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리 퀸
캐서린 머독 지음, 나선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그들이 뛰어내리라고 하면 넌 지분에서라도 뛰어내릴 거야."

"무슨 소리야?"

"어떻게 이렇게 살아? 네 인생이 어떤지 모르는 거야? 넌 그들이 하라는 일은 죄다 해. 그러면서 신경도 안 써. 암소랑 똑같아. 50년쯤 지난 후에 그들이 널 죽이려고 트럭에 태운다 해도 넌 그냥 따라나설거야."

브라이언은 정말 불쌍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 그래."

멍청한 반응이었다. 나도 알고 있다. 브라이언은 자기가 무슨 깊은 뜻이 있는 말이라도 한 듯이 굴고 있지만. 혹시 모를까 봐 하는 말인데 나는 조 네이미스 같은 암소가 아니다. 나는 여자애다.

******

"재수 없어."

"너도 재수 없어. 얼른 일이나 해."

"이건 일이 아니야. 네가 하는 건 일이 아니야. 멍청해! 넌 멍청하고 한심해. 게다가 넌 네가 그렇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어."
 
   

 

브라이언의 독설이 아니었다면(뭐 굳이 독설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는,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주인공 디제이는 그저 끝도 없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Dairy Queen, 직역하면 낙농의 여왕이라 말할 수 있는 디제이는 송아지 돌보기, 우유 짜기, 건초 나르기가 일상인 '젖소 여왕'이다. 슈웽크 농장의 디제이는 학교에서 유망한 농구선수이다. 안타깝게도 아빠 대신 농장을 맡아 꾸리느라 농구 시즌에 빠지고 게다가 영어까지 낙제를 받았다. 그래도 디제이는 묵묵히 일할 뿐이다. 아빠는 다쳐서, 오빠들은 대학에 가 있어서. 엄마는 임시교 장직까지 하느라 바빠서, 동생은 운동시간 때문에 빠져야 하는 이유로... 디제이는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집안사람들... 디제이가 속한 슈웽크 집안사람들의 특징은 결코 겉으로 가타부타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튼, 그저 힘든 일이 자기가 할 일이고 묵묵히 하고 있었던 디제이 앞에 홀리퀘터백 브라이언이 나타나고, 삼촌 같은 홀리팀 코치의 말대로 브라이언은 농장일을 도우면서 체력을 키우고 디제이브라이언의 풋볼 트레이너를 딱 일주일 해보기로 한다.

하지만, 기분은 더럽다. 디제이가 속한 레드밴드와 지겹게 앙숙인 홀리라는 관계와, 여자아이 트레이너와 건장한 남자아이의 훈련이라는 관계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숨겨주길 원하는 브라이언과 그러마 약속한 디제이의 관계 때문에 둘은 몰래 연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브라이언이 무심코 내뱉은 말은 디제이의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다.

 

뜨거운 햇살과 넓은 초원, 그리고 한적한 시골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 소설이다.

보더스 오리지널 보이스 어워드 'YA소설 부문' 수상, 전미도서관협회 선정 '청소년을 위한 최고의 책'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소설이다.

작가 캐서린 머독 역시 미국의 작은 농장에서 성장했다. TV도 잘 나오지 않고 이웃도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작가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단다. 데어리 퀸』디제이는 작가의 성장배경과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풋풋한 십대들의 이야기를 대신 보여주고 있다.

 

디제이는 대화다운 대화를 못한다. '못한다'라기 보다는 속마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척 쑥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더구나 오빠나 아빠나 그리고 평생 말없이 살 것 같은 동생을 봐도 대화라는 것이 없다. 있다가도 뚝 끊어진다. 디제이는 생활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글을 쓴다. 대화가 어렵지만, 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써내려간다.

브라이언과 몰래 하는 풋볼 연습에서 디제이는 풋볼을 정말 사랑하는 자신을 알게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브라이언과 '대화'를 하게 된다. 절친이 있지만 진정한 '대화'를 해본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브라이언의 시답잖은 말이라 여겼지만, 브라이언의 일침은 계속 디제이를 맴돈다. 그리고 디제이는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자신만의 생각을 더해가는 성장을 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풋볼 선수로 뛰겠다는 디제이의 결심은 이제껏 살아온 십대의 생활에서 또 하나의 출발을 하기 위한 선을 긋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도무지 손댈 수가 없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덩치가 산만한 녀석들 사이에서 훈련 한다. 하지만, 쉬운 결정만은 아니다. 마음을 그렇지 않지만 브라이언과 적수가 되어 버린다. 피할 수가 없다. 자신을 노려보는 브라이언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번번이 기회를 놓친다. 

 

데어리 퀸』시골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좁은 지역이지만 스포츠로 열광하는 십대 청소년들과 그것을 경기하고 그것을 위해 지저분하고 힘겨운 훈련도 마다하지 않는 건강한 십대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를 통해 자신 속에 숨어 있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것을 함께 읽는 독자들에게 따뜻함과 뿌듯함을 주는 이야기이다. 십대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대화의 부족이다. 어른들의 관심에 조금 큰아이들을 짜맞추려고 하니 이래저래 잔소리가 많아지고 아직 충분히 자라지 않았음에도 그저 어른들에게 반항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대화를 피하게 되는 반복이 생기게 마련이다.

'진정한 대화' '나를 찾는 대화'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신을 귀하게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정말 모든 힘들 것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것을 하려고 할 때 10대에서 20대로 커가는 과정일 것이다.

 

데어리 퀸』은 오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그리고 무척 자연스러운 소설이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이고, 자신의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약간은 어수룩한 순진함을 볼 수 있는 그런 소설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따뜻함과 흐뭇함을 안겨 주는 소설이다.

절대로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디제이브라이언이 서로 의식하게 되는 과정은 마치 어릴 적 이웃 남학생과 묘한 첫사랑의 감정을 가졌 그때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금의 시간이 그저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10대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데어리 퀸』디제이브라이언과 함께 더 나음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진정함이 무엇인지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