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거짓말 - 카네기 메달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0
제럴딘 머코크런 지음, 정회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에일사와 엄마 앞에 미스터리한 한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는 코르덴 재킷을 입고 있었다. 팔꿈치와 겨드랑이, 단춧구멍 둘레가 닳아빠진 낡은 옷이었다. 재킷에 어울리는 흰색 크리켓 바지도 낡기는 마찬가지였다. 군데군데 헤진 데다 양 무릎 가득 풀물이 들어 있다. 가죽 구두 역시 너덜너덜 여기저기 검은 헝겊 조각으로 기운 흔적이 보였다.

에일사는 왜 이 낯선 남자에게 가게 점원을 운운했는지 모르겠다.

 

에일사와 미스터리한 남자 MCC 버크셔는 그렇게 만났고, "포비 골동품점'의 점원이 되어버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엄마는 장사 수완도 없고, 늘 빠듯한 살림을 걱정하느라 얼굴에 근심만 가득하다.

어느 날 나타난 낯선 이방인이 말한 물건을 잘 팔 수 있다는 자신감에 엄마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낸다..물론 그 남자가 무보수에 가게에서 널려 있는 책을 읽게만 해주고 샌드위치 한 쪽만 먹으면 된다는 말이 엄마의 귀를 솔깃하게 했지만 말이다.

MCC 버크셔는 골동품 가게에 머물면서 오로지 책 속에 파묻혀 있는 사람이다. 그가 하는 일은 절대로 팔리지 않을 것 같은 골동품 앞에서 골동품이 비밀스럽게 갖고 있던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는 물건을 살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과거에 대한 묘한 매력을 갖게 하고 흔쾌히 사가게 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새빨간 거짓말』은 1988년 출간 후 “현대판 아라비안나이트”라는 찬사를 받으며 카네기 메달과 가디언 상을 석권했고, 영국의 유력 언론사 <가디언>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아동문학’에 뽑히기도 했다.

 

어두컴컴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가졌을 듯한 골동품 사이에서 먼지가 쌓여 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던 물건들은 MCC 버크셔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새롭게 보이는 매력을 뽐낸다.

세월이 흘러 오래된 물건은 주인의 손을 떠나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하고 그저 먼지 속에서 잊혀가고 있다. 골동품이 가진 가치란 세월의 흔적도 가치를 높여주지만, 그 물건이 경험했던 과거의 이야기도 가치를 높여준다.

MCC 버크셔는 그것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골동품을 대신하여 과거를 이야기해준다.

 

MCC 버크셔가 하는 말은 거짓말일까? 허구일까?

에일사와 엄마는 MCC 버크셔가 하는 거짓말 때문에 불안하다. 물건을 사간 사람들에게 언제 들통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MCC는 느긋하다. 그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허구, 사람들이 원하는 그 허구를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거짓말과 허구의 차이는 무엇일까?

거짓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이것을 믿게 하려고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하는 말이라 정의를 내리면 허구는 상상에 의한 창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짓말은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라 하겠지만, 허구는 상상의 자유를 마음껏 펼쳐주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사랑과 믿음에 대한 가치는 접시 속에 숨어 있고, 거울 속에 보이는 또 다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오랜 세월 손에서 손으로 내려오던 혼수 상자에는 자신의 사명과 사랑 속에서 고통받았을 신부의 아픔이 있고, 불같은 성격으로 지울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이야기가 우산꽂이에 숨어 있다.

 

『새빨간 거짓말』은 골동품 가게를 중심으로 포비부인과 에일사의 일상과 점원 MCC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속에서 또 다른 11개의 소설을 들려주는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옴니버스 형식을 띠고 있다.

에일사와 엄마는 MCC를 경계하면서도 그에 대해 궁굼함이 일어난다. MCC에 대해 하루하루 새로운 모습을 알아가는 전개를 펼치고 있다.

손님들에게 딱 필요한 골동품을 재미있는 이야기는 또 하나의 상상력을 동원하게끔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픽션, 즉 허구이지요. 내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것, 모든 사람이 내게 원하는 바로 그 허구란 말입니다, 부인. 요컨대 꾸민 이야기지요.”(본문 50쪽)

 

포비부인과 에일사에게 들려주는 MCC의 이야기는 허구이다. 골동품점에 들리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허구이다. 반면 MCC에게는 포비 부인과 에일사가 몸담고 있는 세계가 허구이다. 또한, 작가와 독자에게는 포비부인과 에일사, 그리고 MCC의 세계가 허구이다.

독자는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의 매력에 빠진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허구라는 장르를 통해서 우리가 갖고 싶었던 세계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또렷한 상상으로 경험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결코 가질 수 없는 재미를 허구를 통해 충분히 가질 수 있고,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빨간 거짓말』은 과거의 진실성, 거짓인가, 허구인가에 대한 문제를 묻는 것이 아니다. 허구가 들려주는 화자의 여유, 그리고 그것을 또 하나의 상상으로 떠올리는 독자, 청자의 여유를 만끽하게 하는 소설이다.

 

MCC 버크셔란 인물이 어디에서 왔는가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찾아봐야 하는 결론이지만,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결말을 통해 또다른 허구가 주는 재미를 톡톡히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설이다.

올 겨울..., 아이들의 상상력에 시동을 거는 아주 재미있는 책을 발견하게 되어서 참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