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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내 주된 관심사는 물건을 버리고 비우고 그리하여 소박하고 단출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혹여 다른 사람들도 그럴지 모르겠는데,
난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 못 하는 부류이다.
생명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사물에까지 의미부여하여 곧잘 의인화해버리는데, 중증이다.
기억력도 마찬가지이다.
한때는 기억하지 못 하는걸 위악으로 생각할 정도로 사소한 것에까지 의미를 부여하고 붙들고 살았다.
생각해보면 그건 수집이라는 열정적인 것과는 좀 다른,
이 책의 선생님 말대로,
"나는 잘 버리질 못하는 편이에요."
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런데 나를 돌이켜보자니,
물건을 향하여 연연해하지만,
정작 사람을 향하여선 좀 모질기도 한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선생님의 집사람처럼,
뭘 깊이 생각한다던가, 남을 배려한다던가 하는 게 없는 정도까진 아니어도,
좋은 것과 중간까지는 좋지만, 싫은 것은 명확하게 싫다.
그런 내가 이 책을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읽었다고 하면,
둘의 사랑이 아름다워서...눈물이 난다, 따위의 상상을 하실 수도 있겠지만,
삶의 부질없음, 나이듦의 허망함 때문이었다.
난 이 책을 좀 답답하게 읽었는데,
선생님이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아내의 문제로만 돌리려 하고,
쓰키코도 마찬가지로 애인의 문제로 돌리는데,
어찌 보면 서로의 삶에 간여하지 않는 쿨한 관계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 내 삶에서 벌어진다면 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때,
분명히해야 할 한가지가 있는데,
상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흠뻑 담굼질 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서 쿨 함을 가장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건 쉽지 않다.
얼마간 걷다가 쉬면서 꿀에 절인 레몬을 두 조각씩 먹었습니다. 저는 신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산에 갈 땐 레몬 꿀 절임이 제일이라고 아내가 화를 내진 않았겠지요. 하지만 분노라는 것은 미묘하게 쌓이고, 작은 파도가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그렇게 쌓인 분노가 살면서 뜻밖의 장소에서 터질지도 모르는 거지요. 결혼 생활이란 그런 거죠, 그럼요.(69쪽)
이 책의 선생님과 쓰키코는 선생님과 제자 사이인데,
만났을때 쓰키코를 향하여 서른 여덟?- 아니, 일곱이예요 하는 걸 보면,
20여년 후에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둘은 만화 '심야식당'에 나올 것 같은 주점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데,
따로 술을 시키고,
따로 안주를 시키고,
가끔 선문답 같은 대화를 나누고,
각자 따로 계산을 하고,
각자의 집으로 간다.
가까스로 증상이 가라앉아 정상으로 돌아온 아내에게 한소리 했습니다. 오늘 하루만으로도 자신이 얼마나 남들에게 못할 짓을 했는지, 생각 좀 해 봐. 아마도 득의 양양하게 설교를 했겠지요. 학생들에게 하듯이. 아내는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더군요. 내 말에 일일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죄송해요, 하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마지막으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네요"하고 아내가 진진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폐 같은 건 안 끼쳐요. 당신이 폐를 끼친 거지. 자기 자신의 일을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확대시키지 말아요."나는 야멸차게 대답했죠.(73쪽)
선생님이 쓰키코에게 아내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이다.
선생님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삶에 깊숙이 관여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어쩜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일종의 관조처럼 보여지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무덤덤한 쓰키코가 아니었으면, 관계 맺고 발전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오마치 상은 쿨 하네, 하고 친구가 말한 적이 있다. 그 사람, 나한테 몇 번 상담 전화를 걸어 왔어. 쓰키코가 정말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하더라구. 어째서 오마치 상, 그 사람한테 전화 안 한 거야? 그 사람, 기다리던데ㆍㆍㆍㆍㆍㆍ.
친구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왜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친구에게 상담을 한 걸까?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친구는 한숨을 쉬며, 그렇지만, 하고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사랑하고 있을 때는, 불안한거잖아. 오마치 상은 안 그래?(84쪽)
나는 책 속의 문장들을 읽는 것인데도 숨을 고를 수 없이 힘이 드는데,
그들은 무덤덤하게 그렇게 관계를 맺고 발전을 하니 말이다.
너무나 간단해서 이대로 평생 선생님과 얼굴을 마주치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평생 안 만나면 체념도 되겠지.
"기르니까 크는 거야."
ㆍㆍㆍㆍㆍㆍ
"연정이라는 게 그런 거야."
큰 숙모는 말하곤 했다.
소중한 사랑이라면 나무와 마찬가지로 퇴비를 주고 가지를 치고 손질할 것을 명심.
그렇지 않은 연애라면 저강히 내버려 두어 그대로 말라죽게 만들면 안심.(208~209쪽)
이런 구절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 아프다.
관게속에서 해결하려 들지 않고,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해결하려 드는 건 좀 비겁하지 않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랄까, 거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그날 밤엔 둘이서 청주를 한 다섯 홉쯤 마셨다. 술값은 선생님이 치렀다. 다음에 같은 집에서 만나 마셨을 때는 내가 계산을 했다. 세 번째부터는 계산서도 각각, 돈을 내는 것도 각자 하게 되었다. 그후 이 방법이 이어지고 있다. 만남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은 선생님이나 나나 그런 기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주의 취향뿐 아니라 타인과 거리를 두는 법도 닮아 있다. 나이는 삼십 년도 넘게 차이 나지만, 동갑내기 친구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10쪽)
그러고보면 선생님은 타인을 자신의 일정한 경계 안에 들이는 것을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내 서재 제목인 '안전 거리 확보'처럼, 안전 거리만 확보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친구에게 영혼의 찝찌름한 냄새가 같다고 했더니,
그건 같다고 착각하는 것 뿐이지,
영혼의 찝찌름한 냄새 따위는 같을 수가 없다고 했었던게 생각난다.
'선생님의 가방'을 놓고 나름대로 해석할 수가 있을텐데,
난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걸 다 손에 넣고,
바리바리 싸들고 평생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정작 죽을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내겐, 추억이나 과거에 대한 기억 마저, 죽는 순간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그리 커다란 부분이 아니란 말처럼 들렸다.
나는 어떠한가?
언젠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과하게 끌어안고 사는건 아닐까?
나눠주거나 물려줄 수 있는 건 별개로 하고,
순간의 좋았던 추억은 가방 하나에 담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열심히 달려왔고,
때로는 게으를 때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영혼으로 지배하고 기억되는 사람이기보다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좋으니,
마음 속에 기억되어 남는 사람이고 싶다.
간만에 만난, 맨밥에 물 말아 먹는것 같은 그런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