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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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대 책 뒷표지의 추천사를 쓴 김민정 시인은 좋아하지만,

이 책의 박연준은 누구인지 몰랐거니와 장석주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동안 인문학과 철학에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에 그가 쓴 책에도 관심을 가졌었지만 매번 실패하고 말았던터라,

요번에도 서재 이곳 저곳에서 추천하고 있는 것을 봤지만 들이기까지 좀 뜸을 들였었다.

아니나 다를까, 난 이 책의 취지를 모르겠다.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낸 책이었으면 그에 맞게 조촐하게 몇 부 인쇄해서 지인들에게 돌리는 수준이었으면 됐을 것이고,

'걸어본다 시리즈'였다면 신변잡기식의 박연준의 글보다는 장석주의 그것을 앞에 놨어야 옳았을 것이다.

시드니에 관한 여행기라고 하기에도 뭔가 많이 아쉽지만, 쩝~(,.)

 

세상엔 그렇게 경계가 모호해서 구분짓기 어려운 것들도 존재하게 마련이고,

나 또한 희미하긴 마찬가지라며 위로를 하는 수밖에~--;

 

흔히 기준이나 잣대에 대한 얘기를 한다.

그리고 그 기준과 잣대는 나에게 적용시킬때와 세상에 적용시킬때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줄어들기도 하고,

그걸 인지상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네 이름을 발음하는 내 입술에 몇 개의 별들이 얼음처럼 부서진다."

로 시작하는 메일을 받은걸 기억하는 박연준의 서문으로 시작하지만,

연서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둘의 사랑을 다짐하는 결혼 축하나 서약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가인 그들의 작품성을 인정한다고도 못하겠다.

 

이런 말을 하는게 조심스럽지만,

이 둘의 나이 차가 스물 다섯이나 되는 걸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귄지 10년이나 되었다고 하지만,

장석주의 전작 '아들아 서른에는 노자를 읽어라'를 읽었을 당시 결혼한 아들이 등장하였던걸로 미루어,

'둘이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다르다'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 '세대 차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는데,

이들의 여기까지가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박연준은 '생각을 만지는 일'이란 꼭지에서,

책은 생각을 물성화한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을 붙잡아두려고, 생각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 책을 만들었을 것이다. 낱장은 찢어지기 쉽고 베일 듯 얇지만, 묶어놓으면 단단하고 네모나고 뭉치로 변하는 책! 책을 읽는 일은 저자의 동의 아래 그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더듬고, 움켜쥐고, 흡수하는 일이다. 씹고 삼키며 간혹 뱉기도 하는 일이다.

 

  책의 촉감이 좋다. 냄새가 좋다. 자물쇠 없이 열리고 닫히는 개방성이 좋다. 많은 문자 속에 감추고 있을 몇 가닥, 삶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이 좋다. 모르는 사람(저자)의 언어를 내 안에 담아보는 일이 좋다.(54쪽)

고 하고 있다.

 

난 책이나 글이란 머리와 마음을 종이에 옮겨놓은거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두드러지게 강조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배제하거나 소외시킬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개 사랑은 콩깍지가 씐 상태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콩깍지가 벗겨졌는데, 그것도 한참 전에 벗겨졌는데도 그 사람이 좋은 것이다. 모든 단점들을 상쇄시키는 것, 이해 불가능한 상태가 사랑이다. ㆍㆍㆍㆍㆍㆍ우리는 이해하려들면 안 된다. 이해란 말의 반대편에 있는 게 사랑이니까.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나?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52~53쪽)

라는 부분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마음을 앞세우며 말랑말랑한 글을 쓰는 그녀와,

'아들아 서른에는 노자를 읽어라'나 '마흔의 서재'따위의 머리로 글을 쓰는 그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 싶다.

 

결혼 순간이나 결혼 기념의 의미로 사진이나 글을 매개로 책으로 붙들어 묶어 기념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느리고 더딘듯 해도 계속 이어져 움직이는 것이다.

마음을 앞세우고 사는 사람의 삶과 머리를 앞세우고 사는 사람의 삶은 다를 것이고,

나이 서른 다섯의 삶의 속도와 나이 육십의 삶의 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단적인 예로, 많이 다니지도 않았는데 피곤해하는 그녀에게 그가 이런 말을 해준다.

"네가 아무리 많이 보려 해도 이곳에 사는 사람만큼 많이 보고, 많이 알 수는 없어. 뭘 보려 하지 말고 그냥 거기 있는 순간을 즐겨." (72쪽)

 

산다는 건,

결혼이란걸 해서 살을 맞대고 산다는 건, 지금까지와의 삶과는 또 다를 것이다.

살면서 보대끼고 부딪치며,

닳아가기도 하고 그러면서 닮아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각자 확연히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자기만의 문체로 쓰는 글들처럼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그들의 은밀한 내면을 엿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부가 아니어도 서로의 삶에 말을 걸 수도 있고,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을 수도 있다.

오지랖이 넓은 이라면 '인지상정'이다.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책이라니,

나중에 둘이 돌이켜 보고 기념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내밀한 내용으로 꾸미되 한정판으로 만들어서 지인들에게만 돌리던지,

아니면 내밀함을 지우고 작가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걸어본다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만드는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이나 글이란 머리와 마음을 종이에 옮겨놓은거라는 점에서,

그녀도 그렇고, 그도 그렇고...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다른 한쪽을 거의 배제하거나 소외시킨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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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15 18:43   좋아요 0 | URL
저만 이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어요. 장석주 시인의 책이 자주 나오는 것 같아요. ^^

보물선 2016-04-15 18:44   좋아요 0 | URL
삶의 무게?^^

양철나무꾼 2016-04-21 15:48   좋아요 0 | URL
cyrus님,
시집이 자주 나오는 거면 모르겠는데, 무게감있는 인문학 서적들이 자주 나오는데 어쩌자는 것인지 말예요.
그냥 열길 물 속과 이분 내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고 하려구요~--;

보물선님,
훌훌 털고 일상으로 돌아오셨군요, 환영합니다여~^^

꿈꾸는섬 2016-04-15 22:08   좋아요 0 | URL
ㅎ아직도 이 책은 읽고 싶지가 않네요.
결혼기념 한정판! 좋은 의견이세요.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라고 해도 이런 에세이는 반갑지가 않네요. 오히려 전 좀 장석주님께 실망했어요ㅜㅜ

2016-04-21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21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