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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서울에서 임금근로자가 82㎡(25평형)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월급을 한푼도 쓰지 않고 15년 4개월간 저축해야 한다는 뉴스를 떠올려본다. 2008년도 자료에 따르면 월평균 184만 6000원의 임금 근로자가 서울 아파트-평균 3억 4198만원으로 가정했을 때- 값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15년 4개월을 꼬박 저축해야 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2008년의 수치이기 때문에 2009년부터 부쩍 어려워진 경제상황을 감안한다면 그 기간은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한국이란 하늘아래에서 살아가면서 부동산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현실이다. 수많은 분양 소식과 수많은 재개발의 뉴스속에서도 정작 마음 편하게 집 한칸을 마련하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는 점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때문에 조금 여유를 가진 자는 적립식 펀드니..변액 연금이니..어려운 단어를 쫓아다니며 나름의 재테크를 발빠르게 하기도 하고, 여유가 없는 자들도 청약통장이니 서민주택이니, 보금자리주택 등등, 나름대로 내 집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솔직히 한달 벌어 이런저런 생활하고 남는 돈으로 내 집 마련에 얼마나 투자할 수 있을까.
부동산이란 단어만 나오면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 아마도 서민들의 솔직한 표현이리라.나 역시 그렇다. 집도 있었고, 사업체도 있었지만 인생이 어디 그렇듯 넉넉함과 여유로움과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점만 주는가? 절대로 아니다.흔히 하는 표현처럼 집도 절도 다 날려버리고 손에 쥔 것은 없고, 토깽이같은 자식들은 커올 때 그 답답함과 암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집 마련의 여왕』은 어찌보면 조금 빠른 단시간 안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제테크의 노하우를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라는 주제넘은 생각부터 하게 된다.
절대로 그런 얄미운 상상은 마시길..
내 집 마련은 이렇게 해야합니다란 정답보다는 내 집이라는 것을 왜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따뜻함이라는 인간미 가득한 느낌을 부수적으로 더해주는 책이다.
부동산이란 단어 때문에 위에서 구구절절 거품물고 표현한 나의 잠깐의 생각이 부끄럽고, 아하~집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집은 이런 이들이 쉴 곳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수빈은 참..오지랖 넓은..그런 여인이다.
험한 세상을 악착같이 헤쳐나간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면서 나름의 기준은 버리지 않는, 그렇다고 똑부러지는 것도 아니면서 나름의 순수함을 갖고 있는 그런 여인이다.
어느날 갑자기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딸아이와 남겨진 엄마이다. 또한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외국인 남편을 기다리면서 혼자의 똑똑함만 주장하다가 세상에 배신을 당해서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집까지 날리게 된 약삭빠르지 못한 순진하기만한 여인이다.
수빈은 자신의 집을 다시 찾게 되는 조건으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선전의 한 문구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말 그래도 까다로운 조건과 정해진 금액에 집을 찾아줘야 하는 해결사 노릇을 하게 된다.
집을 구해야만 하는 이들은 결국 지금 우리 옆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어쩌면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절박한 심정의 사람들이다.
자수성가한 고아 청년 서대리 형제들의 보금자리와 추억을 잃어버린 독신노인 박선생의 추억 찾기, 장애아동이 있는 훈이네가 맘 편히 살 수 있는 그런집, 그리고 젊은 시절부터 없는 서민들을 위해 투쟁해온 나이먹은 이 간호사의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
1998년 등단한 작가 김윤영은 현실감 있는 소재로 동세대 삶의 단면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지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급의 여인이라서 그럴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꿈이라는 결론으로 한쪽으로 밀려날지도 모르는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아줌마로써, 그리고 여인으로써 공감에 한 표 던지게 된다.
한국에서의 최고 이슈인 부동산을 이렇듯 재미있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글이 참 맛깔스럽다.
수빈이 집을 찾아 서울을 뒤지고 다닌 행적을 따라다니다 보면 나 역시도 참...부동산과는 먼 인연이구나~라는 생각에 헛헛한 웃음도 떠오른다. 산 하나를 두고 내가 살던 불광동과 그 너머의 평창동의 삶은 천지차이였고, 어릴적 소풍을 다녔던 그 길이 은평 뉴타운으로 변할지 누가 알았을까.
역시나 대한민국은 부동산의 나라임을 다시한번 실감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것만을 말하려고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니다.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 1980년대부터 자리잡게 된 아파트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꼬집고 있다.
아파트에 살면 잘산다는 인식이 왜 생겼는지. 어느 복부인의 농간이었는지 따지기도 전에 우리는 아직도 좋은 집, 좋은 아파트에 살아야 잘산다는 인식을 하고 있음을 정확히 거울 앞에 대령하는 작가의 능력이다.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자기 월급의 몇십 배나 되는 돈을 대출받고, 그 이자만을 갚기 위해 아등바등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각성해야 한다.
안다고? 아는데 아직도 그 미련함을 놓지 못함에 또 한번 각성해야 한다.
알면서 결정 못내리고, 또 다시 이자를 갚고, 대출을 받고..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아파트에 집착하는지, 집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서민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이 바로 『내 집 마련의 여왕』이다.
미션 수행을 위해..서대리와 박선생, 훈이네와 이 간호사의 보금자리를 찾아주는 과정을 수빈과 함께 하다보면 독자들은 인간 스스로 참모습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각박한 세상의 인심 속에서도 한줄기 뻗어나가는 진한 인간미의 미약한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독자는 『내 집 마련의 여왕』의 영원한 동지가 되는 순간이다.
아파트를 다 날려보고, 좁은 집으로 이사도 다녀보고 나서야 나는 집이란 이래야 한다. 조금 더 좁은 것 감수하고 살다가 조금 더 벌어서 복닥거리는 도시를 떠나 마당 가득 햇빛을 머금을 수 있는 집을 마련하리라. 그리고 아주아주 커다란 개 한 마리도 식구로 맞아들이리라..계획을 잡고 있는 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가족의 행복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그리고 하숙생처럼 아침에 나갔다 밤에 쉴 때만 있는 곳이 아닌 어느 사람이든 내 집에 오고싶어하는 그런 멋진 집, 그런 편안한 집을 마련하리라.
이것이 김윤영 작가가 말하고 싶은 소울하우스가 아닐까. 작가의 말처럼 나 역시도 이런 집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집이란 건, 삶과 연동된 작은 일부일 뿐, 우리 삶이 변하면 집의 가치도 변할 것이다. 내 다른 소울하우스는 어딘가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 만나게 될 것이다.(p336)
경매판도 기웃거려보고, 법원도 훑어보고 나름 약삭빠른 여편네의 행동을 해보지만 인연이라는 것은 다 따로 있음은 40대를 훨씬 넘어선 아줌마의 모습을 갖춘 지금에서야 조금씩 인정하고 있다.
『내 집 마련의 여왕』의 여왕을 읽어가면서 더더욱 공감을 하게 된다. 집이란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곳이어야지 집에 쫓기는 그런 곳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구나. 작가 역시 그것을 말하고 싶었구나라고 해석하고 싶다.
소울메이트...
소울하우스..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편안한 단어인지 모르겠다. 진정함을 느낄 수 있는 단어이다. 그리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이것이 바로 『내 집 마련의 여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