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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주의보
엠마 마젠타 글.그림, 김경주 옮김 / 써네스트 / 2010년 2월
평점 :
분홍색은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색으로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인 사람들이 주로 선택하는 색이라고 한다. 그런 분홍색으로 사랑을 그려내는 책을 만났다.
『분홍주의보』
포토 에세이로 분류되긴 하지만 어찌보면 하나의 긴 서사시처럼 느껴진다.
사랑이 다가온다.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그 황홀함과 기쁨과 달콤함을 느낄 수 있지만 굳이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싶다. 나에게 사랑이 다가옴을 자랑하고 싶은 또 하나의 욕심도 동반된다.
나의 사랑만이 분홍색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분홍색으로 그려진 나의 시간과 나의 삶은 너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분홍색은 더욱 고운 분홍색의 그 빛을 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언제 다가온지도 모르게 다가왔음을 느끼게 되면서 나는 그것을 표현하고 싶다.
굳이 ’고백’이라는 단어로 울타리를 치고 있지만 그것이 내뿜는 사랑의 향기와 사랑의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분홍주의보』는 더더욱 가슴에 와닿는 사랑의 고백으로 새겨지는 것인가보다.
사랑이 스며오는 무렵...몸의 기상예보를 『분홍주의보』라 말하고 싶다.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엠마 마젠타의 그림이 매우 독특하다. 간단한 선들과 이미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시와 그림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수년 동안 시를 쓰고 미술 공부를 하고 세계여행과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을 때 세계적 베스트 셀러인 <블루데이 북>의 작가 브레들리 트레버 그리브를 만나 자신의 재능을 더욱 멋진 것으로 이루어내고 있다. 여기서 잠깐. <블루데이 북>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비소설부문에서 경쟁을 보였던 작품이다. 출판 5개월만에 30만부가 팔렸다는 이 책은 각 쪽마다 예사롭지 않는 동물사진 1장과 단 한줄의 글이 들어간 책이다. 사진집으로도 분류할 수 없는 독특한 편집의 책이지만 단 한줄의 글이 수십쪽의 에세이보다 높은 은유와 강도를 지녔기에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모은 책이다.음..그런 <블루데이 북>의 작가의 종용(?)에 의해 엠마 마젠타는 더욱 자신의 재능을 끌어낼 수 있었나보다.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가 “엠마 마젠타의 그림을 본 순간 벼락 맞은 것 같은 천재적 영감을 마주했다”고 할 정도였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바로 아름다운 언어로 이루어진 번역이다.
바로 변역을 한 김경주 작가를 눈여겨 보게 된다.
대한민국의 젊은 시인들 중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작가이자 2009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김경주를 알게 된다.
김경주 작가 그만의 독특한 시어를 사용해서 생동감 넘치는 감정을 원문을 근거로 하여 새롭게 생명을 불어 넣었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대산창작기금 심사평)이란 극찬을 받은 그의 재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렇듯 재능으로 똘똘 뭉친 두 작가의 역량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분홍주의보』이다.
엠마 마젠타의 휴머니즘적인 사랑을 그림과 시로 고백하고 있고,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로 번역을 하느냐에 따라 독자의 감동과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일을 김경주 작가가 해내고 있다.
"내 이름은 벙어리 발렌타인.."이라고 시작하는 첫문장은 바로 사랑의 황홀함을 느낄 수 있는 발렌타인 데이와 수줍음에 고백을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은 언제인지 모르게 새로운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게 된다. 봄,여름,가을,겨울을 겪으면서도 계절의 경계선을 느끼지 못하면서 어느 순간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김경주 작가는 책을 옮기면서 성장통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다고 한다. 육체의 성장통을 겪어야 키가 한 뼘 더 자라듯이 사랑의 성장통을 겪어야 더욱 아름다운 분홍색의 사랑을 나의 사랑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무척이나 새로운 느낌의 사랑이야기를 아름답게 읽었다.
작은 문고판이지만 화려한 분홍색의 책을 손에 쥐고 몇 번을 읽게 된다. 낯설은 그림도 한 번 보고, 또 한번 들여다보게 되면서 그림 속의 사랑을 찾아낼 수 있다.
"천천히 사랑이 밀려오는 어떤 무렵...."에 있는 그 느낌을 고스란히 가져볼 수 있는,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것들을 고백할 수 있는 책이 바로 『분홍주의보』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