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실재론자(realist)’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실재론(realism)’이란 자연—물질세계—가 우리(나)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즉, 내가 없어져도 세상은 존재한다[1]. 사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의미에서의 실재론은 상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실재론이 미시세계를 기술하는 양자역학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관측자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미시세계에서 물질의 성질은 우리가 무엇을 측정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측정 이전에는 결정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이것이 현재까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석이다. 이론에 해석이 따른다는 말 자체가 양자역학의 난해함을 말해준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은 간과한 채, 주어진 방정식을 ‘요리법(recipe)’처럼 사용해서 많은 유용한 결과들을 얻어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반도체 장치들이다.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현대 생활에 필수적인 스마트폰, 인터넷, 컴퓨터 등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양자통신’이니 ‘양자암호’니 ‘양자컴퓨터’니 하는 말들까지 나오고 있다. 앞에 ‘양자’가 들어가는 요즘 유행어는 양자역학이 알려주는 미시세계의 성질인 ‘얽힘(entanglement)’을 좀 더 전면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이다.
스몰린의 신간 <Einstein’s Unfinished Revolution>은 지금 주류로 받아들여지는 양자역학의 해석을 ‘반실재론(anti-realism)’이라 부르며, 미시세계에서 실재론의 부활을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양자역학에 관한 관점은 다음의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보어의 코펜하겐 해석. 위에서 언급한 관점이다. 현재 주류로 받아들여진다.
2. 양자역학은 자연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나타낼 뿐이며, 자연의 본질적 성질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
3. 조작주의(operationalism)의 관점. 양자역학은 우리가 원자를 측정할 때 일어나는 일을 형식화한 것이다. 원자의 본질적 성질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2, 3번은 단순한 실재론의 문제를 넘어서 과학이 실재를 어떻게 기술하느냐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위의 관점 모두를 스몰린은 반실재론이라 부른다. 주류인 코펜하겐 해석이 가장 강력한 반실재론이다. 쟁점이 단순히 해석의 문제일 뿐이라면 현실에 유용한 결과를 낳을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몰린은 현대 물리학이 처한 난제를 근본부터 새로운 접근법으로 타개하자고 주장하는 극소수 중의 하나이다. 그는 실재론을 복원한 새로운 양자역학으로 현재 물리학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3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어떻게 양자역학이 비실재론적 관점을 얻게 되었는지 기술한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가 주인공이다. 두 번째는 그동안 무시되었던 실재론적 양자역학에 관한 설명이다. 드 브로이, 봄, 그리고 에버렛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은 기존의 양자역학을 넘어서는 스몰린의 전망이다. 책의 뒤표지에 “현대 물리학의 최고 전문가가 보여주는 양자 이론에 관한 대담한 새 전망[2]”이라고 나와 있는데, 매우 흥미로운 책이 될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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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재론이란 말을 좀 더 엄격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과학적 실재론’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러한 관점은, 과학이 실재(reality, 물질세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는 주장이다. 즉, 과학이 기술하는 것은, 인간의 편견(인식)이 반영되지 않은 실재의 진정한 성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과학이 기술하는 것이 실재의 진정한 성질이 아닐 수도 있나? 과학철학자인 장하석 같은 이는 그렇다고 말한다. 상충되지만 모두 올바른 결과를 주는 두 가지 이론체계의 예를 들면서(예: 뉴턴의 중력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 과학이란 단지 ‘실천체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2] “A daring new vision of quantum theory from one of the leading minds of contemporary physics”를 마구 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