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재의 살림풍류 - 서울과 시골을 오가는 유쾌한 이중생활
이효재 지음 / 스타일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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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 또는 그렇게 노는 일''풍류'라고 한단다.

 

요즘 세상에 '제대로' 된 속도를 갖는다는 것이 가능할가?

'풍류'만 하더라도 그렇다. 

나처럼 움직이는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엉'덩이가 '뚱'뚱한 '엉.뚱.족'에게는,

빠른 속도로 변하는 상황이 적응이 안되어 그마저 경박하다며 툴툴대는 것일 뿐이고,

모든 일을 시간과 노동량에 비례하여 효율성이라는 수치로 환산하려 들고,

'바빠' 또는 '빨리'라는 말을 추임새처럼 입에 달고 사는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는,

'멋스럽고 풍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잉여이고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그런 일들이 풍류가 아닐까 싶다.

 

난 일을 야무지게 잘 하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꼼꼼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마음은 안달루시아를 넘나들어서 일의 효율성은  빵점이었다.

 

사람들이 놀부를 보고 부자이고 욕심쟁이여서 나쁘다고 하는데,

놀부가 나쁜 것은 부자이고 욕심쟁이인게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것을 동생에게 알려줘서, 나누고 함께 하면 배가 되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나는 고인들의 살신성인 덕분에, 어렴풋이 개념을 장착할 수 있게 되었고,

추억이고 물건이고 그러모으고 집착할 줄만 알던 것을 버리고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내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을 갖게 되었고, 적당한 속도에 맞춰 리듬까지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바라보니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인다.

 

그것들은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명품처럼 고가는 아니지만,

재료비 따위를 값으로 매긴다면 푼돈 몇 푼일,

그렇다고 하여 쉽다거나 헤프다는 느낌이 아닌,

궁상맞거나 초라한 느낌도 아닌,

그런 것들 말이다.

 

장인이나 달인 따위의 거창한 수사는 일부러 사양하였지만,

정갈한 밑밭찬 몇 개에 보글보글 끓인 찌개로 힘을 준 소박하고 담백한 밥상이라던가,

머리쪽으로 호청을 더하여 빳빳하게 풀먹인 이불을 내놓으며 '에헴~,이쯤은 보통이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니의 책을 매번 사들이기는 했었지만, 매력이 뭔지 꼬집어 얘기하지는 못했었다.

어찌보면 유난스러워 보인다 싶었었다.

분과 초를 다투어 변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할 일이 없어 누리는 호사처럼 보인 적도 있었다.

 

153쪽에서 영국여왕을 예로 들면서 '격'이라고 하는데,

아, 이렇게 멋질 수가 없는 거다.

'돋보기집을 얘기하며 나이가 든다는 건 허릿살이 생기고 팔뚝이 두꺼워지고 계단 올라갈 때 아고고 소리를 내는 것'이지만,

마음이 너그러워지니 다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나이를 한살한살 먹어보니 알겠다.

'응.팔'의 정팔이 엄마 라미란 여사님~!

갱년기라고 기나긴 밤을 불꺼진 거실에서 정물처럼 우두커니 앉아 계시지 마시고,

효재 언니나 처처럼 살림 풍류를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난 효재언냐나 라미란 여사님 나이가 될려면 아직은 멀었는데,

풍류의 도는 벌써 터득한 것 같다는...아흑~--;

 

이 책에서 효재언니가 전해주는 반짝거리는 꿀팁 하나.

아마추어가 손으로 만드는 살림은 자칫 궁상맞아 보일 수 있으니 경계를 잘 지켜야 한단다.

 

나도 그래서 매번 남편과 아들의 자문과 검증을 거치는데, 이 단계가 완전 시련이다.

내가 손으로 꼬물거리는걸 '궁상맞아 보인다'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완전 싫어하는 바람에 한번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내가  '응.팔.'의 라미란 여사님의 나이가 되어,

불꺼진 거실에서 눈물과 한숨으로 밤을 지새워야,

그걸로 부족해서 남편과 아들을 괴롭히고 들볶아봐야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뀔 것인가?

에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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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17 15:51   좋아요 1 | URL
불편함을 감수하는 품격! 멋지네요.
저도 효재님 살림솜씨 보면서 부럽기는 했지만 뭘 또 그렇게까지 싶기도 했는데... 저 말로 모든게 이해됩니다^^

양철나무꾼 2016-01-20 15:59   좋아요 0 | URL
그쵸~?^^
영국 여왕의 품격이라는데 뭔들 이해못하겠어요?ㅋㅋㅋㅋㅋ

프레이야 2016-01-17 18:26   좋아요 1 | URL
손으로 꼬물거리는 걸 즐기시는 양철님, 더구나 그 솜씨도 인정합니다.
모자가 너무 예뻐요. 방울이랑 그 아래 것이랑 다요.
젊었던 엄마도 뜨개질을 참 잘하셔서 모자며 머플러며 속바지에 스웨터, 조끼 등등
엄청 잘 뜨셨지요. 저도 거들고. 실 풀기도 같이 하고.
효재언니가 말한 경계 지키기는 저처럼 손으로 뭘 만들 생각일랑 안 하는 주부에겐 해당 없겠죠? ^^

양철나무꾼 2016-01-20 16:02   좋아요 2 | URL
님이 못하는게 있으시다는게 이해가 잘 안가려고 해요.
생각을 안 해 보셔서 그런 것이지,
아마 만드시면 그동안 어머니 어깨 너머로 봐온게 있어서 뚝딱일거에요~^^

서니데이 2016-01-17 19:53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바느질만 잘 하시는 줄 알았는데, 손뜨개도 상당히 잘 하시는군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쓰면 ˝금손˝이신데요.^^
양철나무꾼님, 좋은 일요일 저녁시간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6-01-20 16:04   좋아요 1 | URL
제가 이 유행하는 말의 의미는 잘 모르고~--;
사주팔자에 금이 한가득한건 아는데...ㅋ~.
옛날 사람들로 치면 별로 좋은거 아니라서 누설하지 말라는데,
모 어때요?
그쵸?
금손이라는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