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전에 책을 덩치로 사들였다.
시작은 '나폴리 4부작'이었다.
4부작의 첫 권인 '나의 눈부신 친구'를 들이면서,
명절에 이어 읽을 책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4권을 차례로 주문했다.
관심을 가졌던 여러권을 끼워서 주문하는 식으로 말이다.
악당 7년
김의성.지승호 지음 /
안나푸르나 / 2018년 2월
책탑 중 처음 관심을 갖고 들춰본 것은,
지승호와 김의성의 인터뷰집인 '악당7년'이었다.
프롤로그를 보니 이런 말이 나온다.
두서없던 이야기들을 묘하게 말이 되게 연결한 그 솜씨에 또 놀랐다.말이란 것은 것은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고, 오해의 소지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능한 한 손대지 않고 날것 그대로의 인터뷰를 옮기려 한 지승호의 의도를 짐작하기에, 부끄럽고 두렵지만 가감 없이 그대로 책으로내는 것에 동의했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가능한 한 손대지 않고 날것 그대로의' 라는 구절이 와닿았다.
이게 '지승호의 의도'이기도 할테지만,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이기도 할것이다.
인터뷰 집을 읽는 이유는 이렇지만 소설은 어떠할까?
내 고민을 엿보기라도 한듯,
'한길사' 홈페이지에 가보니 '엘레나 페란테'와의 서면 인터뷰가 있다.
일부분을 발췌해 왔다.
친구와 연인, 가족 사이에 욕설이 오가고, 폭력, 섹스, 불륜 장면도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대목은 ‘막장 드라마’ 같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시시콜콜 쓴 것은 어떤 의도가 있었나요?
저는 독자들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제가 알고 있는 기술을 총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 속에 들어오면 독자들은 잘 만든 대중소설에서 나올 법하다고 기대했던 예상이 모두 빗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저는 ‘진짜’에 관심이 있지 진짜와 유사한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독자들을 잠들게 하지 않고 소설가로서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들을 존경합니다. 소설이 정말로 생명력을 잃는 것은 독자가 생명력을 잃을 때입니다.
나는 소설에 관해선,
'저는 ‘진짜’에 관심이 있지 진짜와 유사한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라는 부분에 동의하기 힘든데,
소설은 이 부분을 '그럴듯한' 한 단어로 축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생하고, 진짜 같고, 그럴듯하면 충분한 것이지,
그게 꼭 '진짜'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만약 '진짜'라면 우린 그걸 소설이라고 부를 필요 없이,
자서전 내지는 전기라고 부르면 될테니까 말이다.
이 부분이 이 책이 불편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이 책이 열광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떡떡 숨이 막히고 욕지기가 나서 읽기가 버거웠는데,
그러면서 한편으론 이 책을 놓기가 힘들었는데,
진짜로 일어났던 일이라면,
누군가는 이런 삶을 진짜로 살았다면,
얼마나 지난했을까?
어쩜 이것이 엘레나 페란테가 전면에 자신을 내세울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암튼 나는 명절 연휴를 할애해가며 '나폴리4부작'을 읽었다.
1권 '나의 누부신 친구'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불편했고,
3권까지 읽기를 마친 지금 숨고르기가 필요할 것 같다.
번역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아님 편집의 실수라고 해야 할까,
깔끔하지는 않다.
큰 틀에서의 번역은 완벽하지만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사사로운 실수들 말이다.
내 어머니의 아버지는 건축 공사를 하다가 건물 아래로 떨어져 죽었고
알프레도 펠루소 아저씨의 아버지는...(1권, 33쪽)
아무래도 아랫줄과의 운율을 맞추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어머니의 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이다.
우리 가족은 3층, 그녀(멜리나)는 4층에 살았다.(1권, 41쪽 8째줄)
처음에는 멜리나네 집의 위층인 건물 4층 꼭대기 층에 살던 도나토 사라토레 아저씨(1권, 41쪽 24째줄)
멜리나가 4층에 살았으니,
멜리나네 집 위층이면 5층이 되어야하고,
4층건물의 꼭대기가 옥상을 이르는 것이라면 옥탑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런 번역이라면 혼란스럽다.
1958년 12월 31일, 그 다음장에서 다시 한번 확인 하면서 섣달 그믐날 밤이란 표현을 하는데,(113쪽,115쪽)
이 또한 적당한 표현은 아니다.
12월 31일은 양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날을 얘기하지만,
섣달 그믐날이란 표현은 음력이니까 말이다.
아직 4권을 남겨두고 있지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란 제목만 보고 4권의 내용을 짐작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짐작대로 펼쳐진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것도 같다.
여러 사람들이 열광을 한 코드가 뭔지 알겠지만,
내가 몰입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코드이기도 하다.
이태리 역사를 알면 좀 달라질 수도 있으려나?
개인적으로 엘리나 페란테 보다는 켄 폴릿의 '20세기 3부작'을 추천하고 싶다.
훨씬 우아하고 깊이도 있으며,
무엇보다 재밌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