. 전파망원경 몇 개를 골라 신호의 세기가 충분히 큰지 확인해 주세요. 우리를 놀려먹기 위한 장난인지도 모르니까 (95~96 페이지)


번역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한 번역. 일단, 한국 독자에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없앴다. 과학자 둘의 이름(윌리, 스티브)이 그렇다. 이건 이희재의 번역론에도 나오는데, 난 사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문화적으로 낯선 것을 그대로 두지 말자는 것이 이희재의 주장이다. 편한 것으로 대체하거나 중요치 않으면 아예 삭제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도 아닌데 잘 모르는 문화 정보가 나온다면 그냥 두고 각주로 처리해도 되지 않나. 아니면 그냥 각주도 없이. 내가 영어책을 보면서 느끼는 낯섦을 번역책을 보면서 느끼면 안 되는지. 두 번째는 '그녀' 대신 그냥 이름 '엘리'를 써서 주인공을 지칭했다. 이건 배워둘 만한 습관인 것 같다. '그녀'가 자꾸 나오는 것보다는 이름이 더 자연스럽다.  번째는 대화체가 상당히 간결하다. 그냥 명사로 끝날 때도 있다. 뭐, 크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주인공 캐릭터의 말투니까 역자가 그렇게 컨셉을 잡을 수도 있다. 네 번째, 원문에는 없는 말("정리해 봅시다")을 넣어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어느 정도는 역자의 맘이지만(난 원문주의를 버렸다), 너무 많이 바꾸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 과학적 내용이 비교적 정확하다. 하지만 time baseline 부분을 너무 의역했다. 영어로 읽었을 때 딱딱하고 일반인이 잘 모를 것 같은 기술적 내용이 튀어나오는 경우 이를 말랑말랑하게 번역하는 것이 좋을까. 이 부분도 난 동의하지 않는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잘 읽히는 괜찮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난 가능하면 원문 읽는 느낌을 살리도록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자는 독자의 가독성을 조금 더 중시하는 이희재의 주장 쪽으로 가 있다. 


하지만 오역이 하나 있는데, 수동 조작으로 "신호의 세기가 충분히 큰지 확인해" 달라는 부분이다. 40년 전 번역과 마찬가지의 오역이다. 신호의 세기가 충분히 크지 않다면 "놀려먹기 위한 장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중간에 들어간 '신호의 세기가 충분히 크다'는 말은 개별 전파 망원경에서도 수신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일 뿐이다. 신호가 만약 너무 약하다면 개별 전파 망원경에서 수신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신호의 세기와 장난 여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PS. 특이한 점 하나: "⌟" 앞에 마침표가 없다. 원래 이런 규칙이 있나 다른 책(예컨대, 열린책들 간 <장미의 이름>)을 살펴봤는데 여기에는 마침표가 있다. 이 출판사만의 규칙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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