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일기장을 주웠다 - 잘 숨고 뾰족한 어느 고슴도치의 기록
고슴도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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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의 매력은 훗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예전의 일기를 다시 읽을 때가 아닐까 싶다.

일기를 끄적일 때의 감정을 시간이 지난 뒤에도 고스란히 떠올리게 되고, 때론 일기에 남겨진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 더 성장했음을 늘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나만의 일기장으로도 이런 성장의 맛을 느낄 수 있는데 남의 일기장을 읽는 느낌은 또 다른 맛이 있다.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해 받을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일기장에 써 내려갈 때는 모두 겉모습을 훌훌 벗어던지고 속에 있는 맨몸의 상태로,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쓰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주웠다>역시 남의 삶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 일기장의 주인공은 자신을 '고슴도치'라고 표현했다.

자신에 대해 전혀 나타내지는 않지만, 감정의 모습은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고슴도치의 일기는 어느 도시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일상, 무의미한 일상, 그리고 때론 반기를 들고 바락바락 대들고 싶은 일상을 보여준다.

 

못 돼 처먹은 인간이 온갖 복은 타고 나는.

눈물 나게 억울한 지구 생활이다. -2002.11.6

 

웃음으로 끝난 하루의 느낌도 있지만, 세상이라는 전쟁터를 오늘도 무사히 보내고 몸과 마음이 지쳐 하나씩 써 내려간 무거움을 느낄 때도 있다.

 

나는 감정의 쓰레받이.

저들이 내뱉는 불순한 감정의 말을 말단 사원인 나는

묵묵히 받아내야 한다. 2002.5.20

 

그리고 세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과 때론 한 번쯤은 파이팅을 외치며 일어서야 하는 것이 인생이고 삶이라는 것을 들려준다.

 

함부로 인생의 모양을 판단하지 말자.

누가 어떤 계절을 살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겨울 다음에 봄 그리고 또 봄이 올지.

봄 다음에 겨울 그리고 다시 여름이 올지 아무도 모르니까. -2013.1.19

이때다 싶으면 과감히 달려야 한다. 기다리는 건 어둠에

갇히는 짓이다. 추워도 문을 열어라. 그리도 뛰면 된다.

반팔인 게 대수냐  2002.12.11

 

누군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았다.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그저 그(그녀)가 쓴 짧은 단문만 보였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진함을 공감할 수 있다.

피하고 싶지만, 부딪히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때론 무조건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기라는 것이 그렇다.

내가 잠시 주춤했던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내가 잠시 주춤했던 삶에 대한 열정을 떠올려보게 한다.

 

때론 한없이 가라앉는 고슴도치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그 밑바닥까지 끌려내려가는 듯 하다. 나는 전혀 그런 기분이 아닌데 몇 개의 문장으로 함께 끌려내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올라오려고 기를 쓴다.

타인의 좌절, 무거움을 밟고서 말이다.

 

그래서 일기라는 것이 어쩌면 속 알맹이를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실오라기 걸치지 않는 그런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멈췄던 나의 일기에도 자극을 받아본다.

뭐... 쓰다가 말게 되면.. 잠시 멈추지 뭐..

그리고 또 나를 기록하고 싶으면, 내 시간을 기록하고 싶으면 또 끄적이지 뭐.

 

<누군가의 일기장을 주웠다>는 잊고 있는 일기장을 찾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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