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일주일동안 여름 휴가였다.
쭉 이어서 일주일을 쉬어보는게, 직장생활을 한 이후로 처음인것 같다.
처음엔 설레이고 좋아 죽겠더니 며칠 못가 시큰둥해지고,
어제는 급기야 출근이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던걸 보면 내 안에 워커홀릭이 숨어있나 보다.
올해는 그동안의 연휴나 휴가때와는 약간 달랐는데,
그동안은 휴가가 계획되면 일단 책부터 무더기로 들이고 보았는데, 요번엔 책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 바람에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고, 그리하여 나의 독서 목록은 홀쭉해졌지만,
버리고 비우면 홀가분해진다는 걸 깨달은, 나름 의미있는 휴가였다.
휴가 전엔 동네에 생긴 알라딘 중고 서점의 오프라인 매장을 이용하여,
책을 대대적으로 정리해버릴 야무진 계획에 들뜨고 설레이기까지 했는데,
직접 이용해본 후 내린 결론은,
'명품백들을 그리 사모으면 나중 아쉬울때 팔아먹을 수라도 있다'는 것이었다.
책은 읽고 느낀 바가 있어 어떤 식으로든 삶을 변화시켰을때 의미있는 것이지,
쌓아두면 자리만 차지할뿐 종이가 바래거나 좀 먹어버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하여야 겠다.
2.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의자에 걸터앉으면 생각이 이성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 엉덩이가 닿는 면적이 넓어지면 감성적이 된단다.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난 엄청 감성적이라는데,
실상의 난 책상에 북스탠드를 놓고 바른 자세로 앉아 책을 읽는게 좋다.
나무로 만든 스툴
니시카와 타카아키 지음, 송혜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8월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봤다.
법정스님의 따라쟁이가 아니더라도, 지금의 이 직업이 아니면 하고 싶은 일 목록에 목수가 들어있긴 했다.
목수라고 하면 연장을 가지고 뚝딱거리고 손으로 꼼지락거리는걸 연상하게 되는데,
나무의 결을 고르고 쓰다듬고 윤을 내는,
손때를 입히는 그 과정이 좋은 것이지,
일상에서 쓰는 물건들로 만들어내고 말고는 고려대상이 아닌걸 보면,
책도 그렇고, 목공도 그렇고...나는 나무를 사랑하는 '나무성애자'인지도 모르겠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를 '스툴'이라고 한단다.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순 있지만,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스툴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 책에선 이렇게 표현한다.
부분적으로 나무를 만지는 사람들이 "적당한 긴장감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 느낌을 알아주신다면 정말 좋겠어요. 그렇다고 긴장감이 넘치면 금방 피곤해지지만요."15쪽)
"나무를 지나치게 사랑하면 안 됩니다. 저는 나무를 철저히 소재로만 볼 때가 있어요. 그러니 다른 목공예가들이 거의 하지 않는 페인트칠 같은 것도 해보고 천연 염색(초목염)도 해보는 거죠."
그는 나가타 씨에게서 전수받은 가치관과 셰이커적인 발상을 자신만의 방삭으로 소화해, 이후지 특유의 개성으로 승화해왔다. 그리고 여기에 작품 제작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가치관이 더해졌다. ㆍㆍㆍㆍㆍㆍ이렇게 유연하고 합리적인 가치관을 통해 일반 소비자가 구하기 쉬우면서 일상에서 쓰기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리라.(31쪽)
그러고 보면, 사물이고 사람이고 간에 '과유불급'인 모양이다.
내가 한살한살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 또한, 지나치치 않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책엔 여러 종류의 스툴과 여러명의 스툴을 만드는 목수들이 나오는데,
일본 사람에 의해 기획된 책이라서 그렇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작품이 없다는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기억에 남는 스툴이 없나 돌이켜보았더니,
이병헌이 주인공이었던 영화 '중독'에 나왔던 목마 형태의 것이 한때 갖고 싶었었다.
이 책 속의 누군가는 스툴의 기능적인 면을 부각시켜 '걸터앉아보고 싶어지는 의자'를 만들어보고 싶다는데,
난 '걸터앉아 보고싶은 의자'가 아니라,
목마를 타듯 올라탈 수 있는 그런 형태의 것이 갖고 싶다.
무용지용,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이라고 해야할까?
책 속의 또 다른 누군가는 '심플한 보통 의자.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이지 않은 일상의 도구'를 이상적인 의자로 꼽았다.
디자인을 할 때 늘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은 너무 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짠! 이거 어때, 같은 느낌이 아니라 그것이 놓인 자리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공간에 녹아들어가 자기 주장을 하지 않는것으로요. 그러면서도 보고 있으면 즐거운 것으로."(165쪽)
이런 것들과 더불어 중요한걸 한가지 더 꼽으라면,
장식적이거나 심미적인 기능이 아니라, 안전성이다.
3.
책은 읽으라고 있는 것이지 쌓아두기 위한 것이 아니듯,
의자 또한 앉기 위한 것이지 장식용이나 전시용은 아니다.
심미적인 기능보다는 안전성이 고려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암튼,
책도 쌓아두지 않겠다, 의자도 심미적인 기능보다 안전성을 고려하겠다, 라고 했는데,
그게 자연이고 무위가 아닐까?
그걸 다른 말로 바꾸면, '튼튼하면서 그 공간에 녹어들어간 것'이고 말이다.
더 이상 책을 쌓아두지는 않겠다고 하면서도,
난 오늘도 책마실을 다니고,
이 책이 사고 싶어서 안달을 하고 난리 블루스를 추는 걸 보면,
아직 사람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쓰기의 말들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