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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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어서 그런 건지,

그림들 속에 등장하는 어여쁜 여성이 실제 그의 아내처럼 느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이 등장하거나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건물이나 풍경만 등장하는 그림도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란걸 알겠다.

그림들이 쭈욱 하나로 이어진다.

 

글은 17명의 다른 작가가 써서 그런 것이겠지만,

얘기가 하나의 주제나 기획 의도로 모이지 않는 것이 중구난방이다.

17명의 작가가 각자 다른 얘기를 하는데,

작품의 완성도도 다 다르고 하다보니,

시작하자 마자 맥이 빠져 버린다.

 

내가 아는 작가들의 작품은,

(실제론 그렇지 않겠지만,)

과거 어느 작품 속에서 봤던 것만 같다.

그리고 단편소설이야말로 열린 결말이 가능하다고 하고,

그게 단편소설의 묘미라고들 하지만,

무슨 얘길 어떻게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장편소설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장르소설 작가들이 대부분인데,

이걸 어떤 부류의 장르소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속내를 들여다본것인지,

이 책의 기획자인 로런스 블록은 '서문'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이 단편소설들은 장르가 다양하거나 혹은 아예 장르가 없다. 어떤 이야기는 작가가 선택한 그림과 맞떨어져 캔버스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것만 같다. 또 어떤 이야기는 그림이 어떤 식으로 계기가 되어, 캔버스에 모호한 각도로 맞고 튀어나온다. 내가 아는 한 이 소설들에는 단 두 가지 공통분모가 있을 뿐이다.- 작가들 개개인의 걸출함, 그리고 그들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11쪽)

라고 하고 있다.

작가들이 걸출하다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작가들이 호퍼의 그림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는 이 책을 꼼꼼이 다 읽은 후에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아는 작가들의 경우,

그림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다고 하기에는,

작가들의 풍이랄까, 작가의 개성이 너무 두드러진채로 나타나서,

그림과, 또는 이 책의 기획의도와 하나로 어우러지지 못하는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니콜라스 크리스토퍼'의 '바닷가 방'이었다.

그림도 알라디너의 서재 대문 그림으로 여러번 보았어서 친숙했고,

작가도 생소한 사람이라서 작풍이나 문체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던 터라 신선했다.

난 그동안 이 그림을 불때마다 바닷가 방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선상위의 방 정도로 생각했었다.

이 작품이 만들어낸 줄거리도 기발하다.

 

마이클 코널리의 '밤을 새우는 사람들'같은 경우는,

'해리 보슈'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어조도 에드워드 호퍼랑 잘 어울린다.

실제로 마이클 코널리의 '블랙 에코'에도 이 그림이 등장했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일까, 얘기가 그림이랑 가장 잘 어울린것 같기는 했지만,

이 부분이 무슨 얘기인지 몰라 좀 애먹었다.

 

그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이 감시 업무를 하러 왔다. 옷을 껴입긴 했지만 지퍼로 연결하는 얇은 안감을 댄 LA의 트렌치코트가 시카고의 겨울 날씨로부터 시베리아허스키를 따뜻하게 지켜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시베리아허스키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런 문장이 이어지는데,

금세 해리 보슈의 우울함에 전염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슈는 틀에 박힌 이야기 따위에 의미를 두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문득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일을 하기에 난 너무 늙었어.(135쪽)

라든지,

그녀가 볼 수 없는데도 보슈는 고개를 끄덕였다.(148쪽)

위에서 시베리아허스키는 고독과 사랑에 민감한 해리보슈를 상징하는 매개이겠지만,

시베리아허스키는 추운 날씨에 잘 적응하는 개라고 알고 있었던 터라,

금방 이입이 안 됐다.

하지만 저 짧은 문장들로 알 수 있듯이,

선천적으로 고독하지만, ㅋ~,

타인을 향해 적당한 온기를 내어줄 수 있는 남자.

그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는걸 아는 남자여서,

해리 보슈가 멋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실린 작품이 로런스 블록의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인데 이 또한 로런스 블록 스타일이다.

하지만 좋았다.

 

이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기획 의도는 돋보이지만, (아무렴, 로런스 블록 아니겠나?)

하나로 묶이는 응집력 따위는 없었다.

작품의 수준도 일관되지 않고 천차만별인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애정하는 작가들의 따끈따끈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해야 겠다.

 

다 읽고 띠지를 보니,

로런스 블록의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이 2017년 에드거상 수상작이다.

'역쉬~!'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전반적으로 고독하고 쓸쓸한 정서를 담은 것이 이 가을에 읽기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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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9-15 16:58   좋아요 0 | URL
너무 기대하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적극 추천해 주신 글만 날름 읽을까요? ㅋㅋㅋ

한 번 읽어 보려고 했었는데 고민이네요.

2017-09-15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7-09-15 18:43   좋아요 0 | URL
그래도 그 어색함을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그래서 표지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는지도...

양철나무꾼 2017-09-16 09:22   좋아요 0 | URL
낭만인생 님, 댓글 보고 맘이 좀 놓입니다.
저는 한때 장르소설 매니아여서 이쪽으로 두루 섭렵해서 그런 거고,
다른 분들은 좋게 읽을 수도 있을텐데 했거든요.
일단 라인업만 봐도 빠방 하잖아요.
밑에 hnine님 댓글도 그렇고 어찌되었건 읽고 싶어지신다니 다행입니다~^^

hnine 2017-09-16 07:59   좋아요 0 | URL
예, 소문난 잔치 맞는 것 같아요. 소문에 부응하는 잔치였다면 좋았을텐데.
저도 얼마전에 서점 가서 이 책 거의 살뻔 했는데 마침 표지에 뭔가 끈적한게 묻어있어서 서점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그거 한권 밖에 없다고 해서 구입을 보류했었죠.
그런데 양철나무꾼님 리뷰 읽으니, 읽고 싶지 않다기 보다 오히려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건 무슨 청개구리 심사인지 모르겠어요 ^^ 저 시베리아허스키 대목은 정말 양철나무꾼님께서 해석을 해주셨으니 이해가 되었지만 저 같으면 모르고 그냥 넘어갔을거예요.

양철나무꾼 2017-09-16 09:28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 약속이 있다면 서점에서 만나게 되지만,
일부러 서점에 책을 사러가진 않게 돼요.
그리고 서점에선 둘러보고 메모만 했다가 집에 와서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게 돼요.
그 이유가 다른건 없고 다른 사람들이 들춰보고 손 탄 책을 구입하긴 싫더라구요.
저도 그만큼 책을 깨끗이 보는 편이구요~^^

암튼 다행이예요.
다들 읽어보고 싶다고 하셔서~^^
이래서 소신 리뷰를 쓰게 되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