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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 향기나는 여왕 선덕
이적 지음 / 어문학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인 신라 27대 선덕여왕은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화려함은 없다.
선대 진흥왕때부터 이어진 당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미묘한 국내외 정세가 복잡하게 얽힌 시대였고, 남성 위주의 고대사에서 여성으로 최고의 지위에 오른다는 것은 통념을 깨버린 역사적 혁명임에 틀림없다.
삼국이 통일을 향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시대에 태어나 그 시대를 이끌어 가야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지도자이기 때문에 여자로서의 삶은 포기해야 했음은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모란과 굴레의 변주곡..작가의 이 표현은 선덕여왕의 삶을 이렇듯 표현한다. 고귀하여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여인의 모습과 남자들의 충성을 받는 여인을 표현한 모란의 이미지와 여자라는, 더구나 불안하고 시끄럽던 당시 시대를 이끄는 지도자라는 굴레 사이에서 선덕여왕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 책은 선덕여왕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선덕여왕이 즉위하기 이전, 진흥왕과 진평왕의 시대부터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서술과 선덕여왕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26대 진평왕은 하늘이 진평왕에게 옥대를 내려주었다는 천사옥대 설화와 돌계단을 밟으니 부숴졌다는 설은 그의 즉위가 정당화 되었다는 것을 하늘의 권위를 빌려 남다른 힘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24대 진흥왕은 신라의 영토를 급격히 팽창한 정복군주로 기록이 되듯이 가장 발달한 시대였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를 장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장자우선순위인 백정(26대 진평왕)이 왕이 되어야했음에도 둘째 아들인 사륜이 25대 진지왕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24대 왕의 자리에 오른 진평왕은 자신이 왕권을 갖기 위해 겪었던 그 모든 것을 하늘이 내려준 자리라는 설화등으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했어야만 했고,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만 했다.
하지만 진평왕의 소생중 아들은 없었으며 태어난 이가 바로 덕만, 즉 27대 선덕여왕인 것이다.
<열반경>에 나오는 덕만 우바이의 이름을 따왔으리라 짐작하는 덕만은 '공덕이 있는 여자'라는 뜻으로 당시 불교가 얼마나 왕실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진평왕이 왕위를 쉽게 얻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왕권의 신성화와 우월감을 나타내려던 진종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선덕여왕이 태어나기 전부터 자리잡은 불교는 그녀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이용되기도 하고, 나아가 그녀가 신라를 통치함에 있어서도 백성을 사로잡기 위한 상당한 전략으로도 이용된다.
또한 선덕여왕 즉위시 귀족들은 성골제를 통한 대립을 엿볼 수 있다.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동륜계와 사륜계로 나뉘었던 진평왕의 시대부터 이어지며 왕권의 계승을 따지게 된다. 이런 귀족들의 팽팽한 대립적인 사실을 볼때 선덕여왕은 아버지인 진평왕의 권위와 귀족의 정치적 타협으로 인해 왕으로 즉위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정황을 보건데 선덕여왕이 비록 전왕 때부터 왕이 되는 교육을 받고 모란꽃 설화와 같은 뛰어난 능력을 보였더라도 여왕이라는 단점으로 인해 즉위 후 신라를 이끌기는 버거웠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선덕여왕의 시대는 전쟁의 시대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2년에 한번꼴로 백제와 주변국과의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 되었고, 백성의 힘든 삶은 선덕여왕의 숙제였을 것이다. 불교를 신봉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여신적인 존재로 비추고, 옥문곡에 침입한 백제 병사를 예언으로 물리쳤다는 설화는 여성으로서 왕권을 장악함에 있어 확실한 능력이 있음을 알린 처세술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29대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의 설화에도 적용된다. 선덕여왕의 조카 김춘추와 문희를 이어준 보희설화 또는 문희매몽 설화는 그저 재미로만 읽을 일은 아니다. 여자의 오줌이 세상에 넘쳐났다는 것은 왕성한 생산력을 의미하며 꿈을 산 후 신분의 변화가 오고 후에 위대한 자손의 어미가 됨을 시사한다. 이는 무엇인가. 남녀가 정을 통해 태어난 왕자의 출생을 합리화하고 신성화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전략인 것이다. 결국 선덕여왕이 즉위한 것과 선덕여왕의 정치를 배경으로 후대에 이어지는 왕권은 하늘에서부터 정해진 운명이며 신성화된 그러한 왕권임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었음을 짐작한다.
<선덕여왕>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등의 순수한 역사 기록과 설화만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타 소설에서 읽었던 미실이란 여인의 등장과 화랑의 이야기등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라면 다소 건조한 문체가 어렵게 느낄 수도 있음이다. 이것은 역사를 재미로 풀이하기 보다는 좀더 정확한 사실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 시대의 부족한 역사적 자료는 남아있는 사찰과 탑등을 통해서 역추적 한다.
분황사, 영묘사, 황룡사 구층탑, 첨성대 등을 거론하고 철저한 고증을 통해 여왕으로써의 권위가 당연함을 주장하고 오랜 전쟁으로 인해 황량한 백성들에게 슬기롭고 지혜로움을 가진 여왕임을 상징하는데 충분히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한가지 역사의 결과만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감에 따라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주변국과의 전쟁, 정치적 타협, 신라 내부 세력의 주장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어서 <선덕여왕>과 당시 신라시대의 시대적 배경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으며, 사찰과 유물, 그리고 유적등의 사진을 함께 올려놓아 독자로 하여금 최대한 사실적인 근거를 알게해주는 배려를 엿볼 수 있다.
비공식적인 남편인 음갈문왕의 존재가 숨겨지고,
당시 당나라의 화풍상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리지 않았음에도 향기가 없는 모란을 돋보이게 하는 점,
선덕왕 이전에 아들이 없으면 사위가 왕위를 물려 받을 수 있는 시대적 상황,
옥문곡 전투등에서 발휘된 여왕의 예언적 능력,
이 모든 설화와 역사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어떤 결론을 내리게 할까.
권력을 향한 무수한 암투와 경쟁속에서 그녀가 택한 길은 무엇을 위함이었을까.
사실 이 점을 제일 궁금하면서도 딱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향기나는 여왕 선덕-선덕여왕> 이 책에서는 여인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고난과 아픔을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던 상황, 당시의 시간에서 최선의 방법, 최고의 선택임이 아니었을까.
안팎의 혼란스러움 속에서 택했던 모든 정치적 수단과 입지를 굳혀 나가는 그녀의 선택은 현대의 눈으로도 감탄 할만한 능력과 배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역사로만 판단해야 함은 이 책이 주는 결과라 하겠다. 제대로 된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것이 후대의 의무라는 결론을 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