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번역된 과학서적을 읽을 때마다 잘못된 번역으로 인한 당혹함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오역의 최종 책임은 번역가가 지겠지만, 편집자도 상당한 부분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책의 내용이 꽤 전문적이면 전문가의 감수를 거치게 될 텐데, 문제는 감수 없이 내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책에서조차 번역가와 편집자가 기본적인 실수를 한다는 데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이언 스튜어트의 <세계를 바꾼 17가지 방정식>도 그렇다. 다루는 주제와 내용은 매우 유익하다. '세상을 바꾼' 중요한 방정식에 대해 역사적 사실과 의의를 매우 흥미롭게 설명한다. 하지만 수학과 물리 용어 등에서 가끔 얼토당토 않은 실수가 보인다. 사실 이런 실수는 이공계 대학생 정도만 돼도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실수가 발생하는 데서 여전히 문과와 이과의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고, 그 벽을 뛰어넘기 위해 신경을 좀 더 쓸 성의의 부족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이 책에는 대학 수리과학과 교수의 추천사가 앞에 붙어 있다. 이러저러한 의의와 재미를 들어 이 책을 추천한다. 하지만 '과연 추천자가 이 책을 정말로 읽고 추천했는가'라는 질문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진정 이 책을 정독했다면 눈에 띄는 분명한 오류를 지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항상 원칙을 얘기하는데, 추천은 책을 읽고 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물론 세상 사는 데에 있어 원칙을 어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가능하면 원칙대로 하는 것이 후회를 덜 남기는 방법이고,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원칙 하면 떠오르는 분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가 원칙주의자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종종 대통령이 추천하는 책이라고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대통령이 읽지도 않고 대충 훑어본 후 추천했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어제 일본과 과거사에서 비롯된 분쟁의 변곡점이라고 할만한 사건이 있었다. 우리가 GSOMIA 종료와 WTO 제소를 유보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을 우리의 굴복이라고 할 이도 있겠지만, 우리 정부는 원칙을 지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끝까지 '일본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면 기꺼이 협력하겠다'고 했었다. 일방적으로 대화를 거부한 것은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수출 규제 관련하여 대화를 하겠다니, 그로 인해 시작됐던 2가지 사항의 진행을 유보시킨 것이다. 여기에 어떠한 원칙의 훼손은 없다. 일본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 한 우리는 2가지를 예정대로 진행시킨다는 것이었고, 일본의 태도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압력으로 인한 것이든 어쨌든) 일본의 태도 변화가 일어났다. 유보는 협상하는 동안만 하기로 한 것이니 우리는 명분도 쌓고 이제 일본에 공을 넘긴 것이다. 난 이 정부의 논리적이고 원칙적인 대응을 지지한다.


우리가 이렇게 품위 있는 정부, 원칙 있는 정부를 갖게 된 것은 대통령의 공의 크다. 요즘과 같이 선동 정치가 판을 치는 세계에서 문 대통령의 존재는 매우 귀중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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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관심 있는 중간 부분부터 읽고 있는데, 눈에 띄는 2개의 오류를 다음에 기록해 놓는다.


삼각 함수의 모든 일반 공식들이 이 급수들의 결과이므로, 그 공식들 역시 자동으로 딸려간다. '사인의 파생물은 코사인이다.'와 같은 미적분의 기본적 사실들도 그렇다. (145 페이지)


'파생물'의 원어는 'derivative'일 것이다. derivative는 미분하여 얻게 되는 또 다른 함수인 '도함수'를 뜻한다. '사인을 미분하면 코사인이 된다'는 것은 고등학교 이과생 정도면 아는 사실이다.


... 우리는 막대 절반에서는 u(x, 0) = 1이지만 다른 절반에서는 -1인 초기 열 분포 상태가 필요하다. 이런 상태는 비연속적이다. 이를 공학 용어로 말하면 구형파(square wave)라고 한다. (250 페이지)


'square wave'는 '사각파'이다. 이것이 어떻게 '구형파'로 번역이 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 공대생 누구에게 물어봐도 알만한 사실이다. 한편, '비연속적'이라는 말보다는 '불연속적'이라는 말이 맞다. '불연속 함수'라고 하지 '비연속 함수'라고 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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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9-11-23 1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square wave‘를 다음 사전에서 찾아보니 ‘구형파‘라고 나오네요. 사전이 잘못됐습니다. ㅠ 구형이면 보통 ‘공球 모양‘을 떠올리지요. ‘구형파‘에서 ‘구‘가 곱자 구矩라네요. 헛웃음이 나옵니다. 전혀 쓰지 않는 죽은 말입니다.

2020-06-02 2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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