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구 삼촌 산하작은아이들 18
권정생 지음, 허구 그림 / 산하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고 나서부터 마음에 울컥해지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
겨우 여남은 장의 짧은 동화이야기로 감동이라고 하기엔 미안한 그보다 좀더 깊은 마음 짠함이 전해진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얼음과자를 사먹는 다섯 살배기 영미보다도 못한 용구삼촌. 몸집만 어른인 그런 아이. 동네 아이들의 악의없는 놀림의 대상이었을 용구삼촌이었을 것이다. 어릴적 동네마다 바보들은 꼭 있었다. 그때는 그런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았었는지.
요즘은 혹여나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숨기기 바빠서 아마도 모두 병원에 입원 시켜놓고 세상과 격리를 시키는 것이 태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에서 절대로 바보를 볼 수가 없다.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너무 똑똑해진 것일까.

누렁이를 데리고 못골 산으로 풀을 뜯기러 다니는 것만이 용구삼촌이 할 수 있는 어른으로써의 일이다.
아이들보다 못한 삼촌이지만 스스로 하는 일은 하나 있다. 오로지 그 일만 꾸준히 하는 삼촌이었을 것이다. 그런 삼촌이지만 식구들에게는 늘 따뜻한 존재이다. 비록 그 존재감을 바로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삼촌은 가족의 한사람이다. 그런 삼촌이 누렁이만 집으로 돌려보낸 일이 생겼다. 무슨일 일까. 말이 없는 바보지만 용구삼촌 식구들에게 아주 크게 자리하는 사람이다. 맛있는 것이 있어도 늘 뒷전이고 옷도 늘 뒷전이고 그저 까만 고무신에 기워진 옷을 입고 있었어도 경희와 경식이에게는 늘 따뜻한 삼촌이었다. 그런 삼촌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바보였기 때문에, 몸집만 어른인 삼촌이었기 때문에 식구들과 동네 사람들은 삼촌을 찾아 산을 헤맨다.

삼촌을 찾아 헤매던 길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삼촌이 저 시커먼 못물에 빠진게 아닐까. 경식이는 두려움을 느낀다. 목구멍에서 치미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슬픔? 아픔? 애틋함? 결국 삼촌을 찾았다. 동네 사람들과 식구들의 걱정과 피로앞에 나타난 용구삼촌은 아무 걱정없이 옹크리고 잠을 자고 있다. 작은 산토끼를 안고서 말이다.

그 유명한 <강아지똥>과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선생님의 단편 동화이다. 한국의 어려웠던 시절속에서 자라고 공부한 선생님이기 때문에 선생님은 작품을 통해 서로 나누고 아끼는 삶. 생명을 보살피는 마음, 자연의 질서를 귀히 여기는 마음을 많이 이야기 하고 있다.

용구삼촌은 잔잔한 이야기 이면서도 가족의 진한 사랑과 사람의 존재의 가치를 알려주고 있다. 비록 바보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만의 존재는 어느 누가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용구삼촌은 세상에서 놀림을 받는 사람이었는지 몰라도 작은 토끼에게는 아주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세상의 영악한 시선이 전부는 아니다. 세상의 똑똑함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의 가치가 있고, 단지 그것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혹여 내가 우습게 봤던 사람의 존재감을 떠올려 본 적이 있을까.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나만의 잣대로 그들을 저울질 한적은 있었나?
많다. 무척 많다. 거의 매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용구삼촌은 그런 잣대에도 자기만의 따뜻함으로 존재감을 주는 사람이다.
이것이 마음속에서 밀려오는 짠함의 이유일까?

짧은 동화 한편속에서 이렇듯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내는 <용구삼촌>. 용구삼촌은 바보가 아니었다. 사람과 부대낌속에서 살아가면서 꼭 짚어야 할 것을 말해준 <용구삼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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