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개정판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세계사를 언급할 때 십자군의 이야기를 빼고는 중세 시대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군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종교적 요인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와의 싸움이라고 먼저 답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간단히 종교운동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십자군에 가담한 기사와 상인 농민들은 각각의 욕구가 다릅니다.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지배에 대한 야망, 상인들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그리고 농민들은 봉건 사회의 중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또한, 십자군을 떠올리면 기사도 정신이 따라 연상됩니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용감하고 자기 희생적이고, 타인을 배려하고, 정의를 위한 용기를 가진..등등 십자군을 두고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상당히 바뀔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 소갯글의 한 문장이 눈길을 끕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부시 대통령 때문에(?) 탄생했다. 부시 대통령은 ‘악의 세계를 제거하기 위해 미국이 벌일 21세기 첫 전쟁은 십자군전쟁’이라며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에 김태권 작가는 작가의 양심을 걸고 십자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모두 전 6권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2003년 처음 <십자군 이야기>를 펴낼 때는 '반전'과 '평화'를 주축으로 이야기를 펼쳤다면 이번 개정판에서는 '관용'과 '공존'의 개념을 추가했다고 합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작가의 상당히 해박한 역사 지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역사를 이해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한국사든 세계사든 역사는 사실 어렵습니다. 당시의 사건과 정치의 세계, 관습과 문화의 인식까지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죠. 시간과 공간의 공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더 쉽게 씌여진 역사서를 찾게 되는데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이런 면에서 아주 정확한 사실을 흥미롭고 위트있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1권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입니다.
중세 유럽의 한 광신도로 은둔자 피에르라고도 불리는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의 일과는 당나귀를 타고 꿈에서 성 베드로가 그의 꿈에 나타나 이슬람과 전쟁을 하라고 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교황 우르바노 2세는 교묘히 선동하여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려 하지만 피에르는 군중을 모아 정식 십자군보다 먼저 출발을 합니다. 이들이 바로 군중십자군이죠. 이들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러 떠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 바로 예루살렘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머리로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상상도 안 되는 줄거리입니다만 당시 중세는 이것이 통했습니다.
무지와 편견은 어떻게 전쟁으로 이어지는가? 바로 1권의 주제입니다.
 
동쪽에 있다는 예루살렘을 향해 군중십자군은 출정합니다. 대략 동쪽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정확한 지점이 아닌 대략으로 움직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도착하는 도시마다 '이곳이 예루살렘인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군중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찾으러 가는 길에 거치는 도시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릅니다. 학살과 약탈이 일상화 되어버립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 1권 군중 십자군과 은자 피에르>는 피에르의 등장을 시작으로 십자군이 학살의 시작이 되어버린 과정, 군중 십자군 때문에 위기에 처한 제국의 이야기와 온갖 만행을 저지른 군중십자군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십자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군중십자군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편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십자군=기사도정신 정도만 알고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번 1권을 읽으면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간혹 인터넷의 정보로 얻게 되는 십자군의 내용도 사실 이해가 어려웠는데 위트있는 저자의 이야기 전개는 좀 더 쉽게 군중십자군과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 잘 알게 됩니다.
 
1권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 고전 읽기가 있습니다.
사실 군중십자군에 참여한 사람들은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더 용맹하거나 더 잔악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저지른 일은 아마 공포물의 소재로 충분히 사용할만한 행동을 저지릅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왜 사람들이 군중십자군에 휩쓸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가에 대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나 고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해박한 지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극히 평범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대학살 당시 희생자들을 수용소로 이동시킨 담당자였는데요, 이 사람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이히만의 본모습은 생각과 너무 다른 대조적인 모습이라 오히려 더 경악했답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 1권 군중 십자군과 은자 피에르>는 여기까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작가는 왜 십자군 이야기를 펴냈을까요? 이는 책 소갯글을 발췌합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일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역사 왜곡이다. 역사적으로 십자군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다.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십자군전쟁은 기독교가 전 세계에 저지른 악행이었다며 사과한 바 있다. 소설가 귄터 그라스는 “부시의 십자군 발언은 그 잔혹한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십자군이 종교적 열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멍청함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논평했다.
 
둘째, 서양 중심의 역사에 대한 문제 제기다. 마치 십자군전쟁이 서양의 선진 문명이 이슬람의 미개 문명을 일깨우려는 시도였고 이러한 계몽은 서구의 역사적 사명이자 숙명인 것처럼 미화되었는데, 이를 넘어서려면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소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셋째, 불의에 대한 결말을 보여주고자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시의 이라크전쟁과 서유럽의 십자군전쟁은 900여 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 바로 두 전쟁이 어떠한 명분도 도덕성도 정의도 없다는 것이다. 200년간 이어졌던 이 명분 없는 전쟁의 대가는 처참한 기아와 살육 그리고 당사자인 교회의 몰락이었다. 서유럽의 패배와 교황권의 추락을 가져온 십자군전쟁의 결말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오늘날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명분 없는 전쟁들의 참혹한 결말을 보여주고자 했다.

중세만을 이해하고, 그 뒤에 이어질 유럽국가의 상생관계만을 이해하기 위해 십자군을 바라보면 안 되겠습니다. 그때에도 무지함 때문에 살육이 난무하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우위라는 생각(십자군 측면에서 본다면)은 아주 아주 왜곡된 사실이라는 점 저 역시도 이번에 제대로 알았습니다.
세계사를 배울 때 그리스도인의 사명감이 우선으로 깔린 배경이었다는 것이 떠오르는데 말입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과 중세 십자군의 무지막지함과의 관련성에 대한 주장은 2권, 3권을 읽고 제대로 알고, 좀 더 이해하고 논해봐야겠습니다.
2권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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