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꼬꼬란다, 아빠가 말했다.
우리 마리아에게 주는 어린 노예지.
엘리사베트 아줌마가 준 선물은 작은 채찍이었다.
채찍은 내 핸드백에 넣기에는 좀 컸다.
아쉽다.(본문 중에서)
 
19세기에 살고 있는 소녀 마리아의 일기다.
당시 여인들 공통점은 사회적인 문제를 생각할 필요도 없고, 사회적 이슈를 들여다 볼 이유도 없으며 그녀들의 가장 큰 특징인 백치미를 가꾸기만 하면 된다. 그녀들은 그저 아름다움과 고상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예'를 잘 부려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녀의 조부모가 그랬고, 그녀의 부모가 그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랬듯이 '노예'라는 것은 단지 나의 소유물일 뿐이다.
주인의 장난감이다.
'얼마나 좋아?. 애완견과는 다르게 주인이 시키면 바로 결과를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개보다는 말을 알아듣는다는 점이 얼마나 기특한지.'

19세기 특권층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마리아는 14살 생일 기념으로 노예를 선물 받는다. 노예를 부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손가락만 까닥하면 된다. 모든 것은 노예인 꼬꼬가 알아서 한다. 마리아는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고상하게 부인들과 멍청한 대화를 나누면 끝이다. 14살이고 다 컸기 때문에 가슴이 더 나와야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이다. 몸매가 만족 할만큼 예뻐지고 성숙해져야한다. 그래야 좋아하는 루까스와 결혼할 수도 있다. 늦잠자고 치장하고 고상하게 인형처럼 살아가면 된다.

주인의 발밑에 엎드린 노예들은 또다른 인형이다. 시키는 모든 것을 다해도 매를 맞는 인형. 똑바로 서있지 않아도 맞는다. 남자 주인의 밤시중을 들어야하고 하라는 대로 했다고 여주인한테 맞아야한다. 왜? 노예니까. 마리아는 잘못됨을 모른다. 이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생각하는 이도 없으니까. 마리아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잔인하다는 것도 모른다. 그저 소녀의 눈으로 담담한 일기를 적어나갔다

200년전에 발견된 악녀 일기라는 제목과 우리 시대의 팜프파탈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해야할까? 자신의 목적과 목표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것을 위해 도덕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악녀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그에 비하면 마리아를 두고 팜프파탈 운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만들어진 일상인데 문제라고 하는 자체가 마리아에게는 문제일거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독자는 한단계 더 나아가서 생각을 해야 하고 현대의 관점으로 당시 즉 19세기를 바라보아야 한다. 똑같은 인간임에도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배를 하는 계급과 지배를 당하는 계급을 생각해야 한다. '노예'이기 때문에 그저 숨쉬는 물건 취급을 받아야 했다는 것을 떠올려야만 한다.

마리아는 대놓고 악행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마리아를 동조해서 함께 하는 이도 없다. 오히려 마리아의 순수함이 시대의 역겨움을 더욱 역겹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하나의 역겨움은 특권층의 다른 무리들이다. 여자 흑인 노예를 성적 유희물로 다루는 아버지의 모습과 그것을 모른척 하는 것이 오히려 귀족부인들의 고상함이라 여기면서 뒤로는 노예에게 강자로써 횡포를 부리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특권층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부류이다. 현대의 특권층과 노예는 누구일까? 가진 자와 없는자, 힘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자, 이것이 현대의 노예판 아닐까.
유시민과 고병권(수유+너머)가 추천했다는 이유를 여기에서 동감한다. 

단지 타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시하게 되는 외국인근로자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면서 상위계층 직업을 향한 부모의 마음, 모든 아이들은 밝게 커야한다고 말하면서 편부, 편모 가정의 아이들을 비딱하게 바라보는 시선..
나의 잣대를 세워놓고 그들을 들었다놨다하는 것이 노예상인이 아니고 무엇일까. 흐르는 역사 속에서 살고 있는 나는 노예를 부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아한 고상함을 떨면서 뒤로 강자의 모습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똑똑히 안다.
역사란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을.
역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가르쳐 준다.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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