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했다는데,
이 말을 내 직업에 맞게 적용시키면 귀는 열고 입은 닫으라 쯤이 될 것 같다.
하루종일을 어르신들과 보대껴 지낸다.
일일이 참견을 하다가는 진이 빠져 버리고,
말을 안하면 힘은 남아 돌겠지만,
관계는 무미건조하다 못해 마른 낙엽처럼 바스러질 것을 아는 지라,
간간히 '그래서?' 내지는 '그렇구나' 하는 추임새를 넣어서 열심히 듣고 있음을 표현한다.
이 곳에 몸 담은지도 여러해째다.
이젠 지역 특성과 지역 주민 특성도 대충 파악이 되었고,
그리하여 웬만한 이들과는 라포가 형성되어 기왕력뿐만 아니라 가족력도 읊어 낼 수 있다.
말 한마디 안 하고도 다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상대방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수단이 말 뿐은 아니다.
말을 안 한다고 하여 공감과 소통을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워지거나 왜곡될 수는 있는 것이다.
흔히 말 외에 보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온 몸과 마음, 얼굴 표정이나 눈빛, 손짓과 걸음걸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 영어로 atmosphere라고 하는 것까지도 한데 어우러져 공감과 소통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인들이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속이 아파서 암것도 못 먹고 한잠도 못잤다. 한방에 낫게 좀 해주시오."
할머니의 핏발 선 눈이 지난 밤에 잠을 못 주무셔서인가, 아니면 속의 열 때문인가 눈을 꿈벅거리며 고민하는데,
이젠 앞섶을 풀어헤치며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는 시늉을 하신다.
"근데 말이오, 내 묏자리 떼어먹고 도망간 놈들은 어디가서 잡아야 하오?"
"ㆍㆍㆍㆍㆍㆍ엄마, 내가 그걸 어찌 알어. 경찰서 가서 물어봐야지!"
라고 하자, 커튼 너머에 있던 다른 분들이 한마디씩 거드신다.
"그 할매ㆍㆍㆍㆍㆍㆍ포교원이란데 가서 장례토탈인가 뭔가에 돈 냈는데, 돈만 받아먹고 날랐다더라."
"그래, 왜 약장사 안 있나?"
"그래? 그런 걸로 날 찾아오면 모하나?
엄마 손주사위가 변호산가 뭐 그런거라며?
거기다가 전화하면 되겠네~!"
세상 사람들과 좀더 가깝게 어울리는 공감과 소통의 수단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소외시키고 단절을 불러오는 것이 인터넷 발달이 가져오는 폰과 컴이 아닌가 싶다.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 톡도 그렇고,
대형포털에 글을 남기고 댓글과 덧글을 남기는 행위들도 인터넷 발달이 가져온 스마트한 변화이지만,
빠른 전달 속도만큼이나 전달하려는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는지는 모르겠다.
더구나 넷상에서 귀는 열고 입은 닫는 행위라는게,
내 글을 줄이고 다른 이들의 글의 이면과 여백을 읽으려고 애쓰는 것인데,
내 경우 글을 줄일수록 응축의 묘를 살리게 되는게 아니라,
짧으면 짧을수록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더라는~ㅠ.ㅠ
말과 글은 상대와 공감과 소통을 하기 위하여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점은 같지만,
말은 말 뿐 아니라 말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는 공감각이 같이 작용하는 반면,
글은 시각적 자극만이 평면적이고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서 그런 것 같다.
A라는 친구가 있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모든 의학 상담과 자문을 나에게 구하는데,
그 범위가 사돈의 팔촌은 물론,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 이미 죽어 땅에 묻힌 조상 신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제 분야에선 나름 잘 나가고 나름 천재이지 싶은 이 친구가,
그때는 알아듣는 척 하다가도 그 다음에 가면 리셋된 컴퓨터마냥 하나도 기억을 못하고 처음부터 '다시'이다.
어젠 친구의 친구가 많이 아파 지방 대학병원에서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와 문병을 간다며 문자를 넣었길래,
'그렇구나'하고 짧게 답장을 하고 말았더니 손끝으로 떨어내는 듯한 인상을 받았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먹여살릴 것도 아니면서 직업 의식 운운해가며 그만두라고 하는데,
내 감정이 다른 사람에 의해 휘둘리면 프로가 아니지 싶어 말아 버렸지만,
'그렇구나'라는 넉자가 나의 직업 의식을 얼마나 제대로 전달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개별성이 더 강조되고,
그러다보니 관계 속에서의 역할이나 본분을 착각하거나 망각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경우, 관계는 상호적인 거라고 하면서 상대방 뿐만 아니라 나의 처신을 문제시 하는데...
이건 공감과 소통이 가능한 경우로 국한시켜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상의 시 '거울'처럼 자의식이 성립되는 관계로 제한하여 적용해야 되지 않을까?
많이 아픈 친구로 인해 마음 아파할 친구에게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필요한게 아니라,
그저 '그렇구나, 그랬구나'정도의 말로 된 빨간약 정도가 고작이라고 생각했던게 잘못된 처방이었을까?
잘못된 처방이라도 난 앞으로도 내 소신껏 그렇게,
귀는 열고 입은 닫으며 그렇게 살 것이다.
디스크 권하는 사회
황윤권 지음 / 에이미팩토리 /
2015년
12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여러 가지 전문 분야의 전문 용어들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의학 관련 전문 용어들의 경우는 의사인 저도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많습니다. 의사들만 알아듣고 의사들끼리 쓰는 전문 용어를 TV,라디오, 신문 등에서 대중들을 향해 마치 누구나 알고 이해해야 하는 용어인 양 남발하는 의사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디스크나 협착증 치료에 쓰인다는 신경차단술, 신경성형술, 레이저 수술, 풍선확장술, 현미경 수술, fims. 고주파 감암술ㆍㆍㆍㆍㆍㆍ저도 몇가지 외에는 뭐가 어떻게 다른 것이며 정확히 어떤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인지 알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치료와 관련되어 처음 듣는 낯선 용어들을 써대며, 아무도 몰랐던 획기적인 치료방법을 자기만 알고 있으니 나에게 치료를 맡기라고 선전하는 의사들도 조심하고 피해가야 합니다.(227쪽)
황윤권 님이 이런 책을 내셨다.
황윤권 님은 전에 '내몸 아프지 않은 습관'이라는 책을 내셔서 큰 반향을 일으키셨던 분이다.
난 이 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쓰셨다는데, 일반인들이 이 책을 읽고 얼마나 알아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위에서 내가 말과 글의 차이점으로 언급하였던 것처럼,
이 분을 직접 보고 이 분의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던 사람들과 달리,
이 책만을 읽게 되는 사람들은 저자의 뜻을 오해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시럽기도 하다.
이 분만 양쪽에 심장을 갖고 특별한 진료를 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다.
이 땅의 많은 분들이 (양심을 갖고, ㅋ~.) 그렇게 진료를 하고 계시고,
요즘은 환자들도 안 해도 되는 몸을 수술을 맡길 정도로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책의 내용만 하더라도 이분만의 어떤 특별한 것은 아니고,
이분이 경희대병원에 계셨다는 걸로 미루어,
그 당시에 아시혈요법이라고 원서를 번역하여 제본한 책이 한의대에 떠돌았었다...정도로 정리하고 싶다.
암튼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낸 그 누군가가 이 분인 것이다.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하여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