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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평점 :
이 책은 뭐랄까, 지극히 트럼프스러운 책이다.
책 뒤 '글로브앤드메일'의 추천의 글처럼,
'트럼프'를 언급조차 하지 않지만,
지극히 트럼프스러운 발상들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트럼프를 뽑았으며,
어떤 사람들이 그런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엔 이 책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글이 쉽게 잘 쓰여져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기 보다는,
이 책에 나오는 여러 명의 추천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외국의 추천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김훈, 홍기빈, 신기주, 정혜윤, 김민섭 등,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사람들까지 이 책에 추천이라니,
잘은 모르지만, 그들의 사회적 정치적 색깔이 다를텐데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런 점을 고려하다보니 아이러니컬하다 싶었다.
트럼프스러움을 알기 전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열을 올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힐빌리라는 빈민가 출신의 성공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을 찬찬히 읽다보면 아직도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이 왜 이 책에 열을 올리는지 짐작을 할 수 있겠고,
그러고 나니 거품을 걷어내고 과장되지 않게 이 책을 바라볼 수 있겠다.
이 책은 그러니까 J.D.밴스의 성공담을 그린 자서전이나 회고록으로 쓰여질게 아니라,
공부법에 관한 책이나 예일 로스쿨 입학에 관한 비법서 정도로 쓰여졌어야 했다, ㅋ~.
힐빌리라는 시골마을 출신의 그가 예일 로스쿨을 다녔다는 것이 '개천에서 용난' 일은 맞지만,
예일 로스쿨을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러,
그리하여 그가 실리콘밸리에서 굴지의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또한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아직 그가 정점을 찍었다기보다는 '더 나아지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고,
적어도 이런 자전적인 얘기를 할 수 있기 위해선,
자신도 자식을 낳아 보고 키워보고,
회사도 최근 1, 2년이 아니라 어느 정도 운영해 본 후에야,
뭐라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현실의 그는 올해 30대 초반의, 로스쿨을 졸업한지 얼마 안된 애송이일 뿐이고,
지금 신분 상승하였다고는 하나,
힐벌리를, 자신의 부모를, 부정하고 싶어 하는 현실이고,
그렇다면 훌훌 떨어버려야 하는데,
아직도 악몽에 시달린다.
아랫 부분은 좀 번역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ㆍㆍㆍㆍㆍㆍ나는 해병대에서 익힌 불요불굴의 의지가 몸에 배어 있었다. 강의를 득고, 과제를 하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늦지않게 집에 돌아와 자정이 훌쩍 지나도록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했다.(296쪽)
'늦지않게 집에 돌아왔고, 자정이 훌쩍 지나도록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도'정도가 되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엄밀하게 얘기하면,
이 사람은 조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고 감사하기는 하지만,
'내가 알아야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 제목처럼 해병으로 복무하면서 많은 것을 터득하게 된다.
이 사람이 계속 힐벌리의 조부모님 밑에 있었다면, 어려운 상황의 악순환은 자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시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해병으로 복무하면서 나는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얻은 게 아니라 계획을 짜고 실행할 능력을 갖추게 됐다.(297쪽)
라고 하고 있다.
오바마 경제 정책이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건 명확하나, 그 친구는 전혀 그들 축에 들지 않는다. 그의 인생은 오롯이 본인의 선택으로 이뤄낸 것이었으므로, 더 나은 선택을 해야만 인생도 나아질 것이다. 더 나은 선택을 하려거든 우선 대답하기 괴로운 질문을 퍼붓는 환경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백인 노동자들 사이에는 개인의 문제를 사회나 정부 탓으로 돌리는 움직임이 일고 있고,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도 날로 늘고 있다.
현대 보수파의 미사여구가 그들의 최대 유권자가 겪고 있는 실질적 문제들을 파고들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보수파 세력은 내 또래 청년층에게 취업을 독려하는 대신 사회적 고립을 점진적으로 조장하므로써 그들의 포부를 짓밟았다.
내 주변에도 건실한 어른으로 성장한 친구들도 있고, 미들타운에 감도는 끔찍한 유혹의 희생자가 되어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되거나 약물에 중독되거나 교도소에 수감된 친구들도 있다. 본인의 삶에 대한 기대치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누구는 성공한 어른이 됐고, 누구는 실패자가 됐다. 그런데도 낙오자가 된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정부의 실패다'라고 외치는 우파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는 형국이다.(318쪽)
이런 글들을 읽으면 얼핏,
'이런 사람들도 있으나 자신은 아니다' 라고 얘기하는 듯 여겨지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그가 위치적으로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지라도,
심정적으로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겉도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가지 더 놀라웠던 사실은,
인맥이라고는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는 그가 '인맥'의 중요성을 강하게 언급한다는 점이었다.
우리 주변의 인맥이 실질적인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맥이 있어야 적절한 사람과 연이 닿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중요한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다. 인맥이 없으면 모든 걸 혼자서 해내야 한다.ㆍㆍㆍㆍㆍㆍ실력보다 운이 먼저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확실히 그 둘보다 적절한 인맥이 더 낫다.(345~347쪽)
또한 힐빌리를 탈출하고 극복했으며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그가 아직도 과거의 잔상에 머무는 듯한 이런 구절은 좀 놀라웠다.
좀처럼 보기 힘든 할보의 무너지는 모습에서, 나는 힐빌리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잘 풀리건 안 풀리건 간에 인생에서 개인의 탓은 어느 정도인가? 대를 거쳐 결점을 물려준 문화와 가족, 자식을 망쳐버린 부모의 탓은 어느 정도인가? 엄마의 인생에서 엄마의 잘못은 얼마나 되는가? 어디까지 비난을 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공감을 해야 하는가?
각자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았다. 엄마의 잘못된 선택이 할보 잘못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말에 지미 삼촌은 순간 발끈했다. "아버지가 베브를 망친 건 아니지. 베브한테 무슨 일이 생겼든 그건 빌어먹을 자기 잘못이라고."(371쪽)
이 구절 바로 밑에 자신의 견해는 반반이라고 밝힌다.
자신의 삶엔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지라도 엄마에게 피해를 준 건 분명하다고.
그는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그런 공공 정책이나 획기적인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381쪽)
힐빌리나 부모와의 연락을 끊은 것을 놓고는 이렇게 자신을 정당화한다.
브라이언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 부모와 연락을 끊는 건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다. 우리는 한순간도 우리 부모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그들이 변하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은 적도 없다. 오히려 경험으로 터득한 지혜나 법적 조치 때문에 자기보호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403쪽)
J.D.밴스, 본인 스스로도 혼란스러워하고,
아직도 악몽에 시달린다는데,
우리는 그를 너무 일찍 성공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시기상조라는 말을 어떤 때 쓰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시기상조란 말이 자꾸만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힐빌리'는 '노래'라기보다 '애가'나 '비가'가 되었어야 한다.
아무리 성공을 하였고 그리하여 실리콘밸리 굴지의 투자회사를 운영할 지라도,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힐빌리일 것이고,
그에게는 그런 힐빌리가 영원히 '애가'나 '비가'로 기억될 것이니까 말이다.
혹, 나의 이런 평가를 두고 좀 야박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J.D.밴스보다도 나이를 좀 더 먹은 지금까지도 나름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심하게 밝혀보지만 내 경우엔,
어떤 도움의 손길보다는,
심리적인 위안이랄까,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묵묵히 그곳에서 지켜봐주는 지지가 큰 도움이 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