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하늘말나리야 (양장) 푸른도서관 5
이금이 글, 송진헌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소년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내가 겪었던 청소년기보다는 더 나은 교육방법이 있을지. 또는 아이들의 변화가 나와는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은 마음에 성장소설을 많이 읽게 된다. 그런 나의 바램으로 만나게 된 책이 <첫사랑>과 <이금이> 작가다. 무척이나 평범하면서도 실감나게 다가오뎐 글을 읽고 <이금이>작가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고 뒤이어 만난 이야기가 바로 <너도 하늘말나리야>이다.

<이금이>란 작가를 소개하는 글에 따라붙는 우리 시대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꾼이라는 말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진솔이라는 단어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백합과의 꽃인 <하늘말나리>

말나리 꽃중 유일하게 하늘을 보고 피는 말나리 꽃으로 대개 마음이 따뜻하고 사려깊은 사람을 가리켜 빗대어 부르는 이 단어는, 그리고 이것을 제목으로 붙인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다들 땅을 보고 자라는 꽃중에서 혼자 오똑이 하늘을 바라보고 자라는 말나리 꽃..

하늘을 향해 더 밝은 태양을 맞이하고 싶고, 더 푸른 하늘과 더 넓은 하늘을 꽃잎 가득 받고 싶은 열망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고개숙인 삶을 저 넓고 환한 하늘을 향해 들어올리라는 가르침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책 속의 아이들은 '한부모 가정' '조부모 가정'의 아이들이다.

시대가 아무리 현대적으로 변화한다 하더라고 '한부모 가정' '조부모 가정'의 아이들은 뭔가모를 차별적인 시선을 받기 마련이다. 어른의 탓이던, 정해진 운명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보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나 역시 이런 좁은 생각을 갖고 있던 못된 사람의 하나였나보다.

뒤이어 떠오르는 그 가정의 아이들은 어떨까라는 생각은 한순간 답을 말할 수가 없다. 그만큼 그들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던 나의 위선이라고 표현해도 될 지 모르겠다.

그만큼 나 스스로가 '한부모 가정'과 '조부모 가정'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왜 그 아이들이 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밝게 자란다던지, 의젓하게 자란다던지, 조금 일찍 어른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던지에 대한 긍정적이고 응원을 보내야할 생각을 먼저 떠올리지 못할까.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미르와 소희, 바우는 이런 작은 생각을 갖고 있던 나에게 무척이나 밝고 큰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겪어가는 과정은 상처를 치유 해나가고 동시에 더 큰 인생을 다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나름의 색을 갖고 있다. 또한 나름의 해결 방법을 갖고 있다. 그것이 서로 어우러져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또한 주변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 과정이 한 뼘 더 어른으로 되는 과정이다. 어른이 된 나는 지금 참 쉽게 말한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때..그 다음 과정으로 향한 경계선을 넘기란 무척이나 괴롭고,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다시 떠올려진다.

소희가 말하는 한 구절이다.

 나는 오늘 책에서 '상처 입은 조개만이 진주를 키울 수 있다'는 구절을 읽었다.

조개 속의 상처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진주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을 조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p98)

 

과정이 있어야 결론을 얻게 된다.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나는 많은 방법을 생각하고 시행착오도 겪는다. 내가 지내왔던 삶보다 조금 더 나은 삶, 조금 더 생각이 깊은 삶, 그리고 인생이란 멋졌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삶을 내 아이들이 갖기 위해 나는 무던히도 행동하는 것이리라.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친구가 친구에게 들려주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래의 시선으로 또래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인생은 이렇게 이렇게 크는거야..라는 말을 들려주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이것을 어른이 아이들의 시선으로 써내려간다는 그것이 아마도 <이금이>작가를 가장 진솔한 이야기꾼이라고 표현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흔히 생각하듯 아이들은 절대 슬픔속에만 있는 아이들이 아니고, 절대 기죽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미르와 소희바우는 오히려 더욱 멋지고 씩씩한 아이들이었다. 보통 가정의 아이들보다 더욱 멋진 아이들이었다. 이런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 지켜볼 수 있어서 흐뭇했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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