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케빈 마이클 코널리 지음, 황경신 옮김 / 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신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준다고 한다. 하지만 '고통'이란 단어는 자신의 현재가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때, 알리고 싶을 때 표현하는 단어가 아닐까.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의 케빈에게 너의 장애는? 고통은? 이란 단어조차 꺼내지 못할 그런 당당함을 가진 젊은이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의 고정된 개념을 부끄럽게 하는 책이다.

케빈은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태어나는 순간의 감동과 축복은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다.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난 아이지만 그의 가족은 세상의 마음을 대신해서 그 상태 그대로, 있는 그대로, 케빈 그대로를 맞이한다.

 

장애아를 주인공으로 쓰인 책은 많다. 하지만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라는 제목에서 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내 모습이 이러니까 놀랄 필요도 없고 그저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도전적인 눈빛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비장애인의 잘난 척으로 동정할 필요가 없다. 케빈을 바라 보고 놀란 마음을 숨기며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가식적인 눈빛을 만들 필요가 없다.

케빈은 케빈 그대로이고, 그것을 말하기 위한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이며, 케빈 스스로 당당한 청년으로 커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케빈과 가족과 친구들,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두 다리가 없는 한 남자가 성장하면서 바라본 특별한 세상『더블 테이크: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 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태어난 순간부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자란 저자 케빈 마이클 코널리. 그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세계 17개국을 여행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낮은 앵글의 사진으로 찍었고, 이 프로젝트는 <롤링 전시회>라는 사진 컬렉션으로 소개되었다. 이 책은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가 23년 동안 무엇을 보며 어떻게 성장했는지 담고 있다. 또한, 어쩔 수 없는 우리 시선의 한계들을 리얼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사진 속의 인물들은 케빈을 보고 놀란다.

 Double Take(처음엔 웃음으로 받아넘겼다가 다음에 깜짝 놀란 체하는 짓)를 보인다. 뭐... 이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케빈은 그 짧은 순간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케빈의 사진을 통해 다른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 볼 수 있고, 보통의 시선으로 못 보던 세상의 낮은 곳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한 곳을 바라볼 수도 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나의 큰아이 때문이다. 중3 아이가 커오면서 그 과거의 시간 중 3년을 아픈 다리 때문에 고생했고, 앞으로의 시간을 다른 아이들보다 조심해야 하는, 때론 축구나 농구나 달리기를 많이 즐기지 못하는 앞날을 겪어야 할 아들 때문이다.

부모인 나는 무엇을 얼마나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자신을 인정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꾸려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다독거려야 하는 책임을 늘 떠올리고 있다. 그래서 『나를 보고 놀라지 마시라』에 보인 케빈의 모습이, 케빈의 인생이, 그리고 케빈의 용기가 아이보다 오히려 나에게는 절실했는지도 모르겠다.

 

장애인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고 대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뭔가 도와줘야 하고, 뭔가 배려를 해야 하는 그 자체가 장애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아닐까. 케빈은 이런 사소한 것조차 스스로 해나가길 원하고 그것을 실천했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여 준다.

케빈이 스키를 배울 때 그를 도와줬던 자원봉사자와 그리고 자신의 아픔은 뒷전으로 하고 아들의 성취감을 위해서 희생한 아버지. 또한, 어쩌면 무모할지 모르는 케빈의 계획.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 계획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지켜보고 응원하던 엄마와 가족들... 그들이 했던 평범하지만 가장 강했던 방법은 케빈을 세상과 당당하게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를 주는 계기였을 것이다.

 

"난 코치가 아니야." 리프트에 올라타며 그가 말했다. "스키를 탈 줄은 알지만 어떻게 하면 잘 탈 수 있는지 제대로 가르쳐주긴 힘들어. 너 같은 상황에 있는 아이를 가르치는 건 처음이거든. 전문 강사라면 뭐가 위험한지,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얘기해줄 수 있겠지. 하지만 난 네가 뭘 할 수 없는지 진짜로 모르겠어. 그러니까 죄다 해봐야 할 것 같아." (p70)

 

"누구에게나 진짜, 진짜 잘할 수 있는 일이 하나쯤 필요하다. 나머지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만큼 잘하는 일 말이다. 너한테는 그게 스키고, 나한테는 운전이란다, 아들." (p85)

 

그러나 무엇보다 나의 성공을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바친 사람들의 눈앞에서 내가 실패하는-승리를 놓쳐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모두가 같은 질문을 했다.

"죽기 살기로 하고 있냐?"

"뭐, 그렇죠." 그 말의 진짜 의미가 뭘까 생각하며 나는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그 말을 곱씹고 있었다. 어쩌면 '죽기 살기로'라는 건, 나 스스로 정한 목표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소망하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늘 간직하고 싶어 하는 지속적인 상태 중 한 가지였다. '죽기 살기로'의 '죽기'란 실제로 눈사태 방지턱에 얼굴을 처박는 것을 말할테니 말이다.

'죽기 살기로'라는 건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안전과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속의 경계선을 밀어붙이는 것을 의미했다. '죽기 살기로'라는 건 출발선에서 괄약근을 조이고 결과와 상관없이 달리기로 결심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죽기 살기로'가 내 목에 걸어주었을 은메달은, 바로 다음 경기에 어떻게 임할 것인가를 가리켰다.(p187)

 

너무 벅찬 감동이 가슴속에서 밀려오고, 벅찬 감사 때문에 눈물이 흐른다고 하면 다른 독자들은 무슨 오버 액션??이라고 핀잔할까?

하지만, 난 그렇다.

난 다리 아픈 아이를 업고 학교 4층까지 올라가 봤고. 아이가 맘대로 뛰어놀지 못하는 것 때문에 속상해하고. 매번 학기마다 체육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께 이런저런 전후 사정을 아이 몰래 말하고 돌아 나올 때의 마음을 겪었기 때문에 케빈의 승리가 마치 나의 아들이 이루어낸 승리처럼 느껴진다.

물론 내 아이는 장애인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농구대를 향해 뛰어오르고 골대를 향해 축구공을 차는 운동은 사실 조심스럽다. 건강하지만 건강을 조심해야 하는 마음이 가끔은 아이 스스로 초라하게 만드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래서 케빈의 이야기가 내 아이에게는 무척 신선한 이야기로 다가감을 확신한다.

 

그래 세상은 해볼 만 하다는 것을 케빈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독자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향해 사진을 찍는 케빈은, 그리고 그것을 위해 홀로 온 세상을 돌아다녔던 케빈은 비록 상처투성이 손과 몸을 갖게 되지만 앞으로 무한한 목표가 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따뜻함과 친절만 존재하는 곳은 아니다. 악도 있고, 불친절도 있고, 동정도 있고, 무시와 협박도 있다. 그것을 부딪치며 나의 인생을 살아갈 케빈과 나의 아들과 그리고 조금이나마 몸이 약한 이들은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것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이고 삶이고 살이고 피이다.

화이팅..

구구절절한 글로 케빈내 아이에게 말하기조차 미안하다.

화이팅..

스스로의 세상에서 잘 적응하고 앞으로 헤쳐나가는 케빈과 비슷한 모든 아이에게. 젊은이들에게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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