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사촌여동생이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사촌여동생의 딸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데 외롭다고 했단다.
사는데 치여 아들을 어렸을때부터 어린이집과 각종 학원으로 돌린 전적이 화려한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분명 호강에 겨워 요강에 밥 말아먹는다고 했겠지만, ㅋ~.
완전 애정하는 조카의 일이라,
요즘은 애들이 조숙해서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며 신경을 써주라는 말로 위로했다.
어쩌면 조카가 진짜 외롭다고 느꼈을 수도 있지만,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의 거울이라고,
어른들이 '외로워, 외로워~'하는 걸 듣고 흉내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을 뿐이고.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3월
책을 들이기는 하지만, 읽다 보면 마음이 아플까봐 한쪽으로 접어두는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렇지 않을까 한참 망설였는데,
읽다보니 웬걸...'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하고 등허리를 쓸어내려주는 느낌이랄까,
무한위로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열한 꼭지,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취향 탓이었겠지만,
네번째 꼭지 '나는 아직도 책을 먹는다 _아벨서점 곽현숙 傳'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책에 관한 내용이어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아벨서점 주인장인 곽현숙 님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키운 방식에 크게 감명을 받았던 거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자기이길 원하는 게 있어. 두 살 때 친가에 맡긴 아이를 초등학교 때 데려왔어. 아이 키우면서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지고 어린 아들한테 배운 것도 많아. 젊은 세대도 이해하게 되고, 무엇보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키워지는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 아이 환경이 어떻습니까?' 나는 그 아이가 처한 환경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고 싶었어. 물질이나 먹는 거, 메이커 사 입혀서 그 아이를 혼란스킬 수는 없었지. 외로움을 똑바로 알아야 하고, 스스로 서야 하고, 네가 지킬 건 지켜줘야 한다, 부족한 것이 우리를 키운다고 가르쳤어. 억눌리면 스스로 일어서려는 꿈틀거림이 생기고, 도전하고 발전하게 돼. 하나뿐인 귀한 아들이지만 경제적으로 절제시키고, 책임질 건 철저히 책임져야 하나고 생각했어.(87쪽)
외로움을 알고 스스로 서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가장하고 흉내내는건 좀 그렇지만,
본인이 스스로 느끼는 외로움이라면 나이가 많고 적고, 를 떠나서 존중해 줘야 하는게 아닐까.
사람의 다양한 감정과 마찬가지로,
그 감정 중의 하나인 외로움 또한 귀하고 소중한 감정이다.
사람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바깥으로 확장시키는 감정이어서, 관계를 풍요롭게 한다면,
외로울때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들여다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얼마나 고되면 그렇게 울 수 있냐고?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울어질 수가 있냐고? 그 울음을 누가 들을 수 있다면, 누가 그 저릿저릿한 가슴을 안 만져줄 수 있냐고? 그 울음을 누가 들을 수 있다면, 누가 그 저릿저릿한 가슴을 안 만져줄 수 있냐고? 술의 힘을 빌었곤 뭐를 빌었건 그 울음이 기도지. 내가 그 애한테 그랬어. "너 기도가 뭔지 아니? 거 찐찐하게 우는 게 기도야.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울어질 수가 있냐." 자기 몸을 갖고 이리저리 뒤적여보면서 걸어가는 그 짓이 기도 아니겠어? 눈 하나 얻으려고 수많은 눈을 쳐다보면서 애타게 스킨십 하면서 비적비적 다리에 힘도 없이 비실비실 가지만 진짜 자기를 향해 가는 거야. 균형이 안 잡혀도 하나의 눈은 자기를 보고 가. 비틀거리며 가든 똑바로 가든 움직이는 몸과 눈 속의 나를 향해 가는 게 기도가 아니겠어?
'애 썼어'하고 그냥 봐주는 눈, 그거 하나만 마주쳐도 비가 내려지고 영양분이 섭취돼. 그게 각색해서 되는 거겠어? 그냥 그래지는 거 아니겠어? 대상을 향해 걸어가지만 자기 안에서 뭔가 자라가고 눈을 얻어가는 과정이지. 밖을 향해 걸어가지만 안에서 큰 작용이 일어나. 밖에서 사건을 불러일으키고 아픔을 일으키고 그렇게 돌고 돌고 겪어내며 앞으로 걸어가게 하는 거야. 다 자기 안에 씨앗으로 인해서 일어나.(94쪽)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외로움에 몸서리쳐본 사람만이,
타인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이 사람을 도와야지 사람이 책에 매이면 안 된다는 것도 현실과 부딪히면서 깨닫고. 이 세상에서 행동하게 하지 못하는 거라면 사상이 아니라는 것도, 무엇보다 인간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도 절실하게 느꼈어. 책은 필요할 때 만나는 친구가 돼야 해. 그렇게 친구를 만나면 얼마나 재밌어?
ㆍㆍㆍㆍㆍㆍ책 속에서 만난 일이 현실에 있고, 현실에 있는 일을 책 속에서 만나. 책이 생활과 맞물리지 않으면 죽은 책이야. 소화도 안 된 책을 먹고 휘둘리고 살면 안 돼. 자기도 행하지 못하는 사상이 무슨 사상이겠어? 사람이 책을 먹어야지 책이 사람을 먹으면 곤란하지. 자기도 행하지 못하는 수많은 잣대를 남한테만 들이대게 만드는 생각만의 지식이 되어선 안 돼. (89쪽)
라고 하는데,
이건 책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다.
난 벌써 여러 번 책 뿐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내가 책을 찾고 고르는게 아니라,
책이 나에게 다가온달까, 간택되어지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그건 내 지식의 소박함 때문이 아니라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ㅋ~.
알아먹을 수 있는 말로 쉽게 쓰여진 책이 좋고,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그건 내가 읽어온 책들이 그렇고,
책과 연결된 삶이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수행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잣대를 그대들에게 들이댈 일이 결코 없으니,
편하게 와 머무시라.
쉽게, 편하게 막대해 주어도 좋겠다, ㅋ~.
책을 꾸준히 읽다보면 문리가 트이듯 어느 순간 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고,
경험이 축척되면 미립이 나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맛에 오늘도 책을 읽고,
좋은 경험을 생활화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사람 속에서 멀미를 해. 파장이 달라서 그런가, 사람이라는 게 대개 자기 기준으로 보잖아. 밀어내거나 당기거나 하는데, 말로 다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들과 닿는 선이 미식거려서 웅크리고 책방에서 앉아 있기나 하고, 자기 틀을 많이 벗지 못하고 멀미를 하고 살드라고. 머리가 너무 까불면 재주를 부리려고 하니까 못 쓰는 몸이라고 하거든. 몸이 자유로워지려면 머리가 까불면 안 돼. 글을 본다는 것은 자기를 읽기를 읽는 연습을 하는 거거든. (100쪽)
어찌되었건 이 책을 통틀어 이 구절을 새기며,
그렇지만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의 거울이다'로 끝맺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알라딘 서재 책마실을 다니다 보니 이런 책이 눈에 띈다.
혼자를 기르는 법 1
김정연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제목부터 재미있다.
아이는 키우면 어른이 되는데,
혼자는 키우면 외로움에 단련되려나.
아벨서점 주인장인 곽현숙 님 버전으로 '외로움은 힘이 세다'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