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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홀 -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있던 건물이 사라졌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사람들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재난소설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나타난 소설 <싱크홀>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은 세상을 패닉으로 만들어버린다.
도시는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무덤덤하게 돌아가던 직장인의 삶을 플로리스트라는 꿈으로 전향하고 새로운 인생의 재미를 알아가는 27살의 민주. 부유하다는 말도 부족할 만큼 최고의 부를 지닌 어머니가 있지만 정형 외과의로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동호. 꽃집을 운영하면서 딸 안나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영희. 그리고 이들의 삶과 얽혀 있는 양미자 회장, 혁, 소희 등..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도 있고,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이도 있고, 자신의 과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좌절한 사람도 있다.
<싱크홀>의 시작은 세 남녀가 히말라야 산맥 북서쪽 끝 카슈미르 지역에 있는 산 낭가파르바트를 정복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산의 정령이 지배하는 영역. 감히 인간의 손을 거부하는 산. 하지만 조금이라도 산의 신에게 다가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해발 812미터를 정복하기 위한 세 사람의 투혼은 마치 뒤에 이어질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그 무엇, 자연이라고 하기에는 커다란 그 무엇에 대한 직감을 던져준다.
싱크홀은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다양한 크기의 거대한 구멍이 생기는 현상 원인에 대해서는 자연적이라는 것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라는 주장도 있다. 저자 이재익은 이 싱크홀이 수많은 사람이 다니는 도시 한복판, 그것도 거대한 빌딩의 아래에서 일어나게 한다.
D-day 전 세계가 들썩거릴만한 오픈식을 한 직후 한순간에 눈앞에서 그 높디높은 빌딩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시커먼 입을 벌린 구멍만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한다.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하지만 땅속으로 꺼져버린 건물에 어떻게 덤벼야 하는지 모른다. 차라리 지상 위에 무너져내린 건물이라면 잔해라도 치울 텐데, 이는 고스란히 땅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사라진 건물은 많은 것이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최상층의 부의 결정, 수천만 원의 멤버십 카드가 없으면 입장불가인 클럽, 휘황찬란한 인테리어, 여러 전문가의 우려 속에서도 그 건물은 불법, 그리고 그들만의 암암리에 행해진 검은 거래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하층에는 살아보겠다고, 조금 더 나은 새 건물에서의 조그만 가게운영이 좀 더 나은 삶의 발판이 되겠다고 어렵사리 가게를 임대한 서민들의 낮음도 있다.
건물이 무너져내린 그 상황에서도 부를 가진 자와 부를 덜 가진 자의 모습이 보인다. 무너진 건물 맨 아래에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던 서민들이 있다. 무너진 건물의 맨 위에는 돈이면 다라는 생각으로 흥청망청하던 자들이 있다. 구조된다고 해도 있는 자들이 먼저 구조 되야 한다는 걸까?
하지만 워낙 위험한 상황이고, 싱크홀의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구조활동은 더디다. 더구나. 구조활동 중에 잔해가 무너져 내리는 위험상황에 비까지 내려 엄두도 낼 수 없다.
이 위험에 뛰어든 세사람이 있다.
낭가파르바트에서 동료이자 친동생 같은 처남을 사고로 잃어버리고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린 남자 혁. 혁은 세상으로 나와 절규한다. 저 무너진 건물 맨 아래층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다. 그들을 구해내야만 한다. 히말라야의 산을 올라갔다면 이것은 꼭대기에서 하산하는 것과 같다는 주장을 한다. 건물의 옥상부터 진입하는 것은 시간상 촉박하다. 내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서는 건물을 삼킨 구멍의 벽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고 울부짖는다. 그런 그를 따라 나서는 소희, 사랑하면서도 차마 사랑을 말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그저 이 구조활동에 따라 나서는 것으로 모든 답을 보여주는 여자다.
그에 합류하는 또 한 남자, 우연히 만난 민주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인연임을 알게 된 동호, 그녀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시작도 못 하고 그녀를 건물 속에 보내야 했다. 그녀를 구해야 한다.
이 세 사람은 싱크홀에 도전한다.
<싱크홀> D-7부터 D+7까지의 시간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있지만 소설의 속도전 때문에 지루함이 덜하다. 어떤 이야기가 뒤를 이을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설이다.
건물 속에서 운명처럼 살아남은 사람이 있고, 그들을 지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영웅적인 또 다른 주인공이 있으리라고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을 이끌어내는 사람도 없고, 영웅적인 사람도 없다. 오히려 나만 살아남기 위해 철저하게 비열한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사람이 죽어가는 그 공포 속에서 더한 공포를 주는 살인마도 살려둔다. 끔찍하다. 죽어가는 인간에서 해대는 그 살인마의 행적은 끔찍하고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D+7
살아날 사람은 살아났다. 이들은 당연히 행복해야 한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말이기에 언급할 필요도 없다. 독자들은 다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독자들이 보기에 죽여버렸으면 좋을 사람도 살아났다. 그들은 지상의 세상 속에 합류한다. 서로의 악을 알고 있으면서도 서로 눈감아 버린다.
저 인간들이 또 어떤 악질 같은 일을 저지를지 궁금하다.
<싱크홀>의 몇몇 등장인물은 너무나 드라마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좋은 직장과 좋은 스펙을 가졌으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내려고 하는 모습,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용기를 밝히며 천륜을 다시 되짚어보는 효심 깊은 아들.. 죽은 듯이 살다가 재난이 터지고 자기의 가족을 위해 마징가처럼 벌떡 일어나는 사람, 평소 자신의 못난 모습을 빌지도 못하다가 죽음을 두고서야 함께 있음을 보여주는 두 남녀..좀 빤히 보이는 듯한 인물의 행동반경은 미니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
또한,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자는 왜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참 아쉽다. 뭐..살아났으면, 상처를 입고 악인을 제압했으면 영웅진행형의 소설이 되었을려나?
독자의 욕심이라면 조금 더 길게 2편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이었음 좋으련만...
그래도 드라마나 소설이나 아쉬움이 남아야 줄거리를 더 기억하게 되니..독자의 희망은 여기까지.
약간은 깊은 중후함이 없어서 아쉬움이 있지만 빠른 전개상으로 휙휙 지나가는 소설은 이 뜨거운 여름에 시원스럽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