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평점 :
독일에 유학해서 독일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공학 박사 학위까지 받고 지금은 독일 문화재청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여자, 물리학 박사로 첨단기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평범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남편, 물리학을 공부하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하고 싶은 짓은 다 하고 사는 아들, 식구중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인간이라 믿고 있는 딸...<고등어를 금하노라>라는 좌중의 분위기를 한 순간에 잡아버리는 듯한 말을 하고 있는 작가 임혜지의 가족 구성원이다.
'자동차 대신 튼튼한 두 다리로 자전거를 타겠노라'
'재미도 없는데 돈 때문에 일하지 않겠노라'
'독일에서 바다 생선이라니. 식탁에서 고등어를 금하노라'
'공부도 연애도 놀이도 절대로 강요하지 않겠노라'
'난방기를 켜는 대신 따뜻한 물주머니를 안고 자겠노라'
무엇이냐고? 바로 저자가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는" 말이다.
"세끼 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하기 위해 직업적인 성공의 일부를 포기했고," 라는 책소개를 보고 선뜻 선택한 <고등어를 금하노라>.
그녀가 내게 남겨주는 결론은 무엇일까.
남들보다 훨씬 월등한 학력의 소유자고 검소와 바름의 상징인 독일에서 살고 있고, 더구나 그녀의 아이들은 머리 좋은 녀석들이 다닌다는 김나지움의 학생들이다. 독일남자와 살고 그의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글을 쓸때 오히려 독일어가 더 편한 그녀란다.
그런 그녀가 우리 식탁에서 가장 올라오는 고등어를 금하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을 걸까??
고등어를 금하라고? 왜? 독일에서는 고등어에 반론을 갖는 그 무엇이 있나?
저자의 프로필만으로 독일에서도 어느 정도의 삶이 보장 된 직업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녀의 생활 역시 중산층보다는 좀 더 높은 생활여건을 갖고 살지 않나 선입견을 갖게 되지만, 절대로. 그 반대의 독일 생활을 적어가고 있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굳이 독일사회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찾게 해주는 물꼬를 트는 듯 하다.
살아가면서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사는 이들을 보면서 반성하고, 감사하고, 살아가야함이 정답임을 알면서도 나의 눈은 나보다 좀 더 나은 삶, 좀 더 괜찮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것 자체에 나의 자존심과 가치를 떨어뜨릴 때가 있다. 물론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시원한 글은 내가 갑갑해 했던 그리고 정확히 생각을 해야하는 그것을 끄집어 내게 해준다.
어쩌다 돈의 액수로 나의 값어치와 자존심을 매기는 실수를 범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초라한 패자가 된다. 내가 암만 돈을 많이 받아도 내 위에는 승자들이 층층 계단처럼 한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평가의 기준을 돈에 두는 한 나는 항상 패자로서 우울할 수밖에 없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내 노동력 또한 소중하기 때문에 그 평가를 남에게 맡기거나 돈으로 재고 싶지는 않다.(23p)
'내 삶의 주인은 내가 되야만 해'라는 노랫말 가사처럼 내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내가 갖어야 하는 바르게 이어가야하는 그것을 독자 스스로 찾게끔 저자는 자신의 삶의 무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학부모 모임이 있고, 돈이 넘쳐나는 유한부인들이 있고, 앞에서 나서지만 실질적인 일을 못하는 엄마들도 있다. 돈으로 그 집의 생활정도를 가늠하는 여자들도 있단다. 그녀의 아이들은 난독증으로 인해 공부의 성적은 밑바닥이었고 낙제 위기까기 갔었다. 영화속에서처럼 외국에서의 삶은 거품 풍성한 바스를 풀고 그 속에 몸을 푹 담그고 와인 한 잔을 먹는 목욕문화를 그녀의 삶에서는 사치이다. 고등어가 독일 식탁에 올라오기 까지 수많은 에너지가 사용되고 그것을 계산하는 남편을 째려 보면서 기꺼이 한국의 입맛 고등어를 포기한다. 아들 딸이 성인으로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말없이 콘돔박스를 채워둔다. 결혼 후 국적을 왜 바꾸지 않냐는 지인의 물음에 왜 바꿔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깡 좋은 여자다.
35년의 독일 생활에 대한 모든 것과 외국의 오랜 삶에서도 느낄 수 있는 한국인의 정서를 보여준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직업 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아웅다웅 살아가면서 끝없이 이어가는 그녀의 글 속에서 그녀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무엇일까.
그녀의 소소한 일상에서 크게는 독일의 생각, 그 속에 있는 한국의 생각, 한국을 바라보는 타국들의 생각까지 들여다보는 시간 내내 아하~ 인생을 이런 주도로 살아야겠구나. 오호~그래?? 난 이점을 생각지도 못했네...라는 혼자만의 감탄사를 연발한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다. 며칠에 걸친 마음고생이 끝나서 그랫는지, 죽은 메를린이 불쌍해서 그랬는지, 이제 혼자 남은 부비가 가엾어서 그랬는지, 애완동물을 잃고 눈이 빨개진 내 새끼들이 안돼서 그랬는지, 그 스님 말씀대로 패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편과 그 닮은 꼴 자식들이 야속해서 그랬는지, 그런 그들과 사느라고 억척이가 되어버린 내 팔자가 서러워서 그랬는지 이유는 나도 모른다. (260p)
여느 아줌마와 똑같은 넋두리를 줄줄줄 읽어가면서 나는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통해 우리 엄마들이, 엄마인 내가 가지고 있을 잠재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본다. 엄마의 생각이 옳고, 엄마의 행동이 옳고, 그리고 옳은 것을 위한 자기 주장이 견고할 때 나의 아이들, 나의 남편 그리고 나의 가정은 행복한 가족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책을 통한 간접 경험으로 가슴이 뿌듯해지고 아줌마임이 기특해짐을 느끼는 책이었다.
짧은 소견으로 저자가 말하는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는 없어도 멋진 엄마들은 세상에 많다는 것을 믿게 된다.
그녀가 남긴 에필로그의 한마디이다.
'어차피 하루하루 거 나가는 인생인데 까짓 거 비 오는 날 풀밭에 드러눕는 자유 정도는 누리며 살자구. 남이야 뭐라거나 내 양심 정도는 지키며 살자구. 남편에게 이롭과 자식들에게 이로운 일이 결국은 내게 이로운 일이란 걸 알았다면, 그리고 그 이치가 가족을 넘어 이웃, 사회, 지구로 확장되는 게 당연한 일이란 걸 깨달았다면, 남이야 뭐라거나 말거나 나만큼 나의 양식을 믿고 실천하자구. 풀밭에 드러누운 지지배가 뭐라고 흉을 보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