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이제 빼앗기지 마."
승민의 눈이 고글 속에서 웃고 있었다.
"네 시간은 네 거야."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미쳐 날뛰는 승민, 세상이 두려워 그로부터 도망치는 수명.
미친자이건 미쳐가는 자이건 그들의 시간을 내가 낚아챌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온갖 기준을 세워놓고 그것과 어긋나면 그들의 시간을 가둬버린다. 영원히. 그들을 보호한다는 변명아래....
 

정신병원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
승민은 미쳐가는 중이기 때문에 모든것을 다 해본다.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지금의 자신의 상태를,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미친다. 미쳐간다. 망막세포변성증이라는 이유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승민은 미칠 수 밖에 없다. 승민은 자신에게 다가올 실명이라는 결론도 모르는 채  패러글라이딩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었다. 모든것이 하늘을 마음껏 날아감으로써 자신속에 있는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승민은 미칠 수 밖에 없다.
타인의 뜻으로 유산 싸움에서  보호받고자 들어오게 된 병원이지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날이 하루하루 줄어가고 있는 승민은 탈출을 할 수 밖에 없다. 오로지 마지막으로 하늘을 날고 싶다는 그 간단한 이유이지만 막상 도움을 청할 이가 없다. 그래서 혼자 해결해야만 한다.

수명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과 세상에 오만정이 다 떨어지고 두렵다. 그래서 피하고 싶다. 되도록이면 눈에 안띄고 그저 소리소문없이 그렇게 지내고 싶다. 하지만 미친사람의 인생도 인생인가. 자꾸만 꼬인다. 미쳐 날뛰는 승민과 자꾸 얽히게 된다. 그래서 수명은 미치겠다. 혼란스럽다.
 

정신병동의 사람들 이야기다. 미친사람을 가두는 곳이 정신병원이다. 하지만 갇혀있기 때문에 미치는 것도 있다. 세상이라는 눈으로 보면 미쳐 날뛰는 인간들의 집합소이다. 그들을 수리 희망병원이라는 공간에 묶어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은 독자가 누릴 재미이다. 단 그들의 공통된 이유. 갇혀야만 하는 이유. 미쳐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세상이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왜 수명과 승민은 그토록 끝없이 세상을 향해 나오려고 했을까. 거창하게 말하자면 자유에 대한 갈망?
속이 보이는 답이지만 읽을 수록 마음 한켠의 울적함. 묵직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승민과 수명은 정신병원이라는 곳에 갇혀야만 나를 찾고 싶었을까. 자유를 누릴때 왜 그것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정신병원에 감금되기 이전에..어머니의 죽음을 보기 이전에..외국에서 돌아오기 이전에..자유에 대한 주장을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나도 세상의 눈이기 때문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니들처럼 하지 않았다라는 잔소리가 나올듯 한다.

여기에 보통사람들과 승민,수명의 다른점이 있다. 바로 그들이 갖고 있는 순진함 때문이다.
세상이 자기들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고 살아가는 그 와중에도 이들은 순진함과 순수함이 먼저였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도태되고 적응하지 못하고 미친놈으로 몰리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세상의 때를 알았더라면 이들이 과연 이토록 자신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시간을 보냈을까.
하지만 세상에 속한 잘난척하는 독자의 견해이다. 책속에 빠져들어야 했다.
긴박한 전개이다. 도전적이고 무모할 정도로 일을 만드는 승민과 싫어하면서도 얽혀서 질질 끌려가는 수명의 캐릭터가 피식 웃음이 나오게 한다.

지루할지 모르는 주제에 유머를 보태어 술술 읽게 만든다.
세상의 인간들아. 그렇게 나를 겨냥만 하지 말고 나를 쏴라. 못쏴? 그럼 내가 쏜다. 내가 세상을 향해 총알이 되어 쏴주마.
시원하다.
세상의 온갖 구박과 멸시와 색안경을 보기좋게 때려부숴 버린다. 그리고 속시원하게 뒷통수를 친다.

오랫만에 속이 후련한 책을 읽었다.
뻔한 결말이고 다짐일지 모르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 내게 주어진 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희망..그것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당근이면서 채찍이다.
이 당연한 것을 일깨우는 책이다.
끝까지 잘난척하는 승민궁시렁대면서 자리를 지키는 수명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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