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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 완역본 ㅣ 하서 완역본 시리즈 4
에밀리 브론테 지음, 한명남 옮김 / (주)하서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이야기의 배경은 1801년 영국에 있는 한 폭풍의 언덕 집에 세입자 록우드씨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집주인 히스클리프와 그의 곁에 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듯한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되고, 자신의 가정부 넬리 딘에게 그들의 지난 과거를 듣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폭풍의 언덕』은 문학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그것이 지닌 깊은 비극성과 시적인 감각을 들어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비교될 정도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귀한 고전을 지금에서야 읽어본다. 뛰어난 작품성 때문에 대강의 줄거리를 알았고 비극적인 이야기 전개가 마뜩잖아 굳이 이 책을 선택해서 읽고 싶다라는 생각이 없던 터였다.
하지만 고전은 고전인지..더구나 이 책은 완역본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띄어 고전을 해석하기 어려움이 있겠다라는 염려를 하면서도 과감하게 도전해봤다.
에밀리 브론테가 남긴 단 하나의 소설이자, 영문학의 3대 비극소설 그리고 세계 10대 소설로 꼽히는 작품인 『폭풍의 언덕』은 읽는 자체가 고전에 대해, 그리고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안목을 갖게 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이야기는 주인공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와 함께 자라온 하인 엘렌 딘의 회상체로 이어진다. 과거의 당사자들의 시선이 아닌 객관적이지만 때론 어느 한 명의 편을 들었던 엘렌 딘(넬리)의 회상에서 어찌보면 일과 주인에 대한 충성만으로 살아야 했던 신분이 낮았던 이들이 비꼬는 면이 보이기도 한다.
에밀리 브론테의 출신 성분이 그다지 미천하지 않음에도 이런 화자의 서술로 이어지는 점은 당시의 글로써는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것에 공감한다.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히스클리프와 그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겼다 여기는 힌들리 언쇼와 캐서린 언쇼 남매의 얽힌 비극사가 펼쳐진다.
사실 현대의 시선으로 『폭풍의 언덕』을 읽어나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고전을 읽는 묘미가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초반의 전개에서는 이야기의 해석을 현대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등장인물들 모두 비정상적인, 정신병적인 또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만 보여진다.
다시금 가다듬고 천천히 읽어간다.
1800년대의 배경을 떠올려 본다.
'셜록홈즈'의 배경이나 '작은 아씨들'의 배경이라고 하면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캐서린을 사랑하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 복수극을 펼치는 거친 성격의 히스클리프, 주워온 히스클리프를 편애하는 아버지 때문에 히스클리프를 학대하는 힌들리, 어릴적 사랑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 에드거를 선택한 캐서린 그리고 그들 주변의 인물들..
요크셔 황야를 무대로 펼쳐지는 격정과 증오를 다룬 작품으로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 이 작품은 한 남자의 집착적인 사랑의 갈망이 이토록 오랜 세월을 비극으로 몰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그려내는 글의 전개는 오히려 고전에 대한 진지함을 느끼게 한다.
사실 『폭풍의 언덕』은 복잡한 구성으로 짜여져 있어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기도 한다. 글의 처음에서 말했듯이 세입자의 등장과 비극의 역사를 알고 있는 하인의 회상으로 시작하지만 이야기의 중반에는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절제되지 못한 성장을 이야기하고 그다음 사랑을 잃어버리는 자와 또다른 사랑을 찾는 여인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는 연약한 남자의 모습을 전개된다. 그 뒤로는 그들의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복수의 전개와 사랑 그리고 1세대의 죽음까지 이어진다.
사랑이 맹목적이면 애증으로 변한다. 사랑하면서 증오하는 것. 글속의 주인공들은 애증의 관계를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어쩌면 그 자체에 젖어든 인물들인지도 모르겠다.
이성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사랑과 영혼으로 다가가는 사랑에 대한 집착이라고 표현을 하면 맞을까.
『폭풍의 언덕』에 등장하는 인물은 평범한 인물들이 아니다. 극단적인 성격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들을 통해 독자는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영과 육이라는 관계를 비교할 수 있는 안목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점 때문에 『폭풍의 언덕』을 설명하는 문학적 의의에 대해 동감을 하게 된다.
『폭풍의 언덕』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읽는 독자 모두 각각의 해석이 다를 듯 하다. 글의 전개처럼 극과 극의 결론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폭풍의 언덕』을 리얼리티를 초월한 리얼리티를 감지할 수 있다는 평을 이유가 있는 듯 하다.
문학의 시선으로 보는 『폭풍의 언덕』은 사실주의와 낭만주의가 훌륭하게 살려져 있다는 점을 들어 불후의 명작이라 일컫기도 한다. 또한 지금으로 치면 나쁜 남자의 이미지인 히스클리프란 인물을 독창적으로 창조해냈다는 점을 든다. 교양으로 똘똘뭉친 당시의 남성상에 정 반대되는 인물을 창조해낸 에밀리 브론테의 상상력이 대단함이 느껴진다.
인간이 갖을 수 있는 본능에 대한 갈망과 이성의 주된 지배를 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과연 무엇을 따라가겠는가라는 질문을 해보게 되는 소설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폭풍의 언덕』을 이해했다라는 말은 아직 할 수가 없다.
조금의 텀을 두고 다시한번 읽어보리라 계획한다. 그것이 고전을 제대로 읽고, 에밀리 브론테의 불후의 명작을 이해해보는 방법이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