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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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거의 읽지 못하는 편이다. 시의 모호함이 대개 나의 이해를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와 해설을 함께 읽는 것도 좋을 듯싶은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읽으면서 다시 깨닫는 것은 모든 것이 종종 가까이 하고 많이 접해야 이해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저자가 바로 그런 이로서 그의 안내 역할이 나쁘지 않았다. 모든 시가 다 와 닿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평소에 들었던 시인들 시의 다른 면모와 해석, 그리고 평소에 듣지 못했던 시인들의 시를 이렇게나마 읽게 되어 좋았다고 생각한다. 책 속 시 몇 편을 다음에 적어 놓는다.



장례식 블루스


W. H. 오든


모든 시계를 멈춰라, 전화를 끊어라,

기름진 뼈다귀를 물려 개가 못 짖게 하라,

피아노들을 침묵하게 하고 천을 두른 북을 쳐

관이 들어오게 하라, 조문객들을 들여보내라.


비행기를 하늘에 띄워 신음하며 돌게 하고,

그가 죽었다는 메시지를 하늘에 휘갈기게 하라,

거리의 비둘기들 하얀 목에 검은 상장喪章을 두르고,

교통경찰에게는 검은 면장갑을 끼게 하라.


그는 나의 동쪽이고 서쪽이며 남쪽이고 북쪽이었다,

나의 평일의 생활이자 일요일의 휴식이었고,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다,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으나, 내가 틀렸다.


별들은 이제 필요 없다, 모두 다 꺼버려라,

달을 싸버리고 해를 철거해라,

바다를 쏟아버리고 숲을 쓸어버려라,

이제는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니.


(126~127 페이지)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艱辛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170~17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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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3-04-03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blueyonder 님께 감사!
W. H. Auden 의 Funeral Blues 를 제 발해석이 아니라
Professionally 번역한 시로 읽으니 새롭네요.
윤동주 시인의 시 몇 개는 아직도 외우고 있을 정도고
시집도 가지고 있답니다.

blueyonder 2023-04-03 15:22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앞으로 시와 문학을 좀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