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3부작의 마지막 권. 저자는 감사의 글에서, 한 권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막상 한 권 분량을 썼을 때 하고 싶은 얘기의 절반도 하지 못해 3부작으로 바뀌게 됐다는 고백을 한다. 분량 제한 없이 쓰자고 마음먹어서 그런지 뒤로 갈수록 책이 점점 두꺼워지는데, 3권은 거의 1000페이지에 육박한다. 만약 번역된다면 적어도 6권, 아니면 9권이나 10권까지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와인버그의 <A World at Arms>의 번역본이 3권이니 전혀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한편, 태평양전쟁에 관해 최소 6권씩이나 되는 번역서가 나오기는 아마 힘들 터이니 이 책이 번역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태평양전쟁 당시의 언론과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책을 시작한다. 뉴딜 정책을 펼치며 3선을 한 민주당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당시 보수 언론들은 매우 적대적이었다. 루스벨트는 잘못 보도된 기사를 ‘거짓말’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1944년 11월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어떻게든 루스벨트를 이기려고 하던 공화당은 현역 군인이던 맥아더를 자당 후보로 끌어들이려고까지 했다. 루스벨트를 싫어하던 맥아더도 공화당 지지자들과의 연락을 유지했다. 결국 맥아더는 공화당 후보가 되지 못했고, 루스벨트는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 되는 데 성공한다. 


진주만에서의 패배에 버금가게 필리핀에서 패전한 맥아더가 국민적 영웅이 되는 과정도 언론의 보도와 맞물린 흥미로운 과정으로 묘사된다. 맥아더는 그가 지휘한 일반 병사들에게는 거의 전적으로 인기가 없었다. 필리핀에서 고립되어 전투를 지휘할 때도 전선 시찰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커다란 결정이 큰 고민 없이 내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루스벨트가 부통령을 결정하는 과정도 그렇다. 루스벨트는 하와이에서 태평양 전선의 두 사령관인 니미츠와 맥아더를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던 시카고에 들린다. 시카고에 정차한 시간은 단 2시간이었는데, 이 짧은 시간 동안 민주당 지도부를 면담하며 부통령 후보의 순서가 뒤바뀌게 된다. 이렇게 부통령이 된 사람이 트루먼이었다. 루스벨트가 네 번째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서거하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던 부통령직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가 되어 버린다.


1장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일본과의 전쟁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에 관한 전략적 논쟁이다. 이 과정에서 결국 합동참모본부가 주장하던 타이완 점령 후 중국을 통해 일본에 압박을 가하는 전략이 폐기된다. 해군참모총장이던 킹 제독이 이러한 전략의 지원자였는데, 부하들의 설득에 결국 그는 이 전략을 포기한다. 하지만 중국의 공산화 후 그는 이 전략의 포기를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전후 국제질서를 결정짓는 커다란 분수령이었다는 것이 더욱 드러나는 장면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이후 한반도가 냉전의 최전선이 되는 데에는 이러한 전략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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