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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평점 :
'윤동주'에 대한 가장 큰 표현은 저항 시인, 순수 시인이라고 말합니다.
'윤동주'의 삶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후에 태어났고, '윤동주'가 사춘기가 되어 세상의 어두움을 온몸과 온 정신으로 받아온 삶을 살죠.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시절을 모르는 후손의 입장에서 '윤동주' 시인이 저항을 했다는 것에 대해 궁금함이 있곤 합니다.
저항이라 하면 좀 거친 느낌의 표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동주' 시인을 저항 시인이라고 부리기보다는 순수 시인이라고 일컫는 것이 더 가까운 표현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분명 '윤동주' 시인은 저항 시인입니다.
암울했던 시기에 그가 보냈던 평범하면서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저항 방법을 알아가게 됩니다.
<시인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 그리고 역사적 고증과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마치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벗을 그리는 듯한 소설입니다.
또 다른 느낌이라면 우리가 필히 겪어가는 청춘의 방황과 시대의 아픔으로 인한 애국에 대한 심정을 독자들도 깊이 공감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에서 태어나서 우리가 기억하는 시어처럼 부드러운 말씨는 아니었을 겁니다.
때론 북간도의 사투리도 말했겠지요.
어쩌면 '윤동주' 시인은 어떠어떠한 성향이더라... 모습이더라...라는 이미지는 후손이 마음대로 만들어놓은 것이겠지요.
<시인 동주>는 이러한 기존의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인위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인간 '윤동주', 청춘의 '윤동주', 그리고 격정의 시대에서 자신의 주관을 묵묵히 해나갔던 깊이 있는 '윤동주'를 만나게 됩니다.
후손의 입장에서는 선대의 문학가들이 남겨놓은 작품을 보면서 내가 이해하기 쉽게만 해석을 하곤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이런 날>이라는 시입니다.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을 추던 날.
금을 그은 지역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아이들에게 하루의 건조한 학과로,
해말간 권태가 깃들고,
'모순' 두 자를 이해치 못하도록
머리가 단순하였구나.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한 형을
부르고 싶다.
_1936. 6. 10
이 시를 보면 곁에 없는 형을 그리워하는 아우의 마음을 느끼는 것으로 시를 느꼈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 시를 남기게 된 이유를 독자는 읽어보게 됩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완고함보다는 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지 소설 속에서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조용하지만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북간도에서 경성으로 공부를 하러 오는 것도, 후에 일본의 대학을 선택하는 것도, 그리고 틈틈이 습작으로 시를 남기는 것도 자신의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아픔을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무겁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꾸준히 이어졌지만, 그것을 세상에 내놓기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43년 7월 그는 항일운동을 했다는 명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됩니다.
물론 그가 직접적인 행동을 하면서 항일운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선의 정신과 조선의 감성, 그리고 조선의 글로 항일 운동을 한 것입니다.
그가 생전에 남기려고 했던 작품집에 서문으로 대신하려던 것이 바로 이 시... 서시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_1941. 11. 20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의 후손들도 이 서시를 늘 떠올립니다.
좌절하는 시간이 있거나. 자존감이 흔들릴 때 이 시를 읊어봅니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럼이 없기 위해 괴로움을 토해낼 줄 아는 그런 본성을 지니라는 여고시절 선생님의 말도 떠오릅니다.
<소설 동주>는 인간 '윤동주'에 대한 삶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암흑의 시간을 '윤동주'라는 색깔로 바꿔가는 삶을 후대에게 남겼습니다.
비록 그 시절의 '윤동주'에게 지금의 존경함이 전해지겠습니까만, 그런 사람이 그 시절에 이렇게 조국의 한 켠에서 버티고 있었다더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밤하늘의 별을 찾아봅니다.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서 별빛을 찾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만, 그래도 어렴풋이 자신의 빛을 발하고 있는 별을 찾아냈습니다.
'윤동주'의 존재가 그러한 것 아닐까요?
<소설 동주>를 통해서 별을 떠올리고, '윤동주'를 떠올리고,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간직했을 뜨거움과 순수함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