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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는 내가 살게 ㅣ 삶창시선 46
김정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어제였었나, 앉으면 꼬리뼈가 아프다는 비밀 댓글이 달렸었는데,
난 이런 비밀 덧글을 달았다.
이렇게 아프신 곳을 집어서 말씀하실 수 있을 정도라면 스스로 자가치유도 가능하실거에요.
너무 꼿꼿하게 바른 자세로 앉으려하니까 꼬리뼈에 무리가 갈 수도 있고,
꼬리뼈를 지배하는 감각신경의 문제일수도 있는데,
흔히 디스크라고 얘기할때 영향을 받는 요추5번신경이랑 천추1번 신경의 지배영역이거든요.
가장 좋은건 지금도 잘 하고 계시는대로 도너스 방석이용하시고,
50분 책상에 앉아 계셨으면 한번씩 일어나서 움직이셔서 자세를 바꿔주는 것입니다.
앉은 자세에서 움직이기만 해서는 안되고,
일어나 손을 씻으러 다녀오신다던가 커피를 한잔 타 드신다던가 움직이셔야 자세 근육이 재 배열되고 정렬될 수 있답니다.
그런데, 이 모두를 너무 오래 방관하셨다면, 되돌아 가는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 생각하시고,
느긋하게 고울을 잡아보시길~^^
덧글을 이렇게 달았지만,
사실 난 퇴화 기관인 꼬리뼈에서 통증을 느낀다는 그 (또는 그녀)가 부러웠다.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근원적인 명제를 떠올릴 것도 없이,
오래전부터 통증을 느낀다는 것을 살아있다와 동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냥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명징하게 반응한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좋다.
그런데, 이 시집 '국수는 내가 살게'를 쓰신 김정원 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는 시 '까치'를 통하여 이렇게 소회를 밝히고 있다.
뛰놀기는커녕 걸을 기회조차 박탈되어
점점 짧아지다가 어느 날엔가 아예
두 다리마저 없어질지 몰라
퇴화한 꼬리뼈처럼
-'까치' 중 일부-
그렇다고 일부러 꼬리뼈를 가지고 통증을 즐기겠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매 순간 순간 무뎌지지 않고,
내 고통을 느낄 수 있을테니,
타인의 고통에도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을거란 짐작을 얘기하는 거니까 말이다.
정말 되도않는 사람들이 화가라고 하고 다니고,
말도 안되는 시인과 작가가 시를 합네 소설을 합네 난리 블루스를 추지만,
아직까지는 무뎌질 수 없다며 통증을 일깨우는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한다고 생각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받아쓰기
농주 한 주전자 들고
벼논에서 피뽑고 지심 매시는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논둑에 난 흰머리, 삐비꽃 뭉개고 앉아
사발에 막걸리 따르며
깜냥 잘 썼다고 생각한 시를 흡족하게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버지가 펼쳐보시더니
-당최 무신 말인지 모르것다야. 요로케 알기 옹삭한 것이 시다냐?
하셨다
나는 무지하게 민망했지만
염치없이 또 다른 시를 슬그머니 흘렸다
-이런 시답잖은 것도 시다냐? 영락없이 우리 사는 것 맹키구나. 나도 쓰것다야.
아버지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큰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 아찔하게
벌떡 일어나 무릎을 쳤다
먹물 묻은 관념이 아니라, 넥타이 맨 언어와 표현이 아니라
맨발로 흙을 밟고 손에 굳은살 박인 가난한 농사꾼이
'나도 쓰것다'하는, 오지항아리 같은 삶을 받아써야지
향기 나는 암술이 없는 꽃은 생명력이 없듯
땀내 나는 삶이 없는 시에는 자궁이 없구나!
시방 날도 화창한데
논길 따라 돌아오면서
나는 청개구리처럼 울었다
개안개안開眼開眼
내 시 농사는 조족지혈,
늙은 농사꾼의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난 이런 시가 좋다.
이렇게 아픔을 건드리는,
그리하여 알싸한 통증을 느끼게 하지만,
하지만 그 아픔에 무장해제하고,
감싸안고 다독다독 할 수 있게 해주거나,
쿨한듯 어깨 한번 툭치며 소주 한잔 털어넣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은,
이런 시들이 좋은것이다.
'공정한 편애', '구별하기', '호남고속도로 하행선에서' 등 좋은 시가 넘쳐나는데 미처 다 못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