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대세는 요리하는 남자이다.
언제부터인가 방송마다 유명 셰프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게다가 훈남 이미지까지 플러스가 되었으니 그들의 인기는 여느 연예인 못지않은 듯싶다.
'먹방'의 대세를 이어서 이젠 '쿡방'의 시대란다.
요리하는 시대..
어쩌면 맛있는 요리가 먹고 싶기도 하고, 건강을 위한 색다를 요리를 찾고 싶은 열망도 있지만, 때론 요리하는 남자를 둘러싸고 앉아서 먹는 다정하고 따뜻한 한 끼의 식사가 그리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요리라는 것은 거의 여자들의 가장 첫 번째 의무감이라고 할 수 있다.
거창한 요리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늘 먹는 김치며, 밑반찬이며, 좀 더 솜씨를 부리고,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은 자연 속에서 얻는 효소나 저장 식품 등 늘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런 여자들의 막중한 의무에 대한 부담 때문일까?
요리하는 남자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포근함과 달달함을 보여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하긴, 내 남편이 오로지 나를 위해서 요리를 해준다면 무조건 80점은 깔고 간다.)
<이 맛에 요리>
이 책은 예전 드라마 파스타의 실제 모델이어서 더 유명한(?) 샘 킴이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요리에 대한 에세이다. <이 맛에 요리>는 레시피만 나열한 그런 흔한 모양의 요리책이 아니다. 요리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명 드라마 주인공의 롤모델이라고 해서 유명세를 탄 샘 킴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요리와 친해졌다. 그의 어머니도 요리사였는데, 어려운 형편 탓에 어머니는 생계형 요리사를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옆에서 도와주던 샘 킴은 자연스레 요리를 알게 되었다.
재료를 조합하고, 맛을 내고, 또 그것을 먹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요리사의 꿈을 키운 샘 킴은 고교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그곳에서 하나하나 부딪혀가며 배운 결과 셰프의 명성을 얻었단다.
'이 맛에 요리한다...."
이런 말을 할 때의 기분은 어떨까 상상을 해본다.
내가 정성 들여보냈을 요리 시간과 그것을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는 내 앞의 사람들의 표정과 그리고 그런 시간 위에 있는 행복감...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그런 말이다.
'이 맛에 요리한다....'
<이 맛에 요리>는 삶의 이야기이다.
삶이 뭐 별다른 것이 있나? 당연히 없다. 나의 삶이나 당신의 삶 모두 비슷비슷하다.
나는 이쪽 일에 만족하고 당신은 그쪽 일에 만족한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때론 좌절이나 희망... 모두 겪는다.
하지만 독자들이 잠시 떠올려야 하는 것이 있다.
누구나 비슷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것을 행복하게 느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또는 삶의 깊이를
되짚어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이 맛에 요리>는 삶의 행복을 되짚어보는, 우리가 바쁘다는 이유로 잠시 미뤘던 삶의 소소한 행복을 같이 읽어보는 그런 책이다.
매일 먹는 식사. 그중의 한 끼를 어떻게 먹었을까?
내가 한 끼의 식사를 먹을 때를 떠올려볼 때 나는 나를 위해서 소박한 식탁이라고 깔끔하게 세팅을 해서 먹었을까? 귀찮다면서 라면을 끓인 냄비째로 김치랑 후다닥 먹었을까?
아무 의미 없이 지난 식사 시간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묘한 의미가 있다.
작은 접시 하나라도 신경을 써서 오로지 나를 위해 차려서 먹은 식사는 나를 위하는 것이다.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먹었다면 나를 소홀히 대접한 것이다.
가끔씩이라도 스스로를 대접하는 마음으로 접시 하나만 신경 써서 내놓는다면, 별다른 요리가 아니더라도 뭔가 더 좋은 식사를 한 듯, 위로를 받을 수 있다(P42)
여럿이 아닌 혼자라서도 더 근사하고, 폼 나는 식탁에 스스로를 초대하자. 자신을 더 폼나게, 혹은 더 초라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스스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P44)
문득 나 자신이 초라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부지런히 달려왔고 잠시 쉼을 가지고 있는 요즘... 말이 휴식이지, 오롯이 나를 위한 휴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편치 않으니까 먹는 것 소홀하다.
내가 나를 대접하지 않고 있다. 내가 나를 소홀하게 여기는데 가족이 나를 위로해주기는 만무할 테고, 나의 열망도 시답지 않게 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업을 가지고 있을 때는 그것이 싫다고, 짜증을 잔뜩 부리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사람은 일과 생활, 그리고 나를 먼저 아낄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직업을 가진 사람은 누구라도 자기 일을 즐겁게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돈과 명예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P65)
내가 나를 위해야 한다는 것은 수없이 들었으면서, 정작 나를 위로해야 하는 시간에 나를 소홀히 하고 있다. <이 맛에 요리>를 읽으면서 소박한 식사 한 끼라도 나를 충분히 대접할 수 있다는 것..
갑자기 마음이 따뜻함이 느껴진다.
<이 맛에 요리>는 샘 킴의 에피소드가 있다. 요리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과 가족, 그리고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리를 통해서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고, 요리를 통해서 아들에게 아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스스로 아빠임을, 그래서 가슴에 따뜻하지만 묵직한 먹먹함을 느끼게 된다.
요리를 통해서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떠올리게 되고, 요리를 통해서 또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 맛에 요리>에는 요리를 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힘들 게 일하고 돌아온 아내를 위해서 만든 남편의 요리, 아빠의 마음으로 만들어 본 이유식, 딸에게 줄 맛있는 요리 이 모든 것에 가족과 사랑이 있다. 그리고 나와 끈끈함을 나누는 지인이 있다.
<이 맛에 요리>를 읽어보고 나의 요리를 생각해본다.
나름 손맛이 있다고 얘기를 듣는 나는 식구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했나 생각을 해본다. 매일 하는 반복적인 일상이라 때론 짜증스럽게 한 적도 있다. 잠깐의 수고로움에 온 가족이 건강한 음식을 먹는 행복을 잠시 움직인다는 나의 귀찮음 뒤로 밀어 놓은 적도 있다.
어쩌면 주부로써, 엄마로써 당연한 일을 너무 거창하게 뻗대기며 자랑한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 사회인으로 커갈수록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겠지만, 서로의 정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시간을 떠올릴 때도 있겠지? 아... 그렇구나.. 나도 이젠 이런 나이가 되었구나.
잠시 감상에도 젖어본다.
특별하지 않는 요리라도 함께 먹으며 시간을 나눈다면 훗날 그것은 추억으로 남게 된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이 곧 역사다(P272)
요리하나에 무슨 거창한 말이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거창해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가족에게 오래 남는 추억의 시간. 어느 장소에서 음식을 먹으면 엄마가 떠오르고 아빠가 기억되고,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기억되는 그런 음식이 정말 맛난 것 아닐까?
샘 킴의 말처럼 <이 맛에 요리>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추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밥 한 번 먹자"
"오늘 뭐 해 먹을까?"
"밥은 먹고 다니니?"
이 짧은 말속에 담긴 따뜻하고 맛있는 요리와 그 요리를 대접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담아서 내 가족에게, 내 지인에게 한번 해보자.
"이 맛에 요리"가 "이 맛에 너랑.."이란 의미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한 끼 밥상이 때론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