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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는 여자 - 푸른 파도 위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
김상옥 지음 / 창해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산다는 게 왜 이렇게도 힘든 걸까? 다른 사람들은 다들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 자신과 은서는 왜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내일을 바라보기가 힘든 걸까?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신이 있다면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다. 우리 두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게 해 달라고, 눈물로 지새운 세월을 모두 보상해 달라고.(p221)
삶이라는 것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이란, 인생이란 편안함을 주면 억울한 모양이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웃는 날보다는 오히려 괴로웠던 날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단지 짧은 웃음의 날로 그 긴 괴로움의 날을 변명하면서 그것때문에 웃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속의 주인공 하윤은 마음속 깊은 아픔때문에 오래도록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파도가 치는 해안마을에서 하윤은 그 바람에 자신의 고독과 아픔을 실려보내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신의 아픔을 떠나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그의 눈에 들어온 한 여인. 그녀는 북춤을 춘다. 그녀는 낚시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슬픔을 간직한 얼굴을 하고 있다.
가슴 저리는 아픔을 가진 자만이 그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하윤이 그랬다. 그리고 북춤을 추는 그 여인도 그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여인의 행적을 찾아본다. 그것은 서로가 닮은 꼴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나보다.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느낌이다.
인생의 깊음을 느낀다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이다. 하지만 글이 말하고 싶은 내용이 그렇다.
또 우연찮게 하윤과 은서는 얽힌다. 은서를 바라보면 왠지모를 가슴 저려옴을 느끼기 때문에 하윤의 본능은 그녀를 바라보게 했나보다. 그저 옆에서만 있어주고 싶은 마음..그리고 그녀가 간직한 깊은 슬픔에 대한 안타까움은 절대 이성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픔은 슬픔을 알아본다. 그리고 고뇌는 고뇌를 알아보기 때문이리라.
실화를 주제로 사랑이야기를 쓴 김상옥 작가가 5년만에 독자들에게 선물한 책이다.
'20세기 마지막 순애보'라는 칭송을 들은 『하얀 기억 속의 너』는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책이라 한다. 그가 다시 내놓은 사랑의 이야기가 바로 『북치는 여자』이다.
북춤은 농악의 북잽이가 주로 추던 춤으로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가장 발달한 춤이다. 경사도 지방의 농악에서는 북이 약간 크며 자진가락이 적은 대신 원박에 맞추어 힘차게 치면서 춤을 추고, 전라도 지방에서는 자진가락으로 장단과 장단 사이에 엇박으로 다양하게 북을 치면서 춘다.
따라서 경상도 지방의 북춤은 남성적인 반면 전라도 지방은 여성적이라 할 수 있다.
북을 끌어안고 한 발 한 발을 옮기며 사뿐히 날아가는 듯한 춤사위속에 둥~둥~울리는 북소리는 가슴속의 그 무엇을 토해내는 소리가 아닐까.
북치는 여자 은서의 춤은 한이 서려있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그녀는 북춤으로 표현한다. 그렇게라도 풀어내야 그녀는 살 수 있다. 그것이 본능이다.
아무리 죽을 지경의 삶이라도 해도 본능은 살아남아야한다는 그 무엇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는가 보다.
그런 은서에게 하윤은 또 다른 삶을 향한 숨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연한 만난 인연인 하윤 앞에서 그녀는 가슴속의 모든 슬픔을 다 토해낸다.
그녀의 삶, 그녀의 삶, 그녀의 삶..
몇번의 그녀의 삶에 대해 말하여야겠지만 책을 읽은 나 역시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그 슬픔은 책속에 고스란히 전해오기 때문에 감히 이러쿵저러쿵 운운하기조차 미안하고 또 미안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픔을 들어가면서 하윤 역시 자신 속에 있던 슬픔을 토해낸다.
사람은 저마다 희노애락이 있잖아요. 즐겁고 행복한 것은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불행하거나 자신에게 치욕적인 일들은 타인에게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 깊이 묻어두잖아요. 그런데 가슴에 쌓여 있는 것이 무엇이던 자신의 심중을 모두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아마 그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p276)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다. 나만의 아픔이 가장 크고, 풀어낼 수 없는 족쇄로 여겨지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라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은서가 말하듯이 가슴에 쌓은 것을 풀어내는 순간 또 다른 새로운 삶은 다가오고 있음은 독자들은 아는지..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괴로움에 둘러싸인 삶이라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내 입으로 사랑운운하면 낯뜨거울지 모르는 그 느낌이 결국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감을 책장을 덮으면서 다시한번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