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떤 알라디너가 책 제목만으로도 보고싶어지는 책이 있다고 했는데,
내게 이 책이 그런 책이 아니었나 싶다.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말도 좋았고,
'책에 대한 책 이야기'라는 것도 좋았고,
난 책 한권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을 책을 얻게 되는 그런 책읽기를 좋아하는지라,
서른 개의 키워드로 '삼백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이 책은 프롤로그에서 '왜 책고집인가?'라고 묻고,
본문에서 대답을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책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고, 글은 나를 위로해 줬다!(23쪽)
가 되겠다.
20대 이후 10년을 주기로 갖가지 좌절과 불행의 시간을 맞았단다.
20대 말엔 극영화를 제작하겠다고 나섰다가 나동그라졌고,
30대엔 하필이면 IMF 외환위기의 한 중간에 입시학원을 차렸다가 쫄딱 망했단다.
40대 후반에는 노숙인 인문학에 참여했던 걸 계기로 <빅이슈>라는 노숙인의 생계를 돕는 잡지,
창간 운동을 펼치다가 시쳇말로 모든 걸 날려버렸단다.
매번 다른 내용의 좌절이었지만 그때마다 그를 구원해준 건 책읽기와 글쓰기였단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어 고립감에 빠져 든 순간,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단다.
글쓰기는 고통을 잊게 해주었단다.
눈만 뜨면 도서관을 찾아 닥치는 대로 읽었고, 읽은 뒤엔 꼼꼼하게 기록하는,
그렇게 읽고 쓰기를 수년간 반복했단다.
블로그에 서평을 꾸준히 올렸던 덕분에 책 열심히 읽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그것이 '도서평론가'라는 이름으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는 계기가 되어,
그 후 10년 동안 줄기차게 방송활동을 했단다.
다시말해, 그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에게 글쓰기는,
'살아있음의 증거'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공부로서의 과정'이며,
인정욕구에 더불어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소통에 대한 의지'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책 표지의 그것처럼 내용은 '훅~!' 와닿았는지 모르겠지만,
찰싹 달라붙는 감칠맛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분명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독자가 모이지만, 모호하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비평가만 몰려들 뿐이다.'
하는 '알베르 카뮈'의 <글쓰기의 힘>을 인용하여 그의 입장을 표명하는데,
불필요한 수식을 빼고, 채 정리되지 않은 생각으로 이리저리 비틀고 휘젓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담은 간결한 글을 좋은 글로 친다.(18쪽)
결국,
'천천히, 거듭해서, 항상 질문을 던져가며 읽어라'라는,
그가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명확하게 전달되었지만,
그가 이 책에서 '나를 찾는 책 읽기', '앎을 찾는 책 읽기', '일상의 책 읽기' 라는 목록의 책들은
아쉽게도 내가 읽은 것들과 거의 겹치는 것들이었고,
그렇지 않더라도...책의 내용들을 친절하게 발췌하고 제시하고 있어서 새로울 것이 없었다.
알라딘 서재, 이곳의 다른이들 또한 다들 나 정도의 내공은 될 것으로 사료되는 고로,
그렇다면 이 책이 화제가 된 건,
SNS에서 <22인의 대권주자 품인록>과 <10대 그룹 촌철살인 한 줄 평>과 관련해서 였나 보다.
최 준영 님은 책고집이라는 둥, 新독서주의라는 둥의 말로 표현하지만,
난 이 책과 관련하여 SNS 이상 떠오르는 것이 없는고로,
이렇게 한마디 하며 마무리해야 겠다.
단련은 千日을 하고, 연습은 萬日을 한다.
그러나 승부는 일순간, ㅋ~.
최준영의 책고집
최준영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6월