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유물론자, 탈레스

  탈레스의 위대함은 '최초의 철학자'였다는 점에만 기인하지 않는다(물론 그는 최초의 철학자였지만, 당시만 해도 과학과 철학의 경계는 불분명했다). 그는 우선 무언가를 덧붙이거나 그 너머를 탐구하기에는, 다시 말해서 '형이상학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자연, 즉 '퓌시스(physis)'에 집착하는 '자연철학자'였다. 그는 늘 물질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했다. 요컨대 그는 유물론자이며 물질주의자였다. 어쩌면 그리스 사상가들은 물질과 정신을 미처 구분하거나 분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탈레스와 그를 따르는 학파에게 물질은 너무도 소중했기 때문에 이들은 이것을 생명과 혼동할 정도였다. 그들에게 모든 물질은 살아 있는 생명체였다. 그러므로 이들 학자들을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유물론자'라고 볼 수는 없다. 이들에게는 물질과 비물질의 차이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념론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들을 유물론자라고 분류했다. 이렇게 볼 때, 이들은 원시 유물론자라고 할 수 있다. 훗날 그리스인들은 이들 이오니아 출신 학자들을 가리켜 물활론자, 즉 물질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생각하는 자들, 혹은 이 세계에서 생명 또는 영혼은 물질의 모습으로 왔고, 생명 또는 영혼은 물질에 내재적이며, 생명 또는 영혼은 물질의 반응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2권, 127~128 페이지)

고대 유물론자들의 사라진 저서들

이오니아 사상과 탈레스 학파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물질적 요소에 기반을 둔 역동적인 세계관을 지향했다.

  이오니아인들의 유물론은 자연에 대해 합당하지만 매우 순진한 직관, 즉, 자연을 영원하고 무한하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물질의 덩어리로 보는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직관(입증된 과학 지식이 축적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직관만이 가능했다)은 기원전 5세기에 데모크리토스에게 계승되면서 더욱 섬세하고 명확해졌다.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은 그와 탈레스를 갈라놓는 한 세기라는 시간 속에서 파르메니데스 학파와 헤라클레이토스의 도전을 받았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파르메니데스 학파는 모든 것은 안정, 곧 움직임의 부재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헤라클레토스는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반대 의견을 반박함으로써, 또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뛰어넘음으로써 데모크리토스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갔으며 나름대로 자연의 체계를 정립해갔다. (2권, 134~135 페이지)


플라톤 관념론의 반대편에 선 유물론자

플라톤은 물질세계의 존재를 부정했으며, 감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계를 비존재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위에, 자신 너머에 이상적 형태로 이루어진 세계를 창조했으며, 이 세계는 이성에 의해서만 접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우선 자신의 눈으로 보는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는 원자론을 제시한 대선배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물리학을 완성했다. 이 세상에는 원자들과 이들의 움직임, 그리고 공백이 있을 뿐이다. 모든 현실, 즉 우리가 보는 물체와 존재들은 물론, 작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물체와 존재들을 모두 포함하는 현실의 모든 종은 예외 없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영혼은 존재한다. 플라톤식 신화에서 지나치게 칭송을 받은 영혼, 시인이면서 철학자인 플라톤에 의해 허망한 불멸을 약속받거나, 죄를 저질러 악마의 불구덩이로 떨어지거나, 어쨌거나 영혼은 분명 존재하지만 일시적일 뿐이며, 자신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타고난 해체의 운명을 잘 받아들인다면 기쁨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 (3권, 570~57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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