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정원 - 시가 되고 이야기가 된 19개의 시크릿 가든 정원 시리즈
재키 베넷 지음, 김명신 옮김, 리처드 핸슨 사진 / 샘터사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책 속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난다.

우리가 정원이라 표현하는 곳은 울창하지만, 작은 숲 속의 그것과 같은 곳이다.

그 속에서 자연을 표현하기도 하고, 사랑을 깨우기도 하고, 때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장소로 독자들에게 제공된다.

수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 정원의 모습을 세세하게 전한다.

푸름이 가득한 그곳이었다는 것보다는 그 속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과 과일의 이야기가 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던 햇살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새소리에 스르륵 감기는 잠에 취하기도 하고, 바깥 세계와는 다른 또 다른 비밀의 장소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정원이다.

 

작품을 읽을 때 이 작가가 거닐었던 장소는, 정원은 과연 어떤 곳이었던가라는 궁금증이 늘 있었다. 그런데 참 고맙게도 작가들의 정원을 실물로 볼 수 있고, 그 속에서 이루어진 작가의 삶과 작품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작가들의 정원>이다.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애거서 크리스티, 버지니아 울프, 베아트릭스 포터, 윌리엄 위즈워스, 토머스 하디, 존 러스킨, 러디어드 키플링, 조지 버나드 쇼, 윈스턴 처칠…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정원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 책의 저자인 재키 버넷의 이력을 보자면 정원과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온 사람이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는 조경 및 자연사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고, 정원에 관한 시리즈가 올해의 가드닝 칼럼으로 선정된 이력이 있다.

그만큼 전문가적인 안목으로 정원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정확하며, 또한 작가의 견해로 보는 정원과 그 정원을 사랑한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하자면, 이 책 속에 소개된 작가들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고, 분명 그것을 작품에 녹였을 텐데, 그 작품을 아직까지 읽지 못하고 작가의 정원만 들여다보자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소개된 작가들이 근대의 인물들이라는 점도... 무시 못하지만..)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그들이 자연을 어떻게 표현하고, 그것이 집필 생활에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알아가는 재미도 의외로 쏠쏠하다.

 

그나마 책에서 반갑게 눈에 띄는 인물이 있어서 다행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유일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40년 동안 차트웰에 거주를 한다. 너도밤나무가 아늑하게 가려주고 켄트의 삼림지대 너머 먼 곳까지 조망되는 풍경에 사로잡힌 윈스턴 처칠은 막대한 유지비용이 드는 이곳에서의 삶을 위해 글을 써서 가족을 부양한다. 그의 부인 역시 이 정원에 로즈 가든을 증축해서 온갖 정성을 다해 꾸몄다.

 

찰스 디킨스 역시 그의 정원 개스 힐 플레이스에 어마어마한 정성을 들였다. 유별나게 제라늄을 좋아했던 찰스 디킨스는 자신의 정원을 자랑스러워했고 더 좋게 만들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양 좋은 정원을 유지하기란 만만치가 않다. 더구나 아내와 별거 후에는 타인의 눈을 피해야 하는 사정도 있고 해서(엘렌 터넌과의 관계가 결정적이라고 한다) 힘겨운 순회강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원을 사랑하지만 돈에 쪼들리게 된 찰스 디킨스의 상황은 작품 속에서도 표현이 되었단다.

"20파운드를 벌어 19.96파운드를 쓴 사람에게 남는 건 행복이지만, 똑같이 벌어 20.06파운드를 쓴 사람에게 남는 건 비극뿐이다"라는 대사가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나오는 디킨스의 강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도 한다.

 

이처럼 작가들에게 있어서의 정원은 작품을 구상하는 아늑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인생에서 겪던 좌절을 다시 가다듬는 곳으로도 남았다. 정치적 암울기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때론 사랑하는 자녀의 죽음에 좌절을 겪었을 때. 이혼과 실연이라는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시간을 정원에서 찾아낸다.

 

어릴 적 읽었던 <비밀의 화원>에 나오는 그 신비로운 화원이 떠오른다. 나만의 숨겨진 공간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고, 꽃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일까?

자연과 더불어가는 삶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을 작품에 녹여낸 작가들은 또 얼마나 행복했을까?

<작가들의 정원>에서 푸름과 향기로움, 그리고 작가의 세세한 감정을 흠뻑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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