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 그리고 강하다
슈테판 볼만 지음, 김세나 옮김 / 이봄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학문은 고대부터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역사는 남성이 우선이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신'보다는 인간 본연의 사고를 인정하기 시작했었던 그 시대에도 여성은 늘 뒷전이었고, 인정받지 못했다. 역사의 여러 곳을 들여다보면 여자는 그저 남자들의 속박에 사는 한낱 장식 같은 존재로만 남아있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할라치면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여성들의 소리를  묻어 버리곤 했다.

 

남성은 여성이 자신의 품 안에서만 존재하기를 원했다. 기사도 정신을 베풀던, 레이디 퍼스트라는 매너를 보이건 이것은 여성들이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남성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로 대접하는 듯하지만 이것의 실제 모습은 여성은 남성의 손아귀에 있어야 한다는 남성 우월주의가 깔린 표현이 아닐까?

 

우스갯소리로 레이디 퍼스트의 유래를 보면 알 수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참일 때 적군에 급습적인 피해를 주기 위한 지뢰 매설이 활발했고, 전쟁터에서 적과 싸워야 하는 남성을 아끼기 위해 전쟁에 필요없는 여성으로 하여금 먼저 길을 걸어서 지뢰의 유무를 확인하도록 했다는 것이라는데, 결국 여성 먼저 우대하고 배려한다는 의미를 가진 '레이디 퍼스트'는 전혀 다른 의미를 내포한, 남성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을 총알받이 용도로 이용했다는, 여성 존재 자체도 인정하지 않았던 남성의 잘난 우월감을 보게 된다.

 

그렇다고 시대에 눌려서 여성의 목소리를 전혀 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루이 16세 시대의 올랭드 드 구즈는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삶을 독립적으로 꾸리려 했던 여성들의 요구를 시도했고, 19세기의 여류작가 샬롯 브란테는 자신의 작품 <제인에어>에서 19세기 중반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들이 말하고자 했던 여성 해방은 단순히 정치적 평등을 이루려던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들이 삶 속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누렸고, 지금도 누리고 있는 그만큼의 자유를 여성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문 중에서)

 

여성 해방의 문제는 지금 현재까지도 꾸준히 투쟁하고, 벽을 깨야 하는 진행형이다.

성공과 만족스러운 삶을 얻기 위해서 여성은 남성의 여건보다 몇 배의 노력과 편견에 부딪혀야 한다.

오래전부터 여성에게 억지로 씌워진 온순한 생각을 해야 하고, 수동적으로 운명을 따라야 하고, 침착한 영혼을 지녀야 한다는 무언의 벽을 온몸으로 부딪혀서 깨야 하는, 그렇게 해야만 변화를 위한 기회를 겨우 얻어내는 것에 대해 현실을 사는 지금의 나도 간혹 답답함과 절박함을 느낄 때가 있다.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그리고 강하다>는 22명의 강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1장 반항하다, 2장 힘을 갖다, 3장 '나'를 쓰다, 4장 여자라서 가능하다는 꼭지를 통해서 그녀들이 세상을 향해 외쳤던 생각을 읽어보게 된다.

15년을 가택연금에 갇혔던 버마의 민주주의 대표인물이고 비폭력 투쟁의 산 증인 아웅 산 수 치, 이웃 나라와의 국경분쟁,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의 종교전쟁, 빈곤과 무지와 기아를 능란하게 수습한 인도의 어머니 인디라 간디, 근대 물리학의 가장 성공적이고 가장 흥미로운 시작과 끝을 장식한 마리 퀴리 리제 마이트너등 그녀들이 시대적인 고립(여성에 대한 편견)과 맞서 어떤 결과물을 얻어 냈는지에 대해 알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몇몇 인물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기란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인물을 소개하다 보니 그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보다는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건, 업적을 위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읽으면서도 참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루 안드레아스살로매가 가진 남성편력은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남성과의 교류로 얻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것이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과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 '제2의 성'으로 그녀가 세상에 외치려고 했던 여성 운동의 공통점, 그 밖에 한나 아렌트, 시몬 베이유 등의 인물들은 생소하고, 전혀 모르는 인물들이라 그들의 업적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성 운동에 대해 초보적인 지식을 가진 독자들이 읽어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시각으로 보면 아웃사이더라는 점이다.

결코, 그 시대에서는 쉽게 융합되지 못하거나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더 배척을 받았을 그런 아웃사이더.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고 그것을 좀 더 넓게, 멀리 이어지게 했다는 점이 아닐까.

물론 이들의 견해와 주장이 모두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다. 때론 역사에 남을 강점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면에서는 오점으로 남는 부분도 역시 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저자가 표현했던 그들이 전투적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나서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전투적인 결과를 얻어냈다는 점이다.

그들이 역사에서 한 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들의 행동으로 그 뒤에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는 것, 또한 그녀들이 얻은 결론이 전투적인(나는 이것을 남성 사회가 느끼는 압박감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다) 것이라는 점을 읽어보고 싶었다.

 

여성 해방에 선봉이 된 22명의 행적을 읽는다고 하루아침에 전체 여성의 의식 구조나 생활이 바뀌지야 않겠지만, 현대를 사는 여성이라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현대의 여성들이라면 그들이 남긴 그 흔적, 그 가치, 그리고 자신을 내놨던 그 용기를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국적에, 다른 스타일에 그리고 맞섰던 편견의 벽도 모두 다르지만, 그들이 세상과의 격돌에서 부딪히며 남겼던 상처와 그것으로 얻어낸 성과는 분명 뒤를 이어가는 여성들의 의식에, 삶에 변화를 주었고 또 다른 기회를 주었고, 전진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내고, 여성의 대변인이 되었던 그녀들이 후세 역사와 여성들에게 많은 지침이 되고, 방향 전환에 앞장섰음은 당연하다.

 

책을 읽으면서 숙제가 남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런 묵직한 부담감이 참 오랫만이다.

그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에 대해서, 그리고 거창하게 여성운동이라는 것을 배제하고라도 세상을 향해 움직이는 여성들에 대해서 내가 그동안 참 모르고 살았구나. 외면하고 살았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녀들이 시대에서 분명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을 때는 생각을 하고, 그리고 강하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그것을 이끌어 내는 용기를 자신에게서 끌어냈다는 점이 참 멋지지 않은가.

<생각하는 여자는 위험하다 그리고 강하다> 어렵지만 또 다른 개념에 대해 충분히 생각을 거듭할 좋은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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