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은 개는 이제 그만!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19
고든 코먼 지음, 고수미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미식축구반과 연극반.
절대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그룹에 공통된 인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10대라는 공통점이 또 있습니다.
<죽은 개는 이제 그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화무쌍함을 가지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월리스 월리스는 너무너무너무....정직한 아이입니다. 물론 그 마음이 타고난 것이기도 하지만 늘 거짓말을 일삼는 아버지에 대한 반격이 대부분이죠.
아빠의 거짓말이 때론 영웅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커가면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거짓말에 월리스는 질려버립니다. 그리고 그 거짓말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엄마를 위해 절대로, 결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월리스의 제1원칙이기도 합니다.
10대는 사실을 더 부풀리는 것도 특징이고, 작은 일도 크게 만들어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나 때문에 결과가 좋으면 영웅으로 대접받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친구들과의 좋은 이야깃거리를 위해 거짓말도 하는 일도 생기고, 또는 상황 때문에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하지만 이 월리스에게는 그조차 용납되지 않습니다.
좋으면 좋은 그대로, 싫으면 싫은 그대로, 틀리면 틀린 모습 그대로 사실을 말하는 것이 바로 월리스입니다.
설사 상대방이 그 말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실망하거나 부끄럽게 여겨질지라도 사실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월리스이죠.
<죽은 개는 이제 그만>은 독후감이라는 사건을 발단으로 일이 시작됩니다.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소설의 줄거리가 문제인 거죠. 월리스는 그 책이 유명한 고전이라 할지라도,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국어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건 선생님만의 생각이지 결코 월리스의 생각은 아니거든요.
좀 나은 점수를 위해 독후감을 좋다는 방향으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월리스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의 전개를 점수 때문에 좋다고, 좋은 이야기라고 글을 쓸 수는 없는 겁니다. 선생님이 독후감을 핑계로 반항하는 것이라 여길지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월리스는 결코 미식축구의 영웅도 아닙니다. 작년 터치다운을 잡아내고 학교 영웅이 되었지만, 결코 그것은 월리스의 진정한 실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찌어찌 공이 날아오르고 그 자리에 월리스가 있었고, 상황이 그렇게 되어서 우연히 터치다운을 잡아낸 것뿐입니다. 이것이 진실이거든요.
월리스를 둘러싼 미식 축구부와 그 친구들, 그리고 월리스를 새롭게 맞이하게 된 연극반과 그 부원들의 이야기가 빠른 전개로 이어지는 소설입니다. 미국 드라마에서 보게 되는 하이틴 드라마 같습니다. 진지함보다는 가십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매일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고, 어른의 흉내를 내고 싶어 때로는 점잔을 빼고, 감정을 숨기고 싶은 청소년의 전형적인 모습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복잡함 속에서 월리스와 그의 친구들은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고 진실함이 어떤 것인가를 조금씩 배워가게 됩니다. 그 속에는 풋풋한 십대만의 사랑도 피어나고 십대들만이 가지고 있는 익살스러움도 독자의 웃음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월리스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진실을 진실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나의 기준에 맞춰 해석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해도 내 시선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상대보다는, 진실보다는 나의 관점이 중요하고, 나의 결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 역시 내가 우선이라는 무의식에 다른 사람의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은 개는 이제 그만>은 사람과의 이해관계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끔 하는 청소년 소설입니다. 인물들의 대립과 오해와 진실을 두고 갈등을 겪는 장면을 보면서 청소년 독자들이 과연 무엇을 먼저 봐야 하는지, 과연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느낄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월리스의 마지막 결정에서는 "결코" "절대로"라는 것이 가장 옳기만 하느냐에 또 한 번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람은 서로 어울리고 융통성 있게 섞이면서 사는 것이 진정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실과 진정성' 얼핏 보면 같은 말이기는 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 여파를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좋다. 옳다를 결정하기 전에 어떤 것이 사람과의 사랑, 믿음, 신뢰 그리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